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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의 애청 프로그램

편견

by 최명숙


의외였다. 어머니가 그 프로그램을 즐겨본다는 게. 우리 집에 오셨을 때다. 어머니가 애청하는 ‘6시 내 고향’이 끝나자, 나는 리모컨을 집어 얼른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보고 싶은 채널로.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그냥 두란다. 좋아하는 프로 할 거라며. 그게 뭐냐고 하니까, 글쎄 그냥 두라며 리모컨을 아예 뺏었다. 조신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상인 나의 어머니가 이 무슨 과격한 행동인가. 깜짝 놀랐다.


그럴 정도로 좋아하는 게 어머니에게 있었던가. 언제나 내가 하는 대로 따라주던 어머니였는데. 연세가 드시니 숨겨졌던 본래 성정이 나타나는 걸까. 아니, 예전과 달라지면 치매 증상일 수 있다던데. 그런 걸까.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싶어 치매 검사 해보셨느냐고 했다. 불과 지난주에 했는데, 아무 이상 없단다. 요리조리 살펴보고 옛날이야기도 꺼내보았다. 기억력이 나보다도 낫다. 그럼 뭘까. 진정 애청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인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좋아하는 프로가 뭐냐고. 어머니는 ‘6시 내 고향’ 끝나고 조금 있으면 한단다. “그게 뭐냐고요.” 답답해서 다시 물었다. “아, 있어. 우리말 겨루기. 월요일에 하는 거!” 기막혔다. 아니 놀라웠다. 어머니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아니지 않은가. 가요무대나 연속극이라면 몰라도, ‘우리말 겨루기’라니. 의외였다. 정말 그걸 좋아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며, 몇 문제는 늘 맞힌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우리말 겨루기’를 보기로 했다. 의도해서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상태에서, 우연찮게 보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매주 월요일에 하는 그 프로그램을 꼭 본다고 하셨다. 올해 89세인 어머니가 교양 프로를, 더구나 우리말 퀴즈를 보신다니, 의외도 이런 의외는 없다. 오락프로그램이 아니잖은가.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럴만하지 않은가. 우리말 겨루기라니.


홈페이지에 보면, “재미있는 퀴즈와 숨 막히는 대결 구도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온 국민의 우리말 지킴이 운동에 앞장서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말이 재밌는 퀴즈지, 연로하신 어머니가 재미를 느낄 정도는 아니라는 게 내 소견이다. 솔직히. 한정된 어휘만 평생 사용하며 산 어머니가 어떻게 이런 교양 프로그램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도 편견이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텔레비전 앞으로 몸을 당겨 앉으셨다. 리모컨을 꼭 쥐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 꼭 다문 입, 직접 그 프로에 참여하여 퀴즈를 푸는 사람 못지않다. 어머니는 ‘6시 내 고향’보다 더 집중해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신선해서 나는 프로그램보다 어머니 모습에 더 시선이 갔다. 아는 문제가 나오면 참가자보다 먼저 답을 말했다. 참가자가 모르면 에구 이거라니까. 참나! 하면서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가 틀릴 때 더 많았지만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고도 남을 자세로 열중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어머니를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그럴 수밖에. 퀴즈라도 보통 퀴즈인가. 우리말에 대한 것인데. 어휘와 띄어쓰기 등도 예사롭지 않게 어려운 것들 아닌가. 내가 가진 그 생각은 편견이었다. 구순이 낼 모레인 어머니니까 당연히 그런 프로를 안 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날 어머니는 세 문제를 맞혔다. 맞힐 때마다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봐라, 내가 이 정도다,라는 듯이.


하긴 젊었을 적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주곤 했다. 그걸 잊었다. 숱한 이야기들 속에서 어휘력을 절로 익혔을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모인 우리 집 등잔불 아래서 이야기책을 읽으셨다. 겨울밤에. 장날 빌려온 책을 들고 오신 옆집 할머니나 뒷집 아주머니, 건네받은 책, 흐릿한 등잔불, 어머니의 낭랑한 책 읽는 소리, 싸락싸락 내리는 눈, 훌쩍이며 눈물 훔치는 사람들, 숙제하며 듣던 그 이야기책의 내용들. 나중에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을 때, 어렴풋하던 그 내용이 내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그걸 잊고 있었다. 엄밀하게 보면, 어머니는 나보다 먼저 문학을 대했던 분 아닌가. 내가 객지 떠돌며 살 때, 손수 편지를 써서 보내곤 하셨으니, 창작도 먼저 하셨고. 그러고 보면 어머니가 우리말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게 하나도 이상하거나 신기할 일이 아니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정해 버린 내가 문제였던 것이지. 어머니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딸이라는 걸 그날 비로소 깨달았다. 그게 얼마나 송구했던지. 그런데도 겨우 한 말은 비루하기 그지없는 거였다. “엄마 잘 아시네요.”라는. 어머니는 빙긋 웃으셨다. 그 한마디에도 무척 흐뭇하신 듯.


우리 어머니의 애청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 두세 문제를 맞힐 뿐이지만 월요일 저녁만 되면 꼭 시청하신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집중하는 모습은 청년 못지않다. 오늘은 월요일. 어머니는 저녁에 또 그 프로그램을 보시리라. 당연하다. 이제 어머니에게 갖고 있는 내 생각이 바뀌었다. 의외, 그건 편견의 다른 이름이니까. 저녁에 전화해서 재밌게 보셨느냐고, 몇 문제 맞혔느냐고 여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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