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Jul 30. 2023

내가 더위를 견디는 방법

 

     

장마가 끝났다. 엊그제부터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덥다고 난리다. 덥다는 말이 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더운 건 맞다.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도 있다. 그 정도로 덥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정도 더위에 그렇게 호들갑 떨고 싶지 않은 게. 


한 오 년 전에도 그렇게 더웠다. 그것도 유월부터. 솔직히 말해 욕조에 찬물을 받아 놓고 몸을 담그기도 했다. 그것도 한 번만이 아니다. 다시 더워지면 다시 또 욕조에 들어가곤 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그때도 나는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단출하게 지내면서 굳이 에어컨을 설치하랴 싶었다. 아이들은 성화를 했지만 꿋꿋하게 그 생각을 지켰다. 


그러다 작년에 딸이 이사하면서 쓰던 것을 갖다 설치했다. 아들이 들어오면서 짐을 정리 정돈할 때 며칠 빼고 에어컨을 사용한 적 없다. 그만큼 살만하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으면 사용하는 게 맞다. 나 역시 그랬을 거다. 나만 그런 것 아니다. 아들도 의외로 덥지 않단다. 집이 산 아래에 있고, 높은 층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더위를 잘 견디는 편이다. 온몸에 땀이 줄줄 나고, 달아올라도 견딘다. 그건 두 개의 기억 때문인 듯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만한 더위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할 아무것이 없고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막연했던 기억. 암담하면서도 묵묵히 견뎌야 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은 어떤 조치든 할 수 있다는 것이 더위를 견디게 하는 걸까. 어떤 조치라는 건,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있고, 시원한 장소에 갈 수 있고, 내가 있는 곳을 시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첫 기억은 여섯 살 즈음이다. 그때 나는 고모와 함께 고모 친구의 집에 가고 있었다. 미루나무가 늘어선 신작로를 고모와 함께 타박타박 걸었다. 신작로에는 온통 자갈이었고, 발바닥이 아팠다. 더구나 뜨거운 햇볕이 온몸에 쏟아졌다. 고모가 내 손을 잡고 양산을 들었다. 뜨겁고 목이 말라 울고 싶었다. 그래도 그럴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왜 치마저고리를 입었을까. 남의 집에 간다고 어머니가 단장을 해주신 것 같았다. 치마저고리가 온몸에 들러붙어 걸음을 옮길 적마다 휘감겼다. 


그때 고모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휴가를 내서 집에 왔다가 결혼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언젠가 물어보니 고모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유난히 더웠다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은 아니다. 양산을 쓰고 뾰족구두를 신은 고모 역시 자갈이 덮인 신작로를 걷기 힘들었으리라. 나를 데리고 나선 건 심심하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유난히 나를 귀여워해서였으리라. 버스를 타고 이십 리 길을 간 후, 다시 걸어서 십 리 족히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내가 힘들어하자 고모가 나를 업었다. 내가 양산을 들고. 양산을 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여섯 살이었으니까. 또 고모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내려달라고 했다. 고모가 빙긋 웃으며 내려놓을 때,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보았다. 다시 또 걸었고, 업혔고, 또 걸었다. 매미소리가 요란했으며 간혹 부는 바람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얼마 후 고모 친구의 집에 도착했고, 펌프에서 퍼 올린 시원한 물을 마셨다. 


두 번째 기억은 어머니와 함께 고구마 밭을 매던 날이었다. 동악산 따비밭은 유난히 돌이 많은 밭이었다. 담배 밭에선 분홍색 담배 꽃이 수줍게 피어 땡볕에 시들 거리고, 넓적한 잎사귀를 척 늘어뜨렸다. 그늘에 놓아둔 물주전자의 물은 금세 데워졌다. 그 물을 마시며 어머니와 나는 고구마 밭을 맸다. 산비둘기 울음이 산자락을 타고 내려왔고, 앞의 오동나무에선 매미가 울었다. 그 더운 여름에 왜 우리는 고구마 밭을 매러 갔던지. 


어머니는 몸이 약했다. 조금 매다가 땀이 비 오듯 쏟아지자 오동나무 아래로 갔다. 내게도 와서 쉬자고 하셨다. “엄마는 쉬어, 난 그냥 할래요.” 그건 어렸을 적부터 내 성향이었던 것 같다. 도중에 일을 쉬지 못하는. 이번에 집 정리 정돈할 때도 아들과 부딪친 부분이 그것이다. 아들은 쉬엄쉬엄 정리하자고 했고, 나는 어서 빨리 하고 쉬는 게 낫다고 했다. 아들은 그게 왜 힘든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논리적으로 설득했다.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하기를 원했다. 그러다 손목에 병이 나고 말았지만. 어머니는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안타깝게 나를 불렀다. 더위 피했다가 매자고. 난 거부했다. 어서 빨리 하고 집으로 가서 쉬고 싶었다. 


얼마나 덥고 숨이 차며 힘들었는지 모른다. 한 이랑을 맬 때마다 고민했다. 쉴까, 말까. 어머니는 도저히 안 되겠던지 잠시 후 일어나 오동나무 그늘에서 나와 밭고랑으로 들어섰다. “에구, 너 때문에 쉬지도 못하겠다.” 어머니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며 밭을 맸다. 저녁나절이 되었을 때, 두 이랑이 남았다. 어머니는 이제 내일 하게 그만 가자고 했다. 거절했다. 겨우 한 이랑씩만 매면 내일 안 해도 되는데, 다 하고 가자고.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나를 따랐다. 어스름이 내릴 때, 모두 끝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두 기억을 떠올리면 이런 더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선풍기가 있고, 에어컨이 있으며, 시원하게 샤워를 할 수 있지 않은가. 더 힘들고 어려웠던 날을 견뎠다. 그것을 잊지 않으면 약이 된다. 여유로움이 된다. 그날들을 생각하면 이쯤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스스로 다독이며 더위를 이기고 있다. 이게 내가 더위를 견디는 방법이다. 굳이 견디고 말 것 없이, 환경을 시원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채. 여름이니까 더운 것 당연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