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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카바보가 틀림없다

나들이

by 최명숙

온이와 인사동에서 만났다. 어린이 공예박물관에 가기 위해서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 예약하기 힘들었다고 딸이 말했다. 아들까지 시간을 냈다. 우리를 본 온이는 깜짝 놀라며 뛰어와 안겼다. 목소리에 애교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사위는 직장 때문에 함께 못했고, 또온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온이만 데리고 왔다. 온이는 유치원을 결석했다. 우리 넷은 예약시간까지 인사동에서 놀기로 했다.


모처럼 경양식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갤러리에서 그림 구경을 했으며, 나침판과 열쇠고리 등에 관심이 많은 온이에게 하나씩 사주었다. 온이는 나침판을 목에 걸고 거기에 열쇠고리와 책갈피까지 걸어 쟁그랑 소리를 내며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들과 딸은 온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사주고 해 주었으며, 가자고 이끄는 대로 갔다. 뒤에서 따라다니는 나는 덥고 힘들었지만 그 모습을 보는 것만도 함함해서 아무 소리 못했다.


모든 관심이 저에게 쏠려 있는 게 좋았던 것일까. 우리를 만난 게 좋았던 것일까. 온이 목소리는 처음 듣는 예쁜 목소리로 변했다. “오늘 같은 여행 참 좋아요. 행복해요.” 어찌나 애교스럽게 말을 하던지 우리 모두 덩달아 행복해진 듯했다. 행복이 별것인가. 이런 것이지 싶어, 더위도 잊고 인사동 골목을 누볐다. 내 손과 아들 손을 잡은 온이는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고 웃으며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온이가 힘들다고 했다. 아직 만 네 살밖에 안 되었으니까. 우리가 번갈아 안아주었다. 쉽지 않았다. 이제 제법 덩치가 있으니까. 더위를 식히려, 전통찻집에 들어가 팥빙수와 오미자차를 마시고 났을 때, 예약시간이 가까웠다. 공예박물관은 인사동 건너편에 있었다. 볕은 따가웠고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깔렸다. 우리는 차와 사람들이 들어찬 길을 건너 박물관으로 들어가 체험학습에 참여했다. 점토와 목공놀이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아들과 딸은 온이가 체험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나는 잠시 보다가 전시된 책을 읽었다. 도자기에 관련된 것으로 심수관 일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온이는 자기가 하는 것에 누가 손대거나 시키는 것을 싫어했다. 자기 마음대로 했다. 창의적인 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게 성취감도 있을 테니까. 하나의 작업을 해냈을 때, 아낌없이 칭찬만 해주었다. 아들은 온이가 하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뭐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쳐다보고 있었다. 조카바보가 아니고 뭔가.


딸은 힘들면 의자에 앉아 쉬었다. 가끔씩 온이를 보면서. 전적으로 담당하다시피 하는 건 아들이었다. 나는 거의 개인행동만 했다. 우리가 아이들 키울 적엔 생각하지도 못했던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대부분 무료다. 신청만 하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체험을 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은 예약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동안 체험한 다음, 다시 인사동으로 왔다. 도자기 전시장 견학을 했고, 전통 떡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떡을 먹었다. 온이는 한 수다했다. 말을 조잘조잘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아들은 온이 말에 빠짐없이 대꾸해 주었다. 나와 딸은 다른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들이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도 온이 말 상대는 내가 해주었을 것이다. 딸은 지친 듯했다. 더구나 초행길에 더듬대며 운전까지 하고 왔으니.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딸은 광화문 건너편 주차타워에 차를 세웠단다. 거기까지 온이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인사동을 몇 바퀴나 돌아서 그럴까. 온이는 다리가 아프다며 주저앉았다. 그때 아들이 얼른 등을 내밀었다. “온아, 삼촌 등에 업힐래?” 하면서. 온이는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져 얼른 업혔다. 깜짝 놀랐다. 아들이 그렇게 등을 내밀 줄 몰랐으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 남자가 아기를 업고 있는 모습, 상상해 보시라. 우습지 않은가. 처음 업어서 어정쩡해 보였지만 넓은 등에 업힌 온이는 어느새 머리를 등에 기대고 싱글벙글 웃었다. 좋은 모양이었다. 딸과 나는 박장대소했다. 안고 다닐지언정 업는 게 어디 쉬운가 말이다. 그것도 젊은 남자가. 아들은 전혀 상관없단다. 온이만 생각하면 뭐라도 다해주고 싶다며. 그는 조카바보가 틀림없었다.


그렇게 업고 주차타워까지 걸어갔다. 온이는 삼촌 등에서 콧노래를 흥얼댔다. 아들의 이마와 목에 땀이 줄줄 흘렀다.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힘들면 내가 업겠다고 해도, 아들도 온이도 싫단다. 온이는 삼촌의 목을 더욱 끌어안았다. 아들 덕분에 나와 딸은 편하게 나들이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물었다. 그렇게 온이가 예쁘냐고. 그렇단다. 세상에서 온이와 또온이처럼 예쁜 아기가 있겠느냐며. 나중에 결혼해 네 아이 낳으면 달라질 거라고 은근슬쩍 말했더니, 씩 웃고 만다. 온이들을 자주 만나 아기가 예쁜 것을 알면 결혼할 마음이 생길까. 조카는 마음껏 예뻐하기만 하면 되고, 책임지지 않아도 돼서 그렇다던가. 요즘 조카바보 삼촌과 이모 고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들이 온이 업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 사진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온이 크면 삼촌이 이렇게 예뻐했다는 것을 증명해.”라고 했다. 아들이 웃었다. 사진 속에 온이를 업고 있는 아들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혹시 아기를 업고 가는 사십 대 남자를 보았다면, 그 남자가 바로 우리 아들이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아기 업은 남자는 없었으니까. 조카바보 우리 아들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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