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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l 11. 2023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이삿짐 정리 

 

온몸에 통증을 느낀다. 팔다리 아픈 것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아픈 것 같다. 몸살이다. 안 그럴 수 없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건강에 그리 신경 쓰고 운동도 매일 했는데 이깟 일에 몸살을 앓다니. 손이 통통 붓고 손목이 시리고 아프다. 무심코 무엇을 들다 아얏! 소리에 절로 놀란다. 그래도 무언가 쓰겠다고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나는 무모한 것인가, 사명감이 투철한 것인가. 개인적인 일로 무슨 사명감까지.


며칠간 온통 집안을 뒤집어엎고 다시 정리 중이다. 솔직히 아들 흉볼 것 없다. 나도 이 집에 입주할 때 이삿짐이 나가는 것도 들어와 정리하는 것도 참견하지 못했다. 그날따라 종일 강의가 들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날짜를 그렇게 정한 것도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다. 이사는 당시 서른 살짜리 딸이 했다. 포장이사니까 이삿짐센터에서 대략 정리를 해주었다. 후에 내가 조금씩 바꾸긴 했어도 그들이 해준 그대로 십일 년 동안 살았다. 그러니 버릴 게 얼마나 많고 닦아야 할 게 얼마나 많겠는가.


방 하나 비워주고 정리하는 게 쉬울 줄 알았다. 큰방에 천장 높이까지 올라간 책을 작은방으로 옮기는 것도 쉬울 줄 알았다. 안 해본 것이어서 그럴까. 아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두려움 없이 뛰어들 듯. 그래 난 아기나 다름없었다. 살림에는. 이삿짐센터에서 온 사람들은 가구만 옮겨줬을 뿐이다. 어차피 버리고 정리하는 건 그들이 해줄 수 없는 일이다. 도와준다는 제자들의 제의도 물리쳤다. 구질구질한 살림 보여주는 것도 민망했지만 그보다 어차피 내가 정리해야 찾아 쓰고 보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아, 일을 하게 되면 쉬지 못하는 내가 문제다.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어느 날은 종일 물만 마시고 정리하기도 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눈 뜨자마자 정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잊고 몰두했다. 아, 나는 몰입의 장인이다. 아니 무모함의 끝판 왕이다. 하루는 이만큼씩만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걸 절제하지 못했다. 새벽 두 시까지 정리하다 아랫집에 시끄러울까 봐 멈추기도 했다. 피란민 수용소를 방불할 집이 조금씩 집 꼴을 갖추기 시작. 그게 함함해서 더 열중.


오밤중에 들어온 아들은 엄지 척을 하며 웃어댔다. 왜 웃느냐니까, 놀랐단다. 아침에만 해도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에 나올 것 같은 집이었다는 거다. 이 모든 게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그걸 유머라고 터뜨리며 웃어대는 아들의 등을 한 대 후려쳤다. “바로 너 때문인데 남 말 하듯 하니?” 그래도 여전히 웃기만 한다. 그래, 우는 것보다야 낫다. 결국 둘이 웃고 말았다. 미안해서 한 짓이리라. 그걸 알기에.


옷을 열 박스 더 버렸고, 책을 삼분의 일 정도 버렸다. 딸이 시집간 지 육 년인데 아직도 짐을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옷, 책, 신발 등. 아무리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간다. 에라, 모르겠다. 경고도 할 만큼 했고 부탁도 할 만큼 했으니 내 죄는 없으리라. 장롱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은 옷들과 가방을 거의 다 버렸다. 옷은 저나 나나 입을 수 없다. 나야 본래 그렇지만 딸도 아니 그녀도, 출산 후 몸이 불어 입을 수 없다. 버리라고 한 적 없지만 그만큼 했으니 버려도 할 말 없으리라. 다 버렸다. 내가 들 수 있는 가방 두 개가 눈에 띄어 그것만 두고. 책도 차마 버릴 수 없어 꽂아두었다.


그렇게 닷새 동안 일한 끝에 집안이 어느 정도 정리정돈 되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 무엇보다 손목과 손끝이 견딜 수 없게. 이 글도 간신히 쓰고 있다. 그런 중에도 쓰겠다고 자판을 치는 나는 뭔가. 누가 시켜서 한다면 원수처럼 여길 텐데. 뭐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무모하지 않은가. 그래도 한다. 몰입보다 이건 무모함이다. 사명감보다 이건 억지다. 그래도 쓴다. 못 말리는 나다.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준 작가들의 글을 어서 읽고 싶다. 댓글도 달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못하고 있다. 거기다 짬짬이 강의도 있다. 자동차 핸들을 돌리다 앗! 앗! 비명을 지른다. 곧 정리가 끝나면 작가들의 글을 몰아서 읽을 거다. 그것도 재미난 일이리라. 기대되기도 한다. 누구보다 지금의 나에게 공감하고 응원하는 글벗들. 그들에게 적나라한 내 삶을 보여주는 것도 이젠 거리낌 없다.


누군가 말했다. 일주일이면 대충 이삿짐 정리가 되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들을 때 의아했다. 그날로 끝나던데, 무슨 일주일씩이나 싶었다. 내가 해보니 일주일도 짧다. 쉬엄쉬엄 몸 혹사하지 않고 한다면 두 달은 족히 걸릴 듯하다. 이삿짐 정리가 이렇게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남편이 있을 적엔 그가 다했고, 딸이 있을 적엔 그녀가 다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으로 허랑하게 산 사람 같다. 밖에서 일한다는 핑계로 살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아들을 믿었더니 아들은 예전의 나보다 더 심하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이제 집안 꼴을 갖춰가고 있다. 손목이 붓고 아프지만 내 손으로 해낸 일이다. 아들이 말했듯 사람 손이 무섭다. 엄두 나지 않던 일도 손이 가면 달라진다. 희망이 보인다. 지레 짐작해서 손대지 않았다면 깨달음도 없었을 거다. 이삿짐 정리하며 깨달았다.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정리 정돈하며 알게 된 것도 있다. 나는 가정 살림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살림 재미가 붙을 것 같다. 이삿짐 정리, 몸살은 났지만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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