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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15. 2023

분위기, 삶의 윤활유

     

분위기 좋은 카페, 분위기 좋은 식당, 분위기 있는 노래, 분위기 있는 사람, 그날 분위기, 지역 분위기, 집안 분위기……. 분위기는 관용구나, 형용사로, 명사로 두루 즐겨 쓰이는 단어다. 색조나 정조를 떠오르게 하는 분위기. 삶의 윤활유로 생각되기도 한다. 사람도 분위기 있는 사람이 좋잖은가. 설레는 느낌과 함께 기대를 불러오는 그런 분위기의 사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특유의 분위기를 가져야 한다.


마흔 살 나이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을 때, 나는 학과 행사나 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을 정도로 성실성을 보였다. 분위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문학을 공부하고 창작하는 이십 대 학우들은 내가 느끼고 싶었던 분위기를 가졌다. 그건 소중했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해 아이 둘 키우며 우여곡절 끝에 유아교육기관을 운영하던 나는 내 생각과 달리 상당 부분에서 세속화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순수한 서정을 되찾고 싶었다. 그 생각은 나를 문학에 발을 들여놓게 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엔 내 나이 딱 반절밖에 안 된 학우들이 대다수였다. 스무 살짜리 그들은 생기 넘쳤고 의욕 역시 충만했다. 부러웠다. 그들이 써내는 시는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어느 날 한 학우가 말했다. “언니, 시는 이십 대에나 쓰는 거예요. 사십 대가 무슨 시를.” 머리가 띵했다. 내가 문학에 허영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급 의욕 상실. 그날 밤새 뒤척이며 그 학우가 한 말을 곱씹고 곱씹었다. 어쩌면 그 말 때문에 학과 행사 또는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 건지 모른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자주 학우들과 어울려 술집에 갔다. 그들은 술을 마시기 전부터 문학 이야기를 했다. 술에 취했을 때 역시 문학에 취해 오로지 문학, 문학, 문학 이야기만 했다. 그 분위기를 나는 즐겼다. 내가 원했던 게 그런 분위기 같았다. 관심사가 같았고 바라보는 방향이 같았던 학우들, 그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이를 잊게 할 정도로 학우들과 간극이 좁혀졌다. 이제 시는 이십 대에나 쓰는 거라며 나를 주눅 들게 하는 학우는 없었다. 그 말을 했던 학우는 나와 제일 가까운 벗이 되었고.


우리 학과는 야간 대학에 개설되어 있어서 수업이 5시 30분에 시작되었고 10시 30분에 끝났다. 창문 밖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수업을 받았는데,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문창과 아지트인 술집으로, 말하지 않아도 모여들었다. 술집 사장님은 학교 선배라고도 했고, 다른 대학의 국문과인지 문창과인지 출신이라고도 했는데, 호칭은 그냥 선배님이었다. 그 술집에 가면 과 선배나 후배들도 모여 앉아 부대찌개 같은 걸 앞에 놓고, 소주를 마시거나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순전히 분위기 때문에.


시 창작 시간에는 자작시를 발표하고 합평했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등을 끄고, 촛불을 켰다. 초는 학과 사물함에 늘 준비돼 있었다. 촛불을 켜자 한 가객이 기타를 연주했다. 별 볼품없는 시라도 그런 분위기 덕분에 썩 괜찮은 작품으로 탈바꿈되기 십상이었다. 그때 고개를 갸웃하고 기타 연주하던 남자학우,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급 의욕 상실된 마음을 떨치고, 시 쓰기에 열중했던 기억도 난다.


내 생일날이었다. 한 학우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학우들 셋이서 수업 중에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교수님에게 말했다. 교수님은 허락했고 삼십여 분 후 그들이 들어왔다.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누군가 전등을 껐고 그들은 케이크 초에 불을 붙였다. 내 생일이어서 깜짝 생일파티를 한다며, 모두 손뼉 치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얼마나 행복했던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그날의 분위기 또한 어찌나 화기애애했던가. 지금 나는 그날 이후로 무슨 모임에서든 누가 생일인 걸 알면 웬만하면 즉석 생일파티를 주선해서 하곤 한다.


그 모두 나에게 필요했던 분위기였을까. 그렇다. 문학에 발을 내디디고 담그면서 다양한 분위기를 경험했고 즐겼다. 그 모든 것은 내 글쓰기에 적용되었다. 알게 모르게. 저절로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아닌 듯하다. 어떤 분위기든 만들려고 노력해야, 또 경험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일이다. 특히 글 쓰는 사람들에겐 도외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부러라도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가고, 분위기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내 삶의 방식에 약간 변화가 생겼다. 밖에 나갈 때 차림에 신경을 쓰는 거다. 전에는 거의 하지 않던 일인데. 아들의 조언도 있지만 나도 느낀 바가 있어서다. 포괄적으로, 좋은(?) 분위기 연출을 위해 약간 신경을 쓰고 있다. 썩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으니. 나 편한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분위기 있게 보이는 것, 나쁘지 않잖은가. 보는 이나 자신이나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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