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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19. 2023

눈물과 작가


눈물은 어떤 것보다 진정성을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의 보편적 생각이리라. 악어의 눈물도 있다지만. 눈물이 여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아기가 우는 건 당연한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남자는 태어나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말을 흔히 한다. 내가 자랄 적에도 남자아이가 울면 필요 이상으로 비하해 말하던 어른이 있었다. 남자가 왜 우느냐고. 남자는 눈물을 쉽게 흘리면 안 된다고. 


나는 어릴 적부터 울보였다. 여자여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예민한 아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더구나 아버지가 편찮으시니 어린 내게 신경을 잘 써주지 못해 불만이 많았고, 눈치가 빠른 아이니 불안했던 모양이다. 중학교 시절엔 집안의 분위기와 환경 때문에 우울감이 심해서 더 자주 울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울숙이’였을까. 명숙이가 아니라 울숙이. 지금은 다 이해한다. 그때의 나에게 연민을 느끼고 어루만져주고 싶다. 그만큼 현실을 불안해했고, 불만도 많았던 듯하다. 


객지생활 할 때도 자주 울었다. 내 꿈을 이룰 수 없어 눈물이 났고, 방법이 없어 눈물이 났으며,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눈물을 흘렸다. 당차지 못한 것 같아 또 눈물이 났고,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울었다. 나처럼 눈물이 흔한 사람도 드물 거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고, 청소년기를 눈물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성적이고 예민해서, 현실과 싸우는 게 힘겨워서,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게 아닌가 싶다. 


결혼해서 남편과 의견충돌이 났을 적에도 눈물부터 났다. 그런 현실이 싫었다. 마음이 잘 맞고 서로 인정해 주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의견충돌이 나다니. 눈물부터 났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말하곤 했다. “아니, 누가 뭐랬어? 아직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울기부터 하다니, 이거야 원!” 그 말이 서운해서 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중에 남편은 슬슬 놀리곤 했다. 한강물이 저리 많은 건 내가 흘린 눈물 때문이라고. 


내 눈물이 멎기 시작한 건, 서른한 살에 유아교육 현장에 발을 디디면서부터였던 듯하다. 더구나 마흔 살부터는 눈물보다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그 후 남편이 아프게 되면서 또 많이 울었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다. 울 때가 있으면 멎을 때가 있고, 웃을 때도 있는 것 같다. 눈물과 웃음이 교직되듯 짜이는 날도 있고. 


그래도 강의할 때는 언제나 미소 띤 얼굴이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고. 그건 어쩌면 프로 정신으로 그랬던 듯하다. 그 일이 즐겁기도 하지만 무표정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강단에만 서면 저절로 미소를 띠게 되었다. 가식적이라기보다 그만큼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제자들이 기억하는 나는 행복한 모습으로 강의하는 모습이라고 하니, 그만하면 소기의 목적은 이룬 셈이다. 


지금은 웬만해서 울지 않는다. 평생 흘린 눈물을 오십 대까지 다 흘린 듯하다. 드라마를 보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울기도 한다. 그거야 당연하다. 그래도 예전처럼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다. 흔한 말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겨도 문제 해결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 그 근력으로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더 나쁘지 않은 것에 늘 감사하며. 그런 자세로 살려고 노력한다. 예전보다 현저히 눈물이 줄어든 건 그래서일 거다.


눈물 흘린 이유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듯하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어둔 현실, 있어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현실. 두려웠고, 힘겨웠으며, 암담했다. 그랬던 나를 지금이라도 안아주고 다독여주리라. 책망하지 않고 깊은 마음으로 위로해 주리라. 눈물을 흘리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감당하려 애쓴 나를 쓰다듬어 주리라. 


이제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런 이웃이 있으면,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공감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작가는 이웃을 대신해 울어주는 사람이고, 그런 마음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니까. 돌이켜보건대, 나도 작가들이 쓴 작품으로 위로받았고, 다시 일어섰으며, 꿈을 찾고 키워갈 수 있었다.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대신해 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아, 그런 작품을 써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아 눈물이 난다. 안타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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