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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어미다

딸의 생일날 아침에

by 최명숙


나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어미다. 내가 늦게 다시 학업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학위과정을 간신히 마쳤지만 논문을 쓸 수 없었다. 아들과 딸도 대학생이었고, 특히 딸은 졸업 한 학기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몇 년 전부터 투병하고 있는 남편을 가족 누군가는 돌봐야 했다. 지금처럼 장기요양보호 제도가 의료법으로 실행되기 전이었다. 당연히 그 몫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어서 학위논문을 쓰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무리를 못할 것 같았으니까.


내 상황을 뻔히 아는 딸이 휴학을 자청했다. 흔쾌히 받아들였다. 전혀 만류하지 않았다. “알았어, 내가 먼저 마치고 나면 네가 복학해.” 동생들을 먼저 공부시키고 나중에 진학했던 나인데, 어떻게 딸에게는 이다지도 이기적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과연 어미인가. 지금에 드는 생각이다. 그 당시엔 잠시 망설임도 없었다. 결국 딸이 휴학하고 살림하며 남편 병시중을 했다. 그것도 2년 반이나. 이렇게 이기적이고 뻔뻔한 어미가 어디 있단 말인가.


보통의 어미가 가지고 있는 희생과 헌신에서 너무도 동떨어진 나의 결정에, 주위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기적이라고. 정작 딸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런 나도 어미란 말인가. 딸이 자발적으로 휴학하겠다고 나선 것을 말리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내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꼬박 2년 6개월 동안 딸은 살림과 병시중을 했고, 나는 가정경제를 책임지면서 논문을 마무리해 학위를 받았다. 내 학위의 절반은 딸의 희생과 헌신으로 취득한 것이다. 그 학위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 단지 끝까지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고맙기도 했지만. 딸이 복학하여 학기를 마치고 졸업연주회까지 하느라 그로부터 1년이 걸렸다. 졸업식에서 지도교수가 말했다. 이 학생의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고.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뻔뻔하고 이기적인 어미인 것이 그제야 부끄러웠다. 고개 숙인 내게 딸의 지도교수가 말했다. “멋있어서 뵙고 싶었던 겁니다. 잘하셨어요.”라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후 딸에게 어떤 모양으로라도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대학원에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첫 학기만 등록금을 내주고 못했다. 집안형편을 생각해 딸이 학교 조교를 하면서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딸이 부탁하면 망설이지 않고 육아 조력하러 달려가는 것은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온이들이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겨우 그거다. 어떻게든 보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부모자식 간에 그렇게 계산할 일은 아닐 터다.


오늘이 딸의 생일이다. 새벽에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오른다.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모바일 꽃바구니도 보냈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딸’이라는 낯간지러운 어휘도 써보았다. 옛일을 거론하지 않고 그냥 고맙다는 표현도 썼다. 그러고 딸의 계좌로 금일봉을 송금했다. 사위와 온이들과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송금한 후 한참 동안 딸과 결혼 전 함께 살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게 아쉽다.


전화벨이 울렸다. 딸이다. “새미야, 생일 축하해. 미역국 끓였니?” 내 말에 딸은 미역국 평소에 하도 먹어서 질렸다며 웃는다. 저녁에 식구들과 뭐라도 시켜 먹으라고 조금 보냈다고 했더니, 엄마나 쓰지 왜 그러냐며 고맙단다. 시부모님께서 꽃바구니와 축하금도 두둑하게 보내주셨다고 했다. 요즘엔 시부모 노릇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며 더 잘해드리라고 당부했다. 나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어미인데, 딸의 시부모님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다.


성경에 부모를 잘 섬기면 땅에서 잘되고 오래 사는 축복을 누린다고 했다. 어느 경전에도 효를 강조하지 않는 곳이 없다. 딸은 내게나 남편에게나 효를 실행한 아이였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그러니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그와 같은 내용을 담아서. 부모의 덕담은 자식에게 축복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이기적이고 뻔뻔한 어미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감해질까. 언젠가 딸에게 내색한 적이 있다. 딸이 말했다. “응, 엄마가 좀 그런 면이 있지. 인정.” 장난스럽게 말하는 딸을 향해 눈을 흘기며 웃었다.


가끔 그 힘든 작곡을 공부해 놓고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게 나 때문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 욕심부리지 말고 딸 뒷바라지를 했다면 꿈대로 드라마나 영화 음악을 만들면서 지금보다 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창작은 전혀 안 하느냐고 물으면, 지금은 온이들 돌보고 직장생활 잘하는 게 할 일이란다. 작곡은 언제든 때가 되면 할 거라며. 딸이 원하는 피아노를 살 때 대금을 조력한 것이 그나마 마음의 부담을 더는 것이 되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나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어미이다. 이 마음은 평생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보통 어미들에게 있는 ‘희생’과 ‘헌신’이 내게는 멀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낳고 기르고 가르친 것으로 내 할 노릇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언제나 이기적이고 뻔뻔했던 어미의 탈을 벗을 수 있을까. 딸의 생일날 아침에 든 생각이다. 나는 한계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두고두고 갚아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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