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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Oct 08. 2022

상상과 공상

내 특기 

    

상상 내지 공상은 내 특기다. 현실에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상상과 공상. 상상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거나 또 실현 가능성이 공상보다 높다. 공상은 경험과 별 상관없다. 두 단어의 의미를 규명하기 어렵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고 낮은 게 차이점 아닐까. 아무튼 나는 상상과 공상을 잘한다. 그러니 특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 화장실에 가면, 금 간 화장실 벽을 보며 상상과 공상을 했다. 벽의 금 간 모양이 토끼 같고, 사자 같고, 구름 같고, 나무 같고. 생각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변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에만 가면 당연히 늦게 나올 수밖에. 


용변이 급한 동생들 성화에 할머니나 어머니가 소리치셨다.

“아니, 넌 변소에서 살림을 하니? 빨리 좀 나와!”

상상하던 것을 접고 나오면서 내가 말했다. 

“변소에서 왜 살림을 해요?”

내 물음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웃으셨다. 


말이 나왔으니,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장날이었단다. 시장 근처 화장실은 늘 만원이었다. 그것도 두 개밖에 없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어떤 이가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었다. 그 사람도 나 같은 사람이었는지. 


두 줄로 사람들이 서 있는데, 한 줄은 줄어들지만 한 줄은 영 줄지가 않으니, 답답할 노릇. 급한 사람이 견디다 못해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변소에서 살림을 하나? 왜 이리 안 나오슈.”

그래도 한참 소리가 없더니 나오며 소리를 지르더란다. 

“변소에서 살림하는 사람 봤어! 봤냐구!”

벽력같이 소리를 치며 삿대질을 하는 바람에, 밖에 있던 사람이 놀랐고, 결국 둘이 싸움이 나 치고받았다고.

 

마실꾼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어른들은 방안이 떠나가게 웃어댔다. 난 오히려 그게 이상했다. 나는 안에 있던 사람을 당연하게 이해했다. 재밌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자꾸 문을 두드리니 맥이 끊어져 화가 났을 거라고. 아무튼. 


후에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을 읽다 무릎을 탁 쳤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바슐라르가 하고 있었다. 나는 금 간 벽 틈새로 달구지 지나가는 상상을 화장실에 앉아서 했는데, 바슐라르는 기차였다. 그 대단한 바슐라르에게 동질감 내지 동류의식을 느꼈다. 상상과 공상처럼 재밌는 놀이가 없었는데, 내가 보기에 『공간의 시학』은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적 교감의 문제를 정직하게 표명했다는 평을 듣는 바슐라르다. 그러한 상상력은 문학의 독자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난 전혀 그렇지 않으니, 동류의식은 과장이다. 그것도 상상과 공상에 의한.  


방에 누워 있을 때도 공상은 계속되었다. 사방 연속무늬, 이방 연속무늬의 벽지 속에 빠져 들어 숱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크고 작은 꽃무늬가 그려진 벽지일 때는 공상은 더 활발해졌다. 천장과 벽이 서로 만나는 곳의 벽지 무늬가 맞지 않을 때,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리 집 도배에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건 그래서였다. 내 의중을 모르는 어머니는 도배를 돕는 나를 흡족하게 쳐다보곤 하셨다. 


나처럼 혼자서 잘 노는 사람, 드물 것이다. 상상과 공상 때문이다. 어렸을 때나 늙어가는 지금이나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특기임에 틀림없다. 경험한 것들이 늘었으니 상상은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공상은 약간 줄었고. 무엇을 바탕으로 확장시켜 가다 보면 그것 자체로 흥미를 느낀다. 그러다 보니 심심하거나 무료할 때가 전혀 없다. 아직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 없다. 


상상과 공상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끼적이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문학작품은 상상력의 소산이다. 상상력은 작가에게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그러니 내게는 딱 맞는 것 아닌가. 산책하다가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올라타 어디론가 떠나는 공상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실제로 차를 몰고 드라이브에 나서기도 한다. 즉흥적이다. 나는 계획해서 실행하는 것보다 요즘엔 즉흥적인 게 더 편하고 좋다. 계획을 세워 하면 부담이 따른다.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게 꼭 틀에 갇히는 기분이 들어서. 


지금 나는 벽에 금이 가지 않은 아파트에 산다. 또 벽지가 이방 연속 또는 사방연속무늬로 되어 있지도 않다.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어지고, 무늬 없는 크림색 벽지가 도배된 집이다. 그런데도 내 상상과 공상은 계속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과 산을 보며, 책을 읽으며, 작품 구상을 하며. 아무튼 상상과 공상은 내 특기며, 내게 필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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