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비 오던 날
오늘 아침, 비다운 비가 내린다. 마른장마가 칠월 중순까지 계속되었고, 내린다 해도 아주 가끔 자취만 남기던 비였다. 산자락 중턱에 아직도 걸쳐 있는 비구름. 아마도 더 내릴 모양이다. 유리창에 방울져 흐르는 빗방울은 작은 구슬처럼 예쁘고 또록또록하다. 난간에 붙어 있는 빗방울은 동그랗게 커지다가 급기야 투욱 떨어진다. 가만히 창가에 서서 빗물을 쳐다본다.
나는 비를 유난히 좋아한다. 그 이유가 뭘까. 비 오는 날 어머니가 호박 송송 썰어 넣고 해 주던 빈대떡 때문일까.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때문일까. 양철지붕을 인 사랑채에서 들었던 빗소리 때문일까. 비를 간절히 기다렸던 그날 때문일까. 아무래도 그날 때문인 듯하다.
열두 살쯤 때였다.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의 보따리 속에서 ‘지우산’이 하나 나왔다.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우산이었다. 기름을 먹여서 그랬을까. 우산은 누르스름했다. 하지만 예뻤다. 할머니는 지우산을 내게 주셨다. 잘 두었다가 비 오는 날 쓰라며. 내게도 우산이 생기다니. 꿈인가 생신가 싶었다. 물건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내 소유로 정해진다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날부터 비가 오기를 고대하며 기다렸다. 비는 쉽게 오지 않았다. 장마철이었는데도 오지 않았다. 날이 조금만 꾸무럭거려도 비가 오지나 않을까 하늘을 수십 번 쳐다보았다.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혹시나 싶어 방문을 살짝 열고 밤하늘을 보았다. 여름 밤하늘에는 별이 유난히 빼곡히 들어찼고, 은하수가 하늘 가운데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야속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 눈물을 흘린다는 칠석이 되어도 비가 오지 않았다. 할머니께 비가 언제 오느냐고 매일 몇 번이고 물었다. 개미집을 유난히 살피기도 했다. 개미가 줄 지어 움직이면 비가 오기 때문이었다. 잠자리가 낮게 나는지 눈여겨보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비가 오고 있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고이고이 간수했던 지우산을 꺼냈다. 동생이 내가 펼친 우산 속으로 쏙 들어왔다. 우리는 같이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갔다. 동생 어깨를 한 손으로 안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었다. 빗방울이 또르르 우산을 타고 떨어졌다. 찰방찰방 고무신에 밟히는 빗물이 소리를 냈다. 걸을 때 허리에 묶은 책보가 조금씩 흘러내려 신경이 쓰였지만, 동생이 젖을까 봐 어깨를 안다시피 하고 걸었다. 동생은 내 팔 안에서 작은 어깨를 움츠리고 걸었다. 가끔 나를 보고 살짝살짝 웃었다. 비바람이 칠 때마다 우산과 함께 우리는 머리를 수그렸다.
동생을 교실에 들여보내고 우리 교실로 왔다. 짝꿍 순이가 우산 샀느냐고 아는 체했다. 조금 으쓱하는 기분으로 할머니가 사주셨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교실 뒤 우산 꽂아놓는 양동이에 자꾸 눈길이 갔다. 다른 우산들과 함께 누르스름한 내 지우산은 얌전히 있었다. 혹시 누가 집어가지 않을까, 흠집 내지 않을까, 공연히 염려되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며 그만 잊고 말았다.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비가 그치기 시작하더니, 학교가 파할 무렵에는 언제 비가 왔냐 싶게 하늘은 쨍하게 개어 파랬다. 친구들과 어울려 후다닥 교실에서 뛰어나왔다. 집에 다 도착해서야 우산을 놓고 왔다는 걸 생각해냈다. 암담했다. 십리 가까이 되는 먼 길을 걸어 다녀와야 한다는 것보다, 지우산이 그대로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책보를 방에 휙 던져놓고 달리다시피 학교로 갔다.
교실 문은 잠겨 있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까치발을 하고 교실 뒤 우산을 꽂아놓았던 양동이를 찾아보았다. 양동이는 그대로 있는데 내 지우산은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훌쩍훌쩍 울었다. 눈물이 자꾸 나왔다. 우산 잃어버렸다고 할머니께 꾸중 들을까 봐 그런 게 아니었다. 딱 한 번 사용한 우산, 어렵사리 내 몫으로 정해진 우산을 잃어버린 게, 속상하고 아쉬웠다. 비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고대했던 시간들이 허무하고,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내 경솔함이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이 녀석!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왜 그리 건망증이 심해. 옛다! 우산, 네 거지?”
언제 오셨는지 선생님께서 지우산을 내미셨다. 내 울음소리가 교무실까지 들려 나와 보셨단다. 훌쩍거리던 울음이 언제인지 모르게 큰 울음으로 바뀌었나 보다. 담임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내일 아침에 찾으면 되는데 그 먼 길을 다시 왔느냐고 하셨다. 땀과 눈물이 범벅된 얼굴이 부끄럽기보다 우산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살그머니 미소 지었다.
“교무실로 가자!”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데리고 가셨고, 급식으로 나눠주고 남은 옥수수빵 하나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싸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신나고 가벼울 수 없었다. 신작로에 늘어선 미루나무 가지에서 매미가 요란하게 울었고, 해 넘어 간 서쪽 하늘에는 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다.
그 일 후로 버릇 하나가 생겼다. 물건 잘 챙기는 버릇이다. 자잘한 물품도 잃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다. 너무 잘 챙기고 잘 보관해서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 안 나는 게 문제지만. 후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다. 지우산 잃어버렸을까봐 마음 고생한 것이 약이 되긴 했나보다.
지금은 우산이 지천이다. 차 안에 세 개, 집에도 대여섯 개가 있다. 그런데도 처음 내 것으로 할머니께서 사주신 지우산이 잊히지 않는다. 누르스름한 종이에, 대나무 우산살이 가지런하던 그 지우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