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Jul 21. 2023

족보, 전근대적이지만은 않은

순전히 내 생각

   

없어진 줄 알았다. 족보. 이곳으로 이사한 지 십일 년이 돼 간다. 그동안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시아버님께서 애지중지하셨던 게 생각 나서다. 지금 세상에 무슨 족보가 필요하랴마는. 아버님은 종회에서 족보 갱신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셨다. 마침 우리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후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찾아오셨다. 그러고는 족보를 내게 건네주셨다. 보관하라고. 그게 맏며느리에 대한 권리이고 책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몇 번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그 족보를 나름대로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으로 이사한 후, 어느 날 보니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님의 부탁을 저버린 것만 같아서다. 언젠가 대종회에 찾아가 족보를 다시 만들어야 할까 고민할 정도로 불쑥 불편한 마음이 들곤 했다. 홈피에 들어가면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그레한 표지에 본과  성이 씌어 있는 족보, 내 눈에 설지 않은 것인데 잃어버린 줄 알았다. 


걸리는 게 있었다. 십일 년 전 그때, 나는 유난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사하는 날도 그랬다. 딸이 결근을 하고 이사에 참여했다. 나는 종일 강의가 있었고 아들도 그랬다. 아침에 이삿짐센터에서 사람이 나왔을 때 대략 설명해 주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잡지니까 다 버려달라고도 했다. 그게 걸렸다. 족보가 보이지 않는 동안, 그때 그 잡지 옆에 족보가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걸 알 수 없는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족보까지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체념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사람이 죄가 큰 법이라고 했던가. 그 족보가 이번 집 정리하는데 떡하니 나왔다. 어느 구석에 있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책 무더기 속에 들어 있었다. 족보를 발견하는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몇십 년 동안 한두 번 열어봤을까 말까 한 것인데도. 아버님의 유품을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그레한 표지가 보이는 순간, 혹시 하고 꺼내보니 족보였다. 이렇게 책 틈에 있었는데,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종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족보는, 200여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 한 권짜리였다. 


족보를 눈에 잘 띄는 곳에 꽂아두었다. 불편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십일 년 동안이나 말끔하지 않았던 마음이다. 요즘에 족보가 무슨 소용이랴마는 어느 날 아들에게 설명해주려 한다. 들으려나 모르겠지만. 적어도 본과 파, 몇 세손 정도는 알고 있도록. 본과 파는 알겠지만 몇 세손인지, 돌림자가 무엇인지, 모를 테니까. 아들 이름이 돌림자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림자를 쓰지 않는 내게 아버님이 섭섭한 마음을 표하셨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내가 지은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불효였다.


족보를 펼쳐 보았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글자들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엉터리라도 사서삼경을 한 번 읽은 덕분인 듯하다. 아들의 이름이 있는 곳을 펼쳐보았다. 돌림자를 쓰지 않은 아들 이름 옆에, 괄호를 치고 아버님께서 돌림자를 넣어 지은 이름을 써놓으셨다. 내게 더 없는 사랑을 주신 아버님인데, 그때 왜 그리 고집을 부렸던지. 그만큼 나도 이름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딸에게 족보 찾았다고 말했다. 별 반응이 없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가 보다. 또 잃어버렸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리라. 아들에게 전화로 말했다. 아, 네. 어디 족보예요? 한다. 족보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듯하다. 나중에 설명해 준다고 하니, 아 네, 한다. 별 감흥 없 목소리다. 왜 안 그러겠는가. 관심도 없으리라. 이만큼의 관심과 보관도 우리 대까지만 가능할지 모른다.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무슨 관심이 있으랴. 


그래도 나는 다행스러웠다. 아버님도 하늘에서 흐뭇해하실 것 같았다. 이제부터 잘 보관하리라. 가끔 한 번씩 거풍도 시키고. 표지와 달리 종이는 누렇게 바래 있었다. 거기서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함자를 찾고 남편의 이름,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무언지 모를 끈끈함을 느꼈다. 아들이 족보를 본다면 묵직한 책무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조상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그런 것이라도. 그렇다면 다행이리라.

 

요즘엔 가족관계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유대감이 있어도 당대뿐이다. 삼촌 고모가 아버지의 형제이고 당숙과 당고모가 할아버지의 형제에서 나왔다는 걸 안다면,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외가 쪽으로도 마찬가지고. 팔촌이 한 울타리에서 나온다는 게 우리 아들 세대에게 피부에 와닿을지 모르겠다. 모두 친척이라는 말로 뭉뚱그려버리는 게 보통이니까. 사촌과 육촌 팔촌이 아주 먼 친척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게 때로는 안타깝다. 


너무 바라는 것일까. 적어도 팔촌까지 만이라도 서로 알고 지내며, 족보에서 그 이름을 발견했을 때, 더 가까이 느낀다면 우리 덜 각박할까. 족보를 들여다보며 쓸데없을지 모르는 생각을 한동안 했다. 사해동포적인 생각까지 아니더라도, 친족과 뿌리를 아는 것은 아무리 세태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도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전근대적이지만은 않은.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더위를 견디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