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궁금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내가 ‘착한 어린이상’을 받게 되었다는 걸 담임선생님이 말해주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그 상을 1년에 꼭 한 명만 선정해서 연말에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는 이름의 상이었다. 착한 어린이라, 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건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착한 건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가 착한 건지. 아무튼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그 상의 가치가 높았다. 상품이 없는 종이 한 장뿐인 상이었지만.
수상 소식을 들은 날 오후, 교장실로 가보라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부담스러운 마음을 안고 교장선생님 앞으로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선생님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손짓해 앞으로 불렀다. 이번에 상을 타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것뿐이었다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책상에 있는 서류에 눈길을 둔 채 나에게 물었다.
“너보다 더 착한 어린이가 있니?”
잠시. 혼란스러웠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 상을 꼭 받고 싶었다. 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이 좋아할 테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더 착한 아이가 있느냐는 물음은 내가 아닐 수 있다는 게 되므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생각했다. 나보다 더 착한 아이. 있었다. 많았다. 내가 상을 받고 싶지만 거짓말하기 또한 싫었다.
“네, 있어요.”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듯 작게 흘러나왔다.
“누구지?”
“김은숙, 이연자, 유인희, 경민석이에요.”
“그렇게 많아? 그런데 왜 네 이름만 명단에 올라왔지?”
교장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교장실에서 나와 집으로 오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내가 꼭 타고 싶은 상이지만 못 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네 명 중에 한 명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섭섭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신작로를 따라 늘어선 미루나무를 쳐다보았다. 잎사귀가 다 떨어진 미루나무, 파란 하늘.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상에 욕심부린 걸 하늘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감정이었다. 말해봤자 나처럼 느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고, 그런 속내를 내색한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마을 앞 빈 들판을 내다보며 한숨을 짓기도 했다. 누가 말을 걸어도 건성이었고 내 마음은 상에만 향해 있었다. 담임선생님도 그날 이후 상에 대한 더 이상의 말이 없었다. 물어볼 수도 없는 답답하고 서운한 감정을 안고, 일주일이 흘렀다.
장학생을 선발하는 중학교로 시험을 치러 갔던 날이었다. 내가 학교에 없던 그날에 시상식이 있었다. 착한 어린이 상을 받은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날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단상에 오른 건 대리 수상자인 연자였다. 물론 내 이름이 불렸고 대리 수상자인 것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전교생의 박수를 받은 건 연자였다. 그렇게 받고 싶은 상을 받는 날이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 두고두고 아쉽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교장선생님의 태도다. 어린 내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선생님은 짐작도 못했을 거다. 수상자가 바뀔 것만 같아 공연히 섭섭하고 아쉬웠던 마음을. 물론 그 후 교장선생님이 나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물음은 내게 참으로 잔인했다.
그 후 나에게 생긴 트라우마가 있다. 어떤 일이든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결정된 것이 통보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안으로 작용해 나를 소심한 성격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 같다. 조심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무슨 일이든 정확하게 결정 나기 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 꼭 그 일 때문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다. 내 성격상 그런 부분이 있었기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였을지 모르니까.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불쑥, 그 순간이 떠오르곤 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친구에게 얼마 전에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었다. 그 선생님이 왜 그런 것 같으냐고. 친구는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냥 물어본 것일 수 있고, 수상자를 한 번 보고 싶었을지 모른다고.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한 거라고. 어떻게 그 일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있느냐며 자기 같으면 벌써 잊고 말았을 거란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별 것 아닌 한마디가 누군가에는 평생 잊히지 않고, 유사한 일이 생길 때마다 가슴 졸이게 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삶의 궤적들이 현재의 성격을 형성할 수도 있고. 나는 보기와 다르게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지난번에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MBTI를 알아보았다. 생각 외의 결과가 나왔다. 소심하거나 내성적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검사 상의 나는 괴리가 컸다.
내가 선생 노릇하는 동안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했다. 그것이 학생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학칙 상 안 되는 것과 재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의 경계를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웬만하면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편의를 봐주려고 노력도 했다.
다시 또 궁금하다. 교장선생님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