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원주택, 그저 꿈일 뿐이다

꿈을 이루려면

by 최명숙

제자 ‘미’의 어머니가 복숭아 한 상자를 보내주었다. 인사도 하고 안부도 할 겸 전화를 했다. 미의 어머니는 지난봄 강원도로 이사해 전원주택에 살고 있다. 몇 년 전에 그 집을 사놓고 들며 날며 지내더니 아예 이사를 한 것이다. 언제든 놀러 오란다. 지나는 길에 들어와 자고 가란다. 얼마나 따뜻한 말인가. 가슴이 빵빵하게 부푸는 느낌이었다.


오래전부터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은 꿈은 꾸었다. 실제로 충주 산골짜기에 농가주택을 마련한 적도 있다. 삼 년 만에 팔고 말았지만. 그때 알게 된 마을 이장 부부와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다. 이십 년이 넘었는데. 농가주택을 사서 한여름 내내 수리했다. 천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사서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수리했다. 그때 행복했던 추억을 우리 가족은 가지고 있다.


그것을 판 것은 관리가 어렵고 다니기 쉽지 않아서다. 거리가 멀었다. 두 시간 족히 걸리는 곳이었으니까. 두세 주 만에 한 번 가면, 풀이 무성해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어쩌다 한두 달 만에 갈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상상을 초월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서 삼 년 만에 팔고 말았다. 우리는 작업실이라고 불렀는데, 가족들 누구도 그곳에 가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가기만 하면 풀 뽑고 청소하는 진정한 ‘작업’만 하니 누가 가려고 하겠는가.


그래도 나는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했다. 전원주택 매매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놓고 툭하면 들어가 보곤 한다. 양평이나 양주는 어떨까, 강화도는 어떨까, 우리 고향 근처는 또 어떨까. 갖가지 꽃과 나무, 유실수, 채소, 약초 등을 심어놓고 그들의 집사가 되어 함께 살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감나무와 살구나무는 꼭 심어야지 등등,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꿈꾸어 볼 때 있다.


언감생심이다. 이제 가격도 비싸거니와 아직도 이런저런 일에 몸담고 있으니 가서 살기 어렵다. 게다가 멀면 온이들 때문에라도 안 된다. 부르기만 하면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만큼 체력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내가 이곳의 일을 모두 놓아야 가능한데, 아직은 그럴 수 없다. 그러니 꿈을 꾸기는 하는데,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이 무슨 표리부동한 일인가.


한동안 그 마음을 꽁꽁 접어두었던 때도 있었다. 십여 년 그랬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시골이나 마찬가지다. 행정구역 상 서울이지만 이 마을이 형성되기 전까지 논밭이었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 서울로 나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치게 되면 저곳에서 집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생각해 보면 그 꿈이 이루어졌다. 이곳에 공동주택이 들어서면서 분양받아 살고 있으므로. 꿈은 이루어지는 게 맞는다. 꿈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전원주택 문제는 좀 다르다. 꿈은 꾸는 데 그 꿈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있으니까. 그저 요원한 꿈일 뿐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꽤 있을 것 같다. 포기가 아니고 초월해야 할 것들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갈아엎어야 한다. 불편한 것들을 수용해야 한다. 그것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하는 일들을 놓을 수 없다. 그게 문제다. 무소유의 삶을 살 용기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미의 어머니에게 지나는 말로 물었다. 혹시 그 동네에 매물로 나온 집이 있느냐고. 있단다. 바로 옆집이란다. 그러면서 그 집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환상적이었다. 집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정원도, 화단도, 집안 곳곳 모두 내가 꿈꾸던 집이다. 게다가 다락방까지.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180평 대지에 30평으로 지은 주택이다. 주황색 지기와 지붕이 유럽의 어느 집 같다.


가족 톡방에 영상을 올렸다. 딸이 환호성을 질렀다. 참 예쁘다고,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온이들도 좋아할 거라고, 하지만 꿈일 뿐 직장은 어쩌고,라는 끝 문장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들은 한두 번 가보는 건 괜찮지만 살긴 싫단다. 자기는 도시형 인간이라며. 나는 그냥 꿈일 뿐이라고 했다. 마음으로야 당장에라도 가서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충주의 작업실을 가져 본 전적이 있어 더 현실성은 낮아졌다. 아니 현실성 전무다.


자꾸 그 영상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래도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그냥 생각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초월해야 하고, 감수해야 한다. 내 삶뿐 아니라 생각을 바꾸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과단성 있게 그곳으로 이사한 미의 어머니가 달리 보였다. 예전부터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실현해 가는 모습이.


언제든 와서 자고 가라는 미 어머니의 말이 아쉬운 마음을 다독거린다. 따뜻한 그 말이. 진정 전원주택은 그저 꿈일 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손수건, 포기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