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답안지

그런 날이 있었다

by 최명숙

오래전 중간고사 때였다. 칠판에 문제를 적었다. 세 문제다. 두 문제는 공부를 했어야 풀 수 있는 것이고, 한 문제는 점수를 주기 위해 낸, 본인 견해를 쓰는 것이다. 문창과 학생들이 오죽 잘 쓸까.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해도 수업시간에 들은 것들이니, 그야말로 ‘썰’ 푸는 데 도통한 인간들인데.


너무 쉽게 냈나, 그럼 나중에 성적 내기 골치 아픈데. 한 문제만 더 낼까. 아니다, 기말고사 때 어렵게 내야지. 잠시 고민했다. 사실, 답안지 쓰는 인간들만 머리 굴리기 힘든 게 아니다. 문제 내는 인간도 힘들다. 상대평가 과목일 때는 더욱. 마음을 접고 교탁 앞에 섰다. 긴장을 풀기 위해 한마디 한다.

“혹시, 교수님 미인이십니다, 사랑합니다, 그런 거 쓰지 마요. 다 알고 있으니까.”

풋푸푸훗. 여기저기 웃음 참는 소리가 들린다. 미소만 살짝 머금은 학생도 눈에 띈다. 귀엽다. 그리고 다시 눈을 부라리며 감독에 들어간다.


사각사각. 글씨 쓰는 소리와 숨소리만 들린다. 시선을 180도로 움직이며 구석구석 감시한다. 그러나 실상은 아니다. 그저 감시하는 척하는 거다. 한 군데 시선을 두는 것도 눈 아프니까, 여기저기 눈알을 돌려볼 뿐이다. 내 경우다. 모든 선생들이 그렇다고 보는 건 오산. 가끔 교탁을 앞에 두고 좌우로 걷는다. 그러다 시선을 한곳에 집중하기도 한다. 지루하다.


시험 감독처럼 지루한 게 없다. 시집 한 권을 교탁에 펼쳐 놓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서사가 재밌는 소설책을 앞에 놓아도 마찬가지다. 신문을 들고 들어가는 선생도 있다지만 그거라고 눈에 들어올까. 스마트폰이라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솔직히 아니다. 아무리 심심하기로 그걸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감독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난 공상 중이다. 공상이나 상상은 내 특기다.


문제를 칠판에 적은 지 3분쯤 지났을까. 이○○ 군이 답안지를 들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팔자걸음이 심했다. 저 친구가 평소에도 저렇게 걷던가. 그런데 벌써 답안지를? 이○○ 군은 쭈뼛거리더니 답안지를 불쑥 교탁에 놓는다. 백지다. 말로만 듣던 백지 답안지다. 대학 선생 노릇 2년이 된 그때까지, 단 한 명도 그런 답안지를 낸 적이 없다.


마흔여섯 살의 내 치기를 건드리다니. 분노가 화악 치밀었다. 내게 반항하는 건가. 가만히 보니 완전한 백지는 아니었다. 맨 끝에 아주 작은 글씨로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우쒸 몰겠다’라고. 분노가 더 화악 치밀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출입문 쪽으로 나가는 이○○ 군을 불러 세웠다. 작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 이리 와 봐. 우쒸? 내게 하는 말인가?”

뜨악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선 이○○ 군. 눈을 껌벅이며 나를 쳐다본다. 눈싸움하듯 쏘아본다. 답안지를 돌리더니 고친다. ‘우쒸’를 ‘오이씨’로.

“오이씨는 또 뭐지?”

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꼬리를 내리는 게 낫다. 간혹 보면 끝까지 대거리하며 덤비는 인간들도 있다니까. 물론 들은 소리다. 조금 부드럽게 말했다.

“뭐라도 써야지이. 백지 답안지 내면 F 나올 수 있는데. 상관없어?”

“…….”

“다시 들어가서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써. 점수 주기 위해 낸 문제도 있잖아.”


십 분이 흐른 후, 다시 이○○ 군이 답안지를 제출했다. 딱 세 문장짜리 답안지다. 그것도 쥐어짜서 쓴 듯, 지웠다 썼다 반복한 흔적이 역력했다. 백지가 아닌 것에 안도했다. 백지 답안지를 내면 선생으로서 자존심 상하니까. 나는 그렇다. 세 문장 중 한 문장은 맨 아래 ‘오이씨 몰겠다’를 볼펜으로 두 줄 긋고, 바로 아래에 썼다. ‘뛰어쓰기 틀려서 지송함다.’라고.


“뛰어쓰기? 자네 지금 뛰어가나? 지송? 에그.”

이○○ 군은 긁적긁적 뒤통수 긁으며, 나가지도, 그냥 있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잡아놓는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만히 보니, 공부를 안 했을 뿐이지 반항한다거나 대거리하는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종이었다. 그냥 순하고 착한 한 시대 한 계층을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 2000년대 초 스무 살짜리 대학생의 전형이다. 갑자기 애정이 화악 솟아난다. 빙긋 웃으며 등을 밀었다.

“얼른 뛰어 나가!”

씩, 웃는 불그레한 이○○ 군 얼굴에 솜털이 오르르 돋고 있었다.


그 이○○ 군도 이제 불혹이 넘었겠다. 어디서든 열심히 뛰어다니며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애쓰고 있을지도. 뛰어다니다가, 띄어쓰기 잘못된 문장을 보면, 내 생각 한 번 할까? ‘뛰어쓰기’가 아니고 ‘띄어쓰기’라는 것도.


아참, 그 후 이○○ 군은 기말고사 성적을 잘 받았고, 과락을 면했다. 나는 웬만해선 F를 잘 주지 않는 선생이었다. 대신 공부를 많이 시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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