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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Sep 08. 2022

왜 병이 났을까

몸과 마음은 다르다

       

괜찮을 줄 알았다. 퇴직한 사실이. 학교만 안 나갈 뿐이지,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맡은 일을 느긋하게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리라. 설렜다. 우선순위를 정해 보기도 했다. 몇 개의 시민 대상 강좌들은 ‘할 일’이고, 창작과 운동 그리고 여행은 ‘하고 싶은 일’이다. 9월 되면서, 오래전부터 강의를 병행하던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이 개강했기 때문에, 퇴직한 사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심하게 앓았다. 마음은 괜찮은데, 몸에 탈이 났다. 갑작스러운 위통과 구토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었고, 기운이 빠졌다. 간신히 할 일만 감당했다. 그러고 나면 다시 널브러졌다. 종일 누워 있다시피 하며 물만 마셨다. 음식이 들어가면 울렁거리고 속이 쓰렸다. 기운은 더 없어졌고 의욕마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고 있는 변화를 알지 못한 게 아닌데, 왜 이럴까. 


작년에 대학교에서 1년 재임용 계약을 하면서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았다. 학교 강의 외에 하는 일들이 있었으니까. 오히려 퇴직을 기다렸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리라고. 얼마 전에 평생학습원에 강좌를 하나 더 개설했다. 사학연금이 없고 국민연금으로는 생계유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건 내 계획대로 되었다. 퇴직 후 생활을 위한 준비가 완벽했다. 적당한 수입이 있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도 있을 터였다. 집단으로부터 소외감 내지 단절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모든 게 적절했다. 


왜 병이 났을까. 아프기 전날까지 아무런 전조증상이 없었다. 즐겁게 운동했고 음식을 잘 먹었으며 진즉에 써둔 장편소설 퇴고도 했다. 시간을 조금도 허비하지 않고 야무지게 쓰며 지냈다. 딸이 아이들 보육문제로 불러서 장거리 운전도 했다. 새로 산 차는 전의 차와 구조가 많이 달랐다. 그래도 차분하게 잘하고 다녀왔다. 후배 선생들이 전화해서 근황을 물었다. 학교 개강 소식과 함께. 신나게 잘 살고 있다고, 얼마나 후련하고 좋은지 모르겠다고, 경쾌하게 말했다. 그런데 왜 병이 났을까. 


심한 위통으로 잠에서 깬 시각이 새벽 3시 30분이었다. 이렇게 아픈 건 태어나 처음인 듯했다.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체한 것은 아닌 듯했다. 상비약이 변변치 않아 이런 정도의 약은 있지도 않다. 있더라도 꺼낼 수 없었을 거다. 그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 와중에도 원인이 뭘까 계속 생각했다. 구급차를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죽을 것 같아 휴대폰 녹음기를 켜고 유언을 녹음했다. 우습게도. 그러면서도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미련한 건지 모르겠으나 간절히 기도만 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4시간이 흐르고, 차츰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통증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몸과 마음이 달랐다는 거다. 마음은 변화를 인지하고 수용했는데, 몸은 그러지 않았다. 수십 년간 당연하게 해왔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그런데도 나는 몸을 무시했다. 마음이 괜찮으니까 몸도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 삶의 태도가 그랬다. 마음을 중요시했고 따라서 우선시했다.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믿었다. 


이번에 아프면서 깨달았다. 마음과 몸이 조화를 이루어야지, 조급하거나 무시해서 안 된다는 걸. 어떤 것에 과신해서도 안 된다는 걸. 왜 이제야 이걸 알게 된 걸까. 참 어리석기 그지없다. 그래서 몸을 혹사했다는 사실도 지금 깨달았다. 몸과 마음은 적응하는 시간이 다른데 말이다. 사람도 다 다르지 않은가. 그것은 인정하면서 내 몸과 마음에 대해선 너무 몰랐다. 이래서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하나 보다. 


솔직히, 몸 아끼는 사람을 별스럽게 생각해온 나였다. 모든 게 정신력이라며, 아이들을 닦달한 적이 많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니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믿었다. 그래도 이루지 못하는 건 절실한 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자신감이 몸의 건강 때문이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난 건강했다. 그래서 늘 건강할 줄 알았다. 물론 지금은 거의 90% 회복했다. 회복 속도가 빠르다. 다행이다.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준 내 몸, 묵묵히 따라준 몸에게. 이제부터 몸을 잘 돌봐야겠다. 몸과 마음이 때로는 같지만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변화에 몸이 적응하도록 여유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머리 나쁜 주인을 만나 몸이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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