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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식(小食) 중이다

삶의 방식

by 최명숙

웬 뜬금없이, 소식이라니. 나의 먹성을 아는 사람들이 들었다면, 마땅히 보일 반응이다. 적게 먹는다는 것이 나는 힘들었다. 얼마나 잘 먹는지 너튜브에 ‘먹방’을 해볼까 고민했을 정도다. 명색이 선생이고 여기저기 강연도 하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접었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묻는다면, 나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먹어댔다. 누군가가 그랬다. 오지나 사막에서도 살아 돌아올 사람이라고. 그런 내가 소식을 하기로 했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러셨다. 한 숟가락 부족하다 싶을 때 그만 먹는 게 좋다고. 그게 어디 쉬운가. 나는 그만 먹고 싶어야 그만두었다. 객지 생활할 때는 하도 굶어서, 집에 오면 먹는 것에 포한이 진 사람처럼 먹었다. 한 푼이라도 집에 더 보내려고 한 ‘굶식’이었다. ‘삼순구식’ 정도였으니까. 집에 와 보면 그래도 식구들은 배곯지 않고 살고 있는 게 다행이었는데, 이상스레 소외감도 들었다. 그것에 대한 반향으로 한 맺힌 사람처럼 먹었던 게 아닐까. 할머니는 평생 그 한 숟가락 부족하게 음식을 드셨고, 102세까지 사셨다.


현재 100세를 넘겨 살고 있는 유명 철학자에게 인터뷰하는 사람이 물었다. 이렇게 건강하게 사시는 게 소식하기 때문이냐고. 철학자는 웃으며 말했다. 평생 일부러 소식을 해본 적 없다고. 먹고 싶은 대로 먹었는데, 나이가 드니 자연히 적게 먹게 되더라고. 나는 그 말씀을 신봉했다.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잘 먹어야 건강하다고 믿었다. 아기들도 잘 먹어야 크는 것처럼.


오해마시라. 내가 하루 세끼 이상 먹을 거라고. 딱 세끼만 먹고, 아직은 시장에서 옷 사 입을 만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3년째 실천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 드는 생각이 있었다. 몸무게를 10kg만 줄여볼까, 그래서 더 늙기 전에 시폰 원피스 샤방샤방 입고 누벼볼까. 하지만 철학자의 말을 들은 다음 그 생각을 싹 접었다. 다이어트, 그건 언제나 ‘내일부터’ 하는 거다. 맛있게 먹으면 0 칼로리다. 모든 게 맛있는데 입맛 잃을 때까지 줄기차게 먹으리라. 더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맛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고, 해 먹을 수 있으니. 아무튼 고마운 철학자 선생님이었다. 내 마음에 딱 맞는.


또 삼천포로 빠지는 조짐이 보인다. 운전 바로 해야겠다. 뭐, 따지고 보면, 글쓰기도 운전과 비슷하다. 목적지는 글의 주제이고, 그곳으로 가는 여정이 글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이니까. 그 과정을 통해 작가의 의도 즉 주제를 드러내면 되는 것이므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 여정에서 재밌는 것 보고 먹고 느끼고 경험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 이러다 정녕 삼천포로 빠지겠다. 유우턴!


그렇게 잘 먹던 내가 소식을 결정했다. 경천동지 할 일이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내시경으로 찍은 나의 위 사진을 보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헐고 염증이 있는 곳이 무수했고 제법 큰 상처도 보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안해서. 지난가을 두 차례나 겪은 위경련과 위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았다. 의사는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스트레스와 식습관 등으로 인한 것이니, 이제 천천히 오래 씹어 먹고 소식하란다. 안 그러면 큰일 난단다. 그 엄포(?) 때문은 아니다. 상처투성이인 내 위를 보는 순간, 상처투성이인 내 인생이 보였다. 가엾은 내 인생. 잠시 연민에 빠졌다가 결심했다, 소식하기로.


나를 내가 어루만지고 살펴야지 누구에게 기댈 일이 아니잖은가. 단단히 마음먹었다. 이제 귤 한 박스를 일주일도 아닌 5일에 먹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고기 한 근을 조금 남기고 한꺼번에 먹는 짓도 하지 않고, 닭 한 마리 볶음탕 해서 퍽퍽한 가슴살만 남기고 다 먹는 짓도 하지 않을 것이며, 물도 벌컥벌컥 한꺼번에 두 컵씩 마시지 않으리라. 밥 한 공기를 먹고 더 먹을까 말까 고민도 하지 않고, 밥 먹은 후 카페 가서 커피와 빵 먹으며, 밥 배 따로 있고 빵 배 따로 있다고 이상한 논리 펼치지 않으리라. 결사적으로 소식하고 천천히 먹으리라. 꼭꼭 씹어서.


크리스마스 때 손자들 선물 사주러 딸네 집에 갔었다. 딸이 샐러드와 각종 과일 그리고 스테이크까지 정성 들여 준비해 놓았다. 조금씩 천천히 맛만 보듯 먹었다. 딸이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응, 나 소식해, 요즘.”

“왜?”

“소식한다니까 왜는?”

“글쎄, 왜?”

“아, 걍!”

“걍이 뭐야! 기껏 엄마 드실 것 왕창 준비했는데.”

“너희들 먹어. 난 소식해.”

“참나, 갑자기 웬 소식이냐고. 뜬금없이.”

“이제부터 나를 아껴주기로 했어.”

“에구 언제는 안 그러셨나? 새삼스럽긴.”

“뭐야? 나 신경 쓰게 하지 마. 위에게 미안해서 그래. 온통 상처야, 내 인생처럼.”

“또 오버하신다. 엄마 인생이 뭔 상처!”

“너어, 또. 내가 니 친구니? 반말하게! 나, 갈래.”


손자들 선물만 사주고 삐친 척 집으로 와버렸다. 있으면 저 많은 것들을 먹어야 하니까. 안 보면 모를까 보고 안 먹을 자신은 없었기 때문에.


딸은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하긴 엄마 그 나이에도 입맛이 좋은 게 신기하더니 탈이 나셨군. 잘 관리하셔. 그날 이후, 딸과 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한다. 뭘 드셨느냐, 소화는 잘되느냐 등등 시시콜콜. 막상 관심을 보이니 귀찮다. 어쨌든, 나는 요즘 소식(小食)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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