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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17. 2023

도박장과 인생마당


인생을 도박에 비유할 수 있을까. 아닌 듯 그런 듯. 깊이 생각하면 맞는 말도 같다.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인생 자체를 도박에 비유하는 건 아무래도 비약일 것 같다.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 전체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므로, 모든 걸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것으로 치부하는 건 비약일 테니까. 아무튼 삶은 불확정적인 부분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긍정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복잡다단한 게 인생이다. 


나는 도박을 해본 적 없다. 그 흔한 강원랜드 그곳에 가본 적도 없다. 정선 그곳에도. 미국에 갔을 적에도 근처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곳이 있다는데 가진 않았다. 관심이 없다. 내 성격을 두고 누군가 말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성격 같다고. 적중. 스스로 생각해도 맞다. 그쪽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이, 인생이, 꼭 그렇기만 하던가.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처음 고스톱 판에 끼었던 날이다. 명절날 가족끼리 하는 작은 도박장. 놀이라고 하는 게 낫겠지. 그래도 돈 놓고 돈 먹는 판이니 도박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족들이 권유해서, 잃어줄 생각에서, 놀이 성격이라서, 나도 끼어 앉았다. 솔직히 짝 맞추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잃을 각오로 응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요물인 ‘돈’이 중심에 있으니 생각이 달라지는 듯했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앞에 지폐가 쌓이기 시작한 거다. 볼링 처음 할 때 스트라이크가 잘 나고, 도박도 처음 할 때 돈을 딴다고 했던가. 계산도, 훈수도 광 판 사람이 해주었는데. 앞에 지폐가 쌓이니까 잃어줄 마음이 생겨 더 아무렇게나 욕심 없이 패를 던졌다. 희한한 일이었다. 더 잘되는 게. 꼼꼼하게 계산하면서 요리조리 재는 사람은 자꾸 잃었고, 계산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던지는 나는 자꾸 따기만 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오발탄에 꿩이 맞는다더니, 황소가 뒷발로 쥐를 잡는다더니 등등, 함께 있던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다 맞았다. 그런 격이었으니까. 욕심내고 요리조리 계산해 봤자, 불확실한 화투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보다 더 불확정적인 패였다. 판이 끝났을 때, 내 본전만 남기고 모두 나눠주는 것으로 끝냈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가족끼리 그 판을 벌인 적 있는데, 그때도 내가 판돈을 싹쓸이했다. 전적이 의심스럽다는 말도, 머리 좋은 사람은 도박도 잘한다는 말도 들었다. 난 솔직히 재미없었다. 


분석해 보았다. 내가 도박판에서 빛이 난 이유를. 첫째, ‘욕심이 없었다’. 적당한 정도를 잃을 생각이었다. 사심 없이 임하니 마음이 편했다. 조바심 낼 필요 없으니 자신 있게 화투장을 던질 수 있었다. 이럴까 저럴까 계산하지 않았다. 따도 그만, 잃어도 그만, 오히려 잃어줄 생각으로 끼어 앉은 거니까. 평정한 마음으로 하니 다른 사람 패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내가 가진 것으로 놀이 삼아했을 뿐이다. 


둘째, ‘배짱이 있었다’. 남이 가진 패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만 보인다. 남이 가진 것은 관심 없다. 나는 아무리 좋지 않은 패가 들어와도 내색하지 않았다. 조바심 내는 모습, 아쉬워하는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가진 패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니까, 굳이 조바심이나 아쉬운 마음을 표현할 필요 없다. 좋은 패를 가진 것처럼, 만면에 미소를 띠고, 무슨 일이 생겨도 흔들리지 않는 배짱을 가지고, 임했다. 겉으로 나타나는 내 태도에 남들은 흔들리는 것을 은근히 즐기면서.  


마지막으로 ‘성실했다’. 그 판에 있는 한 성실하게 했다. 텔레비전에 마음 빼앗기지 않았고, 먹는 데 열중하지도 않았으며, 한 눈 팔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동생이 말했다. 언니는 뭘 해도 참 성실하게 한다고. 성실이 특기라며 남편이 거들었다.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 주식투자를 한 적 있다. 친구가 권해서 3년 정도. 그때도 그 비슷한 마음으로 했다. 욕심내지 않았고 배짱을 가지고 또 성실하게. 투자한 액수의 두 배 수익을 보았고, 모두 팔았다. 그 후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식시장엔 눈을 돌려본 적 없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수익을 낸 것이지 내겐 맞지 않았다. 나는 본래의 내 모습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사람으로 사는 게 맞는다. 그게 마음 편하다. 아무리 욕심을 버리고 배짱을 갖고 성실하게 임하려 해도, 주식투자할 땐 마음이 흔들리곤 했으니까. 


인생을 도박장이라고 보는 견해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만큼 예측할 수 없고, 불확정인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그나마 내가 견지하는 것은, 그 세 가지다. 욕심을 버리고, 배짱으로 도전하며,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다. 그렇다면 인생이나 도박장이나 뭐 그리 다를까 싶다. 꼭 그렇지 않은 다른 요소들 또한 많으므로, 이렇게 못 박을 수 없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도박장에서 터득한 그 세 가지, 연말을 맞아 생각해 본다. 내년에는 욕심을 더 버리고, 배짱으로 도전하는 것에는 더욱 적극성을 띠고, 성실한 자세도 더 지극하게 해볼까 싶다. 도박장과 인생마당, 닮은 듯해도 또 많이 다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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