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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새해 각오

by 최명숙

일이십 대 때, 새해가 되면 각오를 하고, 새 일기장 첫 장에 몇 문장 써놓곤 했다. 한동안 그걸 복기하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고.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발전하기 위해, 더 나아지기 위해. 누구라도 새해가 주는 느낌은 평소와 다르리라. 나도 그랬다. 나이를 먹고 바빠지면서 그 각오는 희석되었다. 그날이 그날인 하루하루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각오를 한다고 그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엊저녁에 퇴근한 아들이 불쑥 말했다. 자정이 막 지나면 큰절을 올리겠다고.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이제 같이 사니까 새해 첫날 그렇게 인사하고 싶단다. 하여간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상한 짓은 골라서 하는 아들이다. 한 마디로 거절했다. 정 하고 싶으면 새해 아침에 하라고. 아들의 새해 각오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란다. 어이상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 보여주는 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했더니, 아들은 키들키들 웃기만 했다. 쉽지 않다는 의미리라.


아들의 새해 각오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니 나쁘진 않다. 아니 흐뭇하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게 아닌가. 그보다 더 생산적이고 건설적이며 발전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니, 싱긋 웃기만 했다. 아직 결혼을 안 했으니 이런 말도 하는 것이리라. 결혼을 했다면 내 차례가 올까 싶긴 하다. 그래도 어미 마음은 어서 결혼해서 가정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스스로 생각해도 잘못한 게 많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뜬금없이 절을 한다, 행복하게 해주는 게 새해 목표다, 하는 것도 그 이유일 거다. 이 어미 뱃속에서 나온 생명체이니 내가 그 속을 모르겠는가. 그렇다고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가면 안 되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들을 포옹해 주었다. “그래, 새해에는 더 사이좋게 서로를 격려하며 살아보자, 너도 힘내.” 아들은 웃기만 했다. 하여간에 웃기는 잘한다.


나의 새해 각오는 세 가지로 분류했다. 가정적으로는 식구들에게 너그럽게 대하겠다는 것, 대외적으로는 모든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모두 비슷한 의미이다. 따지지 않고 웬만하면 넘어가야겠다. 나만 피곤한 일이므로. 그렇다고 해서 바뀔 일도 아니니까. 정 안 되면 관계를 정리하는 수밖에.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각오는 나를 더 사랑하겠다는 것. 거기엔 건강과 행복 추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


일이십 대 썼던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열네 살의 나부터 스물네 살까지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놀라웠다. 새해 첫 장에 썼던 각오가 지금 보니 거의 이루어져 있지 뭔가. 알게 모르게 그 각오와 계획이 나를 밀고 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모양이다. 잠재의식 속에서도 힘이 되어 생산적으로 건설적으로 발전적으로 나를 끌고 밀었던 게 아닌가. 몸이 찌르르했다. 그러니 생각도, 말도, 행동도 잘해야 한다. 순간들이 모여 삶의 궤적을 만드는 것이므로.


일기장을 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대로 두길 잘했다. 과거의 날들이 모여 오늘을 만들고 미래를 예측해 나갈 수 있으니. 또 지금 이렇게 쓴 각오와 계획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 테니까. 갑자기 내년 각오를 수정하고 싶었다. 구체적이지 않아서다. 식구들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바깥일을 유연하게 할 것이며, 나를 사랑하겠다니, 참으로 추상적이다. 심사숙고. 한참 생각해도 제자리걸음. 추상적이지만 거창하지 않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대로 유지.


오늘 아침 일찍 아들은 작업실로 출근했다. 새해 첫날이니 놀자고 했더니, 새해 첫날부터 작업 열심히 하기로 각오했단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무슨 각오가 하루도 안 돼 바뀌니?” 투덜댔다. “바뀐 게 아니고, 각오가 하나 더 생긴 거예요.” 아들은 웃으며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간 지 오 분쯤 후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이다. “앗! 엄마, 큰절하고 나왔어야 하는데, 깜빡했어요. 어쩌죠?” 다시 들어와 절하고 나가랄 수 없지 않은가. “됐어! 저녁에 들어와서 해!” 절 받을 생각은 없다. 그것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들의 각오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하겠다는 대로 하게 둘 거다. 새해에는 가족에게 너그럽기로 했으니까.


우리들의 새해 각오는 잘 지켜질 수 있을까. 아마도 불편할 때, 의견충돌 날 때, 화나고 속상할 때 있으리라. 그럴 때마다 도 닦는 심정으로 너그럽게 이해하며 살아보리라. 아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줄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우리들의 행복한 새해 각오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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