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걷기, 처음 누가 권했을 때 들은 척 안 했다. 이런 문명시대에 무슨 원시시대적 발상이냐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산에 갈 적마다 차츰 맨발 벗은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무슨 조화 속일까. 차츰 관심이 갔다. 아프지 않을까. 상처 나지 않을까. 벌레 물리지 않을까. 세상에 있는 의심과 걱정을 죄다 하면서도 관심이 갔다. 그러다 아무도 없는 자드락길에서 등산화를 벗었다. 맨발 걷기에 유혹되는 순간이었다.
신발을 벗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온몸에 땅의 기운을 느꼈다. 가만히 서 있었다. 땅에 발이 착착 들러붙는 느낌이라고 할까. 서서히 온몸이 땅에 안기는 듯했다. 보드라운 흙, 딱딱한 돌멩이, 거친 나뭇가지들, 땅 밖으로 나온 뿌리. 세상의 희로애락을 잉태하고 있는 것 같은 땅의 것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걸었다. 악! 뾰족한 돌 모서리에 찔려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외쳤다. 다시 보드라운 흙, 그러다 거친 길. 그런 길을 걸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흔히 가시밭길이라고 하고, 고해라고 하지 않던가 말이다. 가시밭길 보다 나았다. 적어도 산길이 가시밭길은 아니니까. 고해도 아니었다. 걸으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울고 싶을 때 더 걸었고, 몸이 무거울 때 더 걸었다. 처음엔 십분, 다음엔 이십 분. 그렇게 서서히 늘려서 지금은 두 시간 정도 맨발로 걷는다. 괜찮다. 여전히 발바닥에 통증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통증 때문에 깜짝 놀라 뇌가 깨어난다고 하니까.
작년에 문인들끼리 바닷가에 간 적 있다. 맨발 걷기 효능은 바닷물이 촉촉이 젖어있는 모래사장이 가장 좋단다. 망설이지 않고 신발을 벗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유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라고. 몇은 벗었고 몇은 머뭇거렸다. 그러다 결국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신을 벗었다.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고 사진을 찍었으며 바다를 응시했다. 발에 느끼는 모래 감촉과 멀리 뵈는 수평선, 망망대해 그 푸른 바다. 나도 바닷물이 된 듯 모래가 된 듯 저 수평선이 된 듯했다.
그날 이후 한 사람은 맨발 걷기 마니아가 되었다. 나보다 더 꾸준히 한다. 그 작가와 통화하게 되면 맨발로 걸은 경험이 단골 화제로 나온다. 맨발 걷기 경험담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흐르고 만다. 작품 이야기보다 그게 더 주가 된다. 그만큼 매력 있는 게 맨발 걷기다. 잠을 잘 잔다, 소화가 잘된다,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관절 아프던 게 괜찮다, 수족냉증이 사라졌다, 혈압이 정상으로 되었다, 암이 나았다 등등. 들은 이야기가 많다. 맨발 걷기는 만병통치약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때문에 맨발 걷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땅에,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빚은 그 흙에, 내 신체의 일부를 접촉한다는 게 의미 있어서다. 물론 그것으로 인한 순기능을 체험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날이 사라졌으니까. 여섯 시간 동안 숙면한다. 당연히 컨디션이 좋아, 종일 피로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것 하나로도 충분히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에서 맨발 걷기를 매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낮에 시간이 안 되면 저녁에 천변을 걷는다. 천변 가에 모래가 쌓인 작은 삼각주가 있다. 그러면 거기서 또 삼십 분 정도 맨발을 벗고 왔다 갔다 걷는다. 간혹 묻는 이가 있다. 그러면 건강해지느냐고.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맨발을 벗는 이가 있고, 씩 웃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모두 선택이다.
사실, 나는 의심이 많다. 처음엔 저게 무슨 효과가 있으랴 싶었다. 그런데 어떤 연구자가 쓴 논문을 보았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다. 근무하는 학교에서 교사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업 시작 전에 맨발로 운동장 걷기 실험을 했단다. 물론 원하는 사람만. 결과는 놀라웠다. 교사들은 스트레스 지수가 현저히 낮아졌고, 어린이들은 학습 효과가 향상되었다. 그 후 맨발 걷기 효능에 대한 의심은 사라졌다. 무엇보다 직접 체험해 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다.
그 논문을 읽고 나서 학교마다 저렇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던 학교는 대운동장이나 소운동장이나 맨발 걷기를 할 수 없게 돼있다. 운동장 바닥이 흙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초중고는 대부분 흙이 아니던가.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방과 후에 지역 주민들이 운동장을 사용하면 어떨까 싶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요즘엔 학교 문이 닫혀 있는 게 보통이므로.
어느 시는 공원의 일정 구역에 황토를 깔아 맨발 걷기를 장려하고 있다. 그런 곳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우리 옆의 도시다. 걷는 것만도 좋은데 흙길을 맨발로 걷는다면 어찌 아니 좋으랴. 그것도 좋고, 바닷가나 학교 운동장도 좋지만 산길은 더욱 좋은 것 같다. 거친 길을 맨발로 걸으며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게 되므로. 보드라운 흙, 거친 흙, 나뭇가지와 뿌리, 돌멩이, 바위 등이 있는 거친 산길을 걸으며, 삶의 여정 또한 그러하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그 거친 길을 맨발로 걸어왔듯, 내게 닥치는 문제들도 그렇게 맨몸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걸.
서늘한 바람이 분다. 하늘은 새털구름 옅게 펼쳐진 가운데 푸르디푸른 얼굴을 내보인다. 산이 손짓한다. 이제 또 산길, 그 거친 산길을 발밤발밤 걸어야겠다. 다 가시지 않은 고뇌의 편린들을 버리고, 마음을 맑히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