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일이다. 운전 시작한 지 일주일쯤 후, 첫 신호위반을 했다. 초보 딱지를 떼기 전이었다. 앞으로 가는 것만 알던 때였다. 내 앞에 큰 트럭이 있어 신호를 못 보았다.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그 트럭이 가기에 나도 진행했다. 경찰차가 보였다. 딱 걸렸다. 내게 손짓으로 차를 세우라고 했다. 세웠다. 가슴이 두근두근.
솔직히 말했다. 큰 차가 앞에 있어서 못 봤다고. 잘생긴 교통경찰관은 빙긋 웃으며 면허증 제시하란다. 가만히 보니 아무래도 위반 딱지를 끊으려는 것 같았다. 꾀를 냈다. 면허증 확실히 있는데, 남편이 남에게 절대 면허증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며, 안 꺼냈다. 그리고 봐달라고 했다. 경찰은 면허증이 있는지 없는지만 보고 봐줄 테니 어서 내놓으란다.
같이 있던 경찰관이 웃었다. 이상스럽게 분위기가 살벌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경찰관과 만날 일 없이 살아서, 은근히 두려움이 있었는데. 약속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겠단다.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복사하고, 코팅까지 한 다음, 면허증을 보여주었다. 경찰관은 또 빙긋 웃으며 정말로 그냥 보내주었다.
약속 잘 지키는 경찰관 아저씨,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인물까지 잘생겼는데, 어째서 나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을까. 초보 운전이라 봐줬을까. 솔직해서 봐줬을까. 그리고 트럭이 앞에 있어 시야를 가린 것도 맞으니까. 단지 겁을 좀 주면서 조심해서 운전하기를 바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저녁에 집에 와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어이가 없단다. 말을 징그럽게도 안 듣는 사람이, 말 잘 듣는 척 했다는 거다. 자기가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하냐며. 말도 안 된다. 내가 운전면허증을 받아 오던 날, 남편이 말했었다. 교통 경찰관에게 걸려도 절대 면허증 바로 보여주지 말라고. 자기가 한 말을 어느새 잊고 날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그리고 그게 뭐 어이없는 일인가. 하여간에 마누라 하는 짓은 다 맘에 안 들었던가보다.
그 후 나는 신호위반을 한 적 없다. 그런데 얼마 전에 교통 경찰관에게 잡혔다. 비보호 좌회전 구역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비보호 좌회전이 아니었다. 신호 없이 점멸등만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 진행하는 차가 없으면 좌회전했었다. 그 생각만 하고 좌회전을 했다. 가는데 뒤에서 방송이 나왔다. 내 차량 번호를 언급하면서 갓길로 세우란다. 언제 어디서 나를 봤단 말인가. 어쩐지 좌회전하면서 얼핏 묘한 예감이 들더니.
차를 세웠다. 교통 경찰관 두 사람이 문 앞에서 인사를 한다.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솔직히 말했다. 못 봤다고. 언제 신호가 그렇게 바뀌었냐고. 오늘부터 바뀌었단다. 그래서 순찰을 도는 거란다.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안 보였다고 했더니 둘이 웃었다. 얼른 집에 가셔서 식사하시고 싶으냐는 거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딱지 제일 싼 걸로 끊어준단다. 아무래도 끊기게 생겼다. 그래서 말했다. 끊으면 이틀 동안 밥을 못 먹는다고. 왜 밥을 못 드시냐고 해서, 이틀 밥값을 써버렸으니 어찌 먹겠느냐고 했다. 경찰관들이 웃는다. 그리고 그냥 가란다. 대신 식사 굶지 마세요, 어머니! 하며, 경례를 붙인다. 우리나라 경찰관 아저씨들 왜 이리 착한지. 참으로 살기 좋은 나라다.
간혹 우리는 오해한다. 교통 경찰관들은 위반 딱지 끊기 위해 있는 거라고. 내가 본 경찰관들은 모두 그렇지 않다. 친절하고 잘 봐주며 잘 웃는다. 그날도 아마 신호가 생기니까 계도하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범칙금을 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교통법규를 잘 지키도록 하는 게 목적이니까, 나를 그냥 보내준 것이리라.
아, 또 한 번 있었다. 친정에 가던 날이었다. 거의 십 년은 더 넘은 이야기다. 톨게이트에서 내려 고향집 가는 지방도로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교통 경찰관에게 잡혔다. 과속이었다. 고속도로 달리던 느낌으로 달린 게 탈이었다. 더구나 거긴 학교 앞이었다. 뻔히 아는 길인데, 거기서 과속을 하다니,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이상하게 범칙금은 너무 아깝다. 세금은 내야 하는 거니까 괜찮은데 말이다.
다가온 경찰관이 목례를 한다. 속도위반이라며, 면허증을 제시하란다. 차 문을 내리고 솔직히 말했다. 여기서 4킬로만 더 가면 친정인데,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 학교 앞길이라는 걸 깜빡했다고. 엄마가 기다리고 계신 것만 생각하다 보니 그리 됐다고. 어머니를 팔았다. 경찰관이 웃었다. 그렇게 빨리 고향집에 가고 싶으냐고 묻는다. 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면허증을 주면서 그냥 가란다. 대신 과속은 하지 말라며. 고마운 교통 경찰관 아저씨다. 요즘엔 거기도 사진으로 찍히게 돼있다. 도로에서 경찰관을 만나는 일이 드물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이 더 즐거웠다. 역시 우리 고향은 좋은 곳이여! 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가속페달을 밟았다. 속도 계기판을 살피면서. 창문을 연 차창으로 시골의 향기가 훅 끼쳐왔다. 그렇게 모두 세 번, 교통 경찰관에게 걸려보았다. 물론 범칙금 딱지를 뗀 적은 없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면서 단풍나무 옆에 서 있는 교통 경찰관을 보았다. 어떤 이는 공연히 지은 죄도 없는데 경찰관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데, 나는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저러나 신호를 꼭 지켜야 하는 것 맞고, 속도위반 안 해야 하는 것도 맞다. 32년 운전 경력에 이 정도라면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다. 그 세 번도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