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출근한다고 나간 아들이 전화를 했다. 손수건을 놓고 왔다는 거다. 이 더운 날씨에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어쩌지? 내가 찾아서 현관 앞에 서 있을게. 올라올래? 아니며 내가 내려갈까?”
안 그래도 늦었는데, 이렇게 지체되다니. 급한 마음이 들었다.
“아뇨, 엄마! 던지세요. 아래로. 제가 공동현관문 앞에 있을게요.”
아들도 급한 모양이었다.
손수건을 찾아서 복도 창문 앞에 섰다. 아들이 1층 현관문 앞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던질게, 받아!”
아들이 웃는다.
손수건을 도르르 말아서 창문 밖으로 힘껏 내던졌다. 14층에서 던진 손수건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날아간다. 이 가벼운 것이 정확하게 공동현관문 앞에 떨어질까 싶긴 했다. 안에 사탕이라도 싸서 던져야 할 것 같았는데 급한 마음에 그대로 던졌다. 가벼운 것이 날아서 엉뚱한 곳에 떨어지면 어쩌나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단지 급했을 뿐이다. 얼른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던지고 나서 아차 싶었다. 기둥을 떠받치느라 만든 돌출된 베란다, 아 거기에 떨어지면 안 되는데.
걱정했던 것이 딱 맞는 경우, 가끔 있지 않은가.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낙하하는 손수건을 바라보던 아들이 아, 안 되는데, 하면서 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들도 그걸 걱정했던 모양이다. 우리의 걱정은 적중했다. 이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3층과 2층 사이 돌출된 베란다에 나비처럼 내려앉은 손수건. 흰색 바탕에 청색 체크무늬. 아들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거라는.
아들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왔다. 괜찮다고 했다. 땀이 줄줄 흐르는 채로 안아주며, 안타까워하는 나를 다독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실수했다고 말했다. 좋은 것으로 하나 사준다고. 아들은 손수건 많다며, 잊어버리라고 했다. 급히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한 것을 반성했다.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지혜롭지 못하니 어쩌면 좋은가 싶었다.
종일 마음이 찜찜한 것이 좋지 않았다. 계단 창문에 서서 3층과 2층 사이 돌출된 베란다 중간에 앉아 있는 손수건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방법으로 저것을 꺼낸단 말인가. 사다리차를 쓰지 않는 한 꺼낼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포기하고 말 것인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갔던 걸까. 아들이 전화를 했다. 절대 꺼낼 생각하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멈추지 않고 방법을 모색했다. 시도를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건 안 될 일이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는 등산이 최고다. 몸을 괴롭혀야 마음이 가라앉는다. 맨발로 산에 올랐다. 손수건 생각뿐이다. 이런 병통이 내게 있다. 고민되거나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라도 있으면 온통 그것에 집중된다. 어떻게든 해결이 나야 마음이 개운해진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으랴마는 나는 그게 심하다. 그래서 쓸데없이 마음을 괴롭힐 적이 있다. 손수건, 값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실수로 일어난 일이고, 위층에서 내려다보면 누구의 눈에든 거슬릴 것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산에서 내려올 즈음, 들고 갔던 등산용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것을 길게 빼서 잇자. 그러고 3층 복도 창문에서 발코니를 향해 들이밀면 손수건에 닿을 것이니, 그때 끌어올려 보자. 일차적인 내 생각이었다. 발걸음이 바빠졌다. 그 방법으로 꺼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리라. 포기를 해도 하는 데까지 해보고 하리라. 그냥 앉아서 포기하는 건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다. 이 작은 것에 삶의 방식까지 들먹이는 건 좀 과장이지만 그렇게 읊조리며 산에서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카치테이프를 가지고 3층 복도로 갔다. 지팡이를 늘릴 수 있는 한 늘린 다음, 두 개를 잇댔다. 흔들리지 않도록 10센티 정도 겹치게 해서. 단단히 묶은 다음 창밖으로 늘어뜨렸다. 의외로 그 높이도 꽤 되었다. 그래도 닿았다. 가벼운 손수건은 쉽게 지팡이 손잡이에 들려지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늘어뜨린 지팡이 손잡이에 테이프의 끈적끈적한 부분이 닿도록 감았다. 손수건이 그 부분에 닿아 끌어올려질 거라는 내 생각은 맞지 않았다.
마지막 방법은 손수건을 밀어서 1층 화단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가장 성공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손수건이 가벼워서 그런지 의외로 밀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결국 화단으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가벼운 탄성이 튀어나왔다. 이은 지팡이를 가늠해 보니 3미터는 족히 되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지라 약간 어지러웠다. 얼른 1층 화단으로 내려갔다. 성공이다. 손수건은 분홍 낮달맞이꽃 위에 사뿐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꽃보다 더 예뻤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손수건 사진과 함께. 아들이 깜짝 놀라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엄마가 꺼냈지. 난 뭐든 할 수 있어! 내 메시지에, 아들은 위험하게 왜 그러셨어요. 괜찮다니까요,라고 했다. 쉽게 포기하지 마.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된다고 해야지. 아무리 별 것 아니라도 그건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야. 못을 박았다. 아들은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알았다고 했다. 휴, 마음이 가볍다. 종일 짓눌렀던 것에서 헤어났다. 이게 뭐라고, 별것도 아닌데 말이다.
늦게 퇴근한 아들은 빨아서 건조대에 넌 손수건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나도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