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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l 14. 2023

어쩌다, 부목에 어리광까지

더 멀리 뛰기 위해

      

결국 오른쪽 손목에 부목을 댔다. 당분간 고정해야 한단다. 웬만큼 집안 정리가 되었을 때, 시큰거리고 퉁퉁 부은 손목을 어찌하지 못해 병원을 찾았다. 어지간해서 가지 않는 곳. 견딜 수 없으니 갈 수밖에. 사흘 전이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만져보며 문진을 한 의사는 다행히 관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란다. 인대가 늘어나고 염증이 심하니 손을 절대 쓰지 말라며, 손목에 부목을 대주었다. 급하면 풀고 손을 사용할 수 있겠으나 당분간 고정하고 있는 게 좋단다. 


두 손목이 다 아프다. 손목을 비롯하여 손등까지 퉁퉁 부었다. 손가락을 오그릴 수 없을 정도로. 밤이면 푹푹 쑤시고 시큰거려 잠을 설치기도 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했다고 이럴까. 아무리 옷가지를, 책을, 물품을 들었다 놨다 했어도 그렇지, 며칠 만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게 어이없었다. 나를 과신했던 걸까. 도와준다는 사람들도 다 물리치고 혼자서 이삿짐 정리한 것이 초래한 결과일까. 아니면 이제 그럴 나이가 돼서 그런 걸까. 통증 때문에 잠은 오지 않고, 괜한 잡념만 는다. 


병원에서 부목을 대고 집으로 왔다. 오른쪽 손목을 고정해 놓으니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욱신욱신했다가 시큰거리기를 반복하는 손목. 내가 이만큼 아프다는 걸 알려야 한다.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어지간하면 말하지 않고 감수했는데, 이번만큼은 안 되겠다. 될 수 있으면 무슨 문제든 혼자 해결했다. 그게 어려울 때 말하면, 아이들은 전문가에게 의뢰하라는 말만 하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서운한 점도 있지만 그보다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 편이다. 


부목 댄 손목 사진을 찍었다. 무척 아프고 불편해 보였다. 힛, 됐다. 이 정도면. 그들도 긴장하리라. 나도 늙는 걸까. 자식들 관심이 적으면 부러 아픈 척하는 부모도 있다더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내 친구의 지인은 한 달에 두어 번씩 쓰러지는 쇼를 한단다. 그러니 가족들이 아기 보호하듯 한다나 뭐라나. 그 정도까지야 내 자존심에 할 수 없고, 가족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이제 놀라서 전화를 하고 톡을 하리라. 


하지만 한참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바쁜가. 일하나. 아기들 보느라 짬이 없나. 공연히 아이들 걱정만 끼치는 것 아닌가. 사진을 내릴까 말까. 내가 늘 센 척하니까 정녕 센 줄 아는 것 아닌가. 찰나에 백팔번뇌가 인다더니, 아무 반응이 없는 그 순간에 나 역시 백팔번뇌 곱하기 백은 될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어미가 돼서 이 무슨 품위 없는 짓인가. 아무래도 사진을 내리는 게 좋겠다 싶을 때, 숫자가 하나 둘 지워졌다. 


“헐, 그럴 줄 알았어.” 딸이다. 이런저런 잔소리가 늘어진다. 꼭 지가 엄마인 것처럼 말이다. 주객이 전도됐다, 우리 집은. “잔소리 마! 안 그래도 아픈데, 위로는 못할망정 웬 잔소리람.” 안다. 그 마음을 알고 말고다. “에고, 엄마 이제 그냥 두세요,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아들이다. 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표현만 다를 뿐, 어미를 생각하는 마음이야 다르랴. 약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니들 말이야, 허부라기 같은 어미라도 아프다니 겁나지?’ 그런 심정으로. 


나도 참 나다. 나이 칠십이 돼 가는데 겨우 요 정도다. 품위 있고 고상하게 늙어갈 생각이었는데, 고약한 심사가 똬리를 틀고 있었구나 싶다. 노인의 문제나 속성이 드러난 소설을 읽고 연구하면서 실소가 나오곤 했는데, 내가 바로 그런 노인의 모습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게 또 우습다. 에이, 모르겠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아이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아픈 게 좀 덜한 것 같다. 


오밤중에 들어온 아들은 키들거리며 물었다. “엄마, 저 오면 보여 주시려고 부목 안 풀고 계신 거죠?”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됐어, 내가 할 짓 없어 이 불편한 짓을 하고 있겠니?” 화난 척했지만 웃음이 입술 사이에서 비어져 나오는 걸 어쩌지 못해 쿡 웃고 말았다. “거 봐요, 맞잖아요.” 그냥 넘어가면 좀 안 되나. 아들은 꼬치꼬치 캐묻는다. 말씨름도 못하겠다. 웃음이 나와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리에 누워 바로 부목을 풀었다. 내 행동이 유치하다. 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틀림없다. 


지금 삼 일째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 쉬 낫지 않는다. 부기만 좀 내렸을 뿐 통증은 여전하다. 그깟 일 좀 했다고 이러니 한심하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럴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통증을 견딘다. 글을 쓰거나 운전할 때는 부목을 푼다. 쉴 때는 부목을 하고. 확실히 불편하다. 그래야 쉬 나을 수 있다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제일 싫어하는 소염진통제도 식후에 꼬박꼬박 먹으며. 


아이들이 수시로 묻는다. 어떠냐고. 조금 엄살을 섞어 여전히 아프다고 한다. 억지로 효도를 강요하는 느낌도 든다. 괜찮다고 견딜 만하다고 해도 되련만. 억지 효도라도 관심을 보여주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딸은 잘 먹고 쉬어야 빨리 낫는다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치료만 잘 받으란다. 며칠 후에 가서 못한 것을 해주겠다며. 나이 먹으면 자식에게 의지하기 마련일까. “응, 나 마이 아파.” 나도 모르게 어리광 섞인 대답을 하고 말았다. ‘많이’가 아니고 ‘마이’다. 우습지 않은가. 어쩌다, 부목에 어리광까지. 나도 참 못 말린다. 


새벽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오늘도 장맛비가 쏟아질 것 같다. 장마 후 비치는 햇살은 더 강렬하고 빛나리라. 내 손목도 그러리라. 그날까지 조금 웅크리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더 멀리 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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