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온이네 텃밭

일상

by 최명숙


며칠 전 딸이 전화로 알렸다. 텃밭 신청한다고. 봄도 아니고 이제서 무슨 텃밭을 하느냐고 했다. 아파트에 딸린 작은 텃밭을 이제 정돈하여 분양한단다. 약간 들뜬 듯했다. 온이와 또온이가 좋아할 거라며. 내가 텃밭 농사를 지을 때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딸이다. 그러더니 어제 결과가 나왔다고 알려왔다. 당첨되었다고. 몇 평이냐고 물었더니 가로 세로 1미터란다. 그 정도도 텃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웃음만 나왔다.


모종을 사러 간다는 둥, 어떤 걸 심는 게 좋겠느냐는 둥, 퇴비를 해야 하냐는 둥 전화로 시시콜콜 묻는다. 모종은 상추 몇 포기와 아욱이나 사다 뿌리라고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모종 사러 간다고 전화를 했다. 온이들이 신나서 떠드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헛웃음만 자꾸 나왔다.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무엇을 심을까 싶어서. 온이들도 그렇지만 딸도 들떠 있는 듯했다. 그건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리라.


내일 오란다. 상추 모종 같이 심자고. 온이도 소리쳤다. 내일 같이 텃밭 가꾸자고. 적당히 핑계 대며 못 간다고 했다. 딸에게 말했다. 많이 심으려고 하지 말라고. 욕심대로 되지 않는 게 농사이고 자식이라고.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기대되는 목소리였다. 밝고 호기심이 가득했다. 가까운 거리라면 상추 다섯 포기를 심든, 두 포기를 심든, 가서 함께 즐기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는다.


텃밭에 대한 딸의 태도가 긍정적인 게 나는 좋다. 결혼하기 전 내가 텃밭을 할 때, 딸은 늘 불만이었다. 사 먹는 게 편한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소출이 대단히 많이 나는 것 아니고, 상품성도 떨어진다며. 더구나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텃밭에 들러 물 주고 풀 뽑느라 지체되는 걸 타박하곤 했다. 옷 버리고 힘들게 왜 그러냐면서. 가을에 김장용 채소를 키울 때 새벽마다 가서 벌레 잡느라 힘들어하면 더 이해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러던 딸이 텃밭 가꾸기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신기하고 고무적이다.


그건 아이들 때문일 것이다. 온이들에게 식물 자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그렇다고 해도 선험적인 게 없었다면 선뜻 텃밭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내가 하던 텃밭 가꾸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측면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까짓 1미터짜리 텃밭을 두고 딸은 계획이 많은 것 같다. 모종만 15,000원어치 사 왔다고 한다. 박장대소했다.


딸은 왜 자꾸 웃느냐며 자기도 웃는다. 그 작은 밭에 어떻게 다 심으려고 모종을 그리 많이 샀느냐고 했더니, 종류만 해도 여섯 가지란다. 거기다 아욱씨도 주문했다니, 웃음이 안 나올 일인가. 호미를 갖다 준다고 했다. 이미 그것도 주문했단다. 물뿌리개와 꽃삽도. 농기구와 씨앗 모종 값만 해도 사 먹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웃는다. 딸은 예전에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나서 웃는 것이리라. 그걸 나는 안다.


수화기 너머에서 온이가 내일 오라고 또 조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일 아침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섣불리 약속했다가 안 가면 신뢰가 떨어진다. 온이는 아는 것 같다. 식물을 땅에 심으면 자라고 그것을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도 신뢰다. 씨를 뿌리면 반드시 싹이 나온다. 큰 소출은 없더라도 온이와 또온이가 텃밭 농사를 통해 그것을 알면 좋겠다. 잘 보살피고 관심을 가지면 더 잘 자랄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본다면 가로세로 1미터짜리 작은 텃밭에서 얻는 교훈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것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게 즐비하니까. 텃밭을 가꾸면서 무엇이라도 깨달을 수 있을 테니, 이제 그만 웃어야겠다. 그래도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온다. 어이가 없어서 그렇고, 텃밭 가꿀 생각을 했다는 것이 함함해서 그렇고, 온이들이 재밌어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그렇다.


온이네 텃밭에서 문 닫고 먹는다는 가을 상추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온이들 얼굴에 웃음꽃 가득하기를. 딸과 사위는 농사를 통해 자식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깨닫게 되기를. 아, 내일 온이네 텃밭에 채소 모종 심으러 가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