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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22. 2023

전진, 또 전진이다!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 어렸을 적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모두 비슷할 것 같다.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살지 않는가. 상황이 여의치 못해 지키지 못할 뿐이다. 나의 그 생각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걸 나이 들어가며 알게 되었다. 즉,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도 꽤 있다는 것을. 삶의 진정성이 약해져서 그런가. 말이라도 듣기 좋게 하려니 그런 걸까. 하기 좋은 말이 듣기도 좋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 적확한 말은 아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늘어가는 것 같다.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방증인지. 남을 속여서라도 자기가 이익을 취하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는 것인지. 심지어 그걸 능력으로 여기기까지 하는 세태인 듯도 하다. 그건 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짓이 난무하고, 이익을 위해 촉수를 드리우는 사람이 보이기도 한다. 평생 교육현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나로선 부끄럽다. 가르치는 사람들 책임인 것만 같아서. 


그러기에 앞서 나를 돌아본다. 다행한 것은 최소한 일부러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해 본 적은 없다. 본의 아니게, 착오에 의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그런 적은 있을지라도. 내가 한 말을 최대한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힘들기도 했다. 인생이라는 게 꼭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라는 말도 몇 번 들었다. 왜 굳이 꼭 지켜야 하는 거냐고.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맞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그래서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는 때 있지만 목표한 것을 이루기도 했다. 


내가 결혼한 직후였다. 일을 보러 읍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새댁 때여서 동네 사람들을 다 알지도 못했다. 어떤 아저씨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누구냐고 물었고, 아무개의 처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의 선배였다. 그는 왜 이런 시골로 시집을 왔느냐, 아무개의 어떤 점을 보고 결혼했느냐,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물었다. 치기였을까. 자존심이 상해서였을까. 나는 대뜸 앞으로 공부해서 박사가 될 거라고 했다. 당시로선 전혀 가능성 없는 일인데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쉽지 않을 텐데, 꿈이 크시네요, 하며 웃었다. 


집에 돌아와 말했을 때, 남편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하도 가당치 않아 그냥 넘긴 것인지, 하려면 할 수도 있지 싶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남편의 그 선배는 마을에서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란 걸. 갓 시집온 후배 아내에게 한 질문치고 보편적이지 않았다. 그 후 그 사람을 본 적 없다. 우리는 얼마 되지 않아 그 마을을 떠나 도시로 분가를 했으므로. 


나중에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뜬금없이 남편의 그 선배 생각이 났다. 풍문에 그는 오래전에 그 마을에서 떠났다는 걸 알았다. 학위를 받고 속이 후련했다. 내가 뱉은 말을 해냈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적어도 내 심중에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걸 두고 있었던 건 틀림없다. 아니면 그건 말과 행동을 같이 하려고 노력한 것이라기보다, 꿈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쪽이 더 설득력 있다. 내가 한 말을 심중에 둔 것도 꿈과 관련 있기 때문이리라. 


작가 등단하고 친구와 친구의 남편을 만난 적 있다. 친구 남편이 말했다. “드디어, 이루어내셨네요.”라고. 이십 대 중반 즈음, 친구의 신혼집을 찾았을 때다. 우리는 그날 소주를 마셨고,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내가 대뜸 말했다. 난 작가가 될 거라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 남편은 뜨악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당시만 해도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고, 특별한 사람이나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게 보통 정서였다. 더구나 당시 나는 결혼한 상태였는데. 오랜 세월이 흘렀고, 사십 대 중반과 후반에 동화와 소설로 등단하여 작가가 되었다. 그때도 학위를 받았을 때처럼 속이 후련했다. 내가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 때문이리라. 


내가 한 말에 나는 일종의 부채감 같은 걸 갖는 사람인 듯하다.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강한 편이다. 쓸데없이 신중하고 고민이 많은 것도 그래서다. 말로 좋게 하면 될 것을,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걸 못 한다. 그러면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지금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이 살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천성이 그러니까. 


말과 행동, 지금은 생각이 약간 달라지고 있다. 같아야 하지만 강박감을 가질 것까지 없다고.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말한 대로 해나가는 과정이 있다면 결과도 얻을 수 있으리라. 결과는 크고 작은 것과 상관없이 소중한 것일 테니까. 연말을 맞이하며, 올해 내가 한 말과 행동은 어떠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리라. 


지금 손목이 여전히 아픈데도 이렇게 매일 글을 쓴다. 간혹 못 쓰는 건 하루에 두 편을 쓰는 한이 있어도 다 쓸 생각이다. 그건 내가 한 말 때문이다. 제자들과 함께 백일백장 쓰기에 덜컥 동참하겠다고 했으므로. 되나 마나 한 글이라도 이렇게 끼적이고 있는 건 그래서다. 아, 나는 여전히 강박감을 가졌어라! 그래도 다 쓰고 나면 후련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그날까지 전진! 또 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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