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전시회가 끝났다. 그동안 매일 갤러리에 나가다시피 했다. 꼭 내 전시회처럼. 분주한 두 주간이었다. 내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어김없이 갤러리로 갔으니까. 지인들이나 제자들이 방문한다고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들의 그림을 보러 오는 거지만 작가가 내 아들이기에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 다섯 사람 정도에게 알렸는데, 어찌 알고 예서제서 그림을 보러 왔다.
정작 아들은 갤러리에 자주 나와 있지 못했다. 일정이 있거나 해야 할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를 보고 싶어 온 사람도 있을 텐데, 갤러리에 나와 있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작가들은 갤러리에 잘 가있지 않는다며, 그림만 보여주면 되는 거란다. 불친절한 작가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았다. 나도 그림 보러 갔을 때 작가를 직접 만난 경험이 없으니까.
아들은 일정 조율하여 시간을 맞추기도 했다. 관람객들에게 그림 설명을 했고, 곁들여 질문에 답도 했다. 아들은 대중과 소통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그림에 숨은 의도를 읽어내는 방법 등도 알려주었다. 아들이 없을 때는 내가 어설픈 큐레이터가 되었다. 급조된. 그러면서 그림을 보는 방법도 터득해 나갔다. 문학 외에 이렇게 진지하게 공부한 것이 있었던가.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창작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읽고 보고 듣는 사람에게. 나는 독자와 소통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아들도 대중과 소통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단다. 나와 아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그 부분이다. 어긋나는 부분이 많은 중에. 그것이 우리의 대화를 가끔 길어지게 하는 이유다. 아들의 그림을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많은 부분에 공감되고 재밌게 읽히는 것도 그래서다. 그림도 읽는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가 글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되었기에.
두 주간 동안 어미노릇을 좀 한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나는 여느 어머니와 달랐다. 한마디로 헌신적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가정경제를 책임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다시 시작한 학업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헌신적으로 어미노릇을 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아내노릇도. 그저 나는 일하고 공부하는 것으로도 하루가 모자랐다. 아이들 도시락 반찬도, 교복 세탁도, 실내화와 운동화 세탁도, 학습도, 신경 쓰지 못했다. 남편이 어느 정도 맡아주었지만 부족하기 한량없었다.
나라고 왜 마음에 걸리지 않았으랴. 나라고 왜 제대로 어미노릇 하고 싶지 않았으랴. 딸이 부르면 달려가는 것도 어미노릇 못한 것을 벌충하는 의미가 크다. 온이들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아들의 전시회에 그렇게 매일 가다시피 한 것도 그래서다. 어미노릇 벌충. 그게 얼마나 되랴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력하고 싶었다. 예전에 내가 어미노릇 제대로 못한 것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아이들이 알지 모르겠다. 몰라도 된다. 상관없다. 부모자식 간에 알아주고 몰라주는 것이 무슨 상관이랴.
전시회는 성공적이었다. 평이 아주 좋았고 그림도 다 판매되었다. 그림을 사지 못한 사람들의 주문도 몇 건 들어왔다. 앞으로도 전시회를 하면 꼭 가보겠다는 사람, 마니아가 되었다는 사람, 그림을 소장하고 싶다는 사람 등이 생겼다. 그쪽의 전문가인 누구는 그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이제 걱정 말고 힘껏 밀어주기만 하라고도 했다. 내가 그런 힘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못한 어미노릇만큼은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미노릇은 입성과 음식 등 사소한 것을 챙기는 일이다. 이제 며칠 후면 아들이 십 년 만에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된다. 옷을 세탁해 주고 식사에 신경을 좀 써주려고 한다. 방 하나만 내주고 각자 편하게 살기로 이야기되었던 것인데. 이번 전시회의 이면과 내면을 보며 느꼈다. 혼자서 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겠다는 것을. 할 수 있는 한 조력해야겠다는 것을. 결혼하지 않은 몸이니 어미가 세탁과 식사를 맡아줘야 한다는 것을.
아들의 전시회 동안 진정 어미노릇을 할 걸까. 모르겠다. 그거 하나였다. 아들의 전시회가 잘 되었으면 하는. 그건 많은 이들이 그림을 보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했다. 현대인들은 모두 바쁘니까. 혹시 번폐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나 싶었다. 꽃도 화환도 축하금도 모두 거절했다. 몰래 놓고 간 사람도 있었는데, 그것도 돌려주었다.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며. 아들과 나의 생각이 그 부분에서도 일치했다. 순수하게 작품만 감상해 주기를 바랐다.
이제 전시회는 끝났다. 아들은 큰 산을 하나 넘은 것 같단다. 나도 그렇다. 때로는 불신했고 불안했으며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넘었다. 앞으로 아들이 걸어가는 길을 응원하고 조력하는 게 남은 어미노릇이리라. 지난밤에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햇살이 환하게 비친다. 아들의 앞날도 저렇듯 환하게 빛나기를. 어미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