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과 의욕의 상관관계

by 최명숙


낮잠을 잤다. 한 시간씩이나. 좀처럼 없는 일이다. 몸이 시키는 대로 살기로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살고 싶은 대로 살겠는가. 그렇더라도 몸이 이제 견딜 수 없었나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으니. 그것도 안마의자 위에서다. 등이 바르고, 어깨가 아팠다. 잠시 안마를 한다는 게 잠속으로 빠졌던 모양이다. 텔레비전을 켠 상태로. 소리에 민감한 내가 그렇게 한 시간이나 잤다. 잠이 어지간히 부족했던 모양이다.


요즘 나는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들 때문이다. 아들은 목금토일, 4일간 아침 9시부터 강의가 있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 나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도시락 두 개를 싸야 한다. 아침이라곤 먹지 않은 지 십여 년 되는데, 아들이 집으로 온 다음부턴 같이 아침을 먹는다. 지금까지 아들이 혼자 먹었는데, 집에 와서까지 혼자 먹게 하는 건 어미로서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먹기 싫어도 같이 식탁에 앉는다. 아들이 알는지 모르지만.


아들 보내고 자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쉽지 않다. 밤에도 한 번 깨면 잠들지 못하는데, 낮에 잘 수 있겠는가. 잠이 안 온다. 그랬는데, 낮잠을 자다니, 확실히 한계에 이른 모양이다. 일찍 자면 될 일인데,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아들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찌 잘 수 있는가 말이다. 저녁 강의까지 하고 나면 밤 열시에 끝난다. 집에 오면 거의 자정이 가깝다. 수업 끝났다고 해서 바로 나오는 건 아닌가보다. 질문이 있을 수 있고, 정리도 해야 하니까. 어쨌든 나는 요즘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수면이 부족하면 머리가 아프다. 띵하면서 이명은 더 크게 들린다. 눈도 쿡쿡 쑤신다. 잠이 늘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전에는 네 시간만 자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여섯 시간 자야 머리가 맑다. 아들이 들어오자마자 잠자리에 들면 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하루 종일 나가 있어 그런지, 여자 친구가 없어 그런지, 집에만 오면 수다가 늘어지는 아들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에 중요한 일은 모두 내게 말한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지만 난 잘 들어준다. 들어주는 척한다. 엊그제 글로 썼지만 친구가 되는 멋진 방법 중 중요한 게 들어주기 아니던가.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오늘만 지나면 삼일 간은 자유롭다. 아들이 작업실에만 가면 되니까. 가끔 미안한지 아침을 차려먹고 도시락도 싸가지고 갈 테니 편히 자라고 한다. 그게 말이 되나. 무엇을 어찌 싸가지고 간단 말인가. 사먹으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 있을지 모른다. 안 된다. 지금까지 잘 관리해서 몸무게 22킬로그램을 감량하고 건강해졌는데, 그랬다가 다시 몸무게 늘고 혈압과 혈당이 올라가면 더 스트레스 받는다. 아들 밥해주는 게 힘든 건 아니다. 수면 부족이 힘든 거지.


고문 중에 잠 안 재우는 고문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면욕은 인간의 본능이고 기본적인 욕구다. 그게 충족되지 않았을 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머리가 아프고 눈이 아픈 것 뿐 아니라, 의욕이 저하된다. 움직임도 느려진다. 책을 봐도 내용이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수면부족으로 오는 증상들을 견뎌내기 힘든 몸이 그냥 재워버렸던 것 같다.


낮잠에서 깨었을 때 머리가 맑았다. 눈도 아프지 않았다. 산책 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은 의욕도 생겼다. 밀린 집안일까지 하고 싶었다. 수면 욕구를 채우고 나니 다른 욕구들이 꿈틀거렸다. 창밖의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흐린 잿빛 하늘에선 금세 눈이든 비든 내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내 마음은 맑음이다. 모두 수면부족으로 오는 증상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들이다. 오전 강의 마치고 점심을 막 먹었단다. 도시락 맛있게 먹었다는 시답잖은 전화다. 내게 오전에 뭐했느냐고 물었다. “잤어. 안마의자에 앉은 채로.” 아들이 하하하 호탕하게 웃어댄다. 웃는 이유를 안다. 미안함과 다행함과 우스움이 범벅된 웃음이다. 그래, 나보다 더 힘들 거다. 집에 들어와 어미 고생 시키는 것 같은데, 다른 방도가 없으니 웃는 것이리라. “한 시간 잤는데, 지금은 맑음! 저녁에 봐.” 한 마디 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안심한 듯한 아들의 대답이 들렸다.


한 시간으로 수면부족 현상이 싹 사라졌다. 아들과 통화 후, 가볍게 점심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가랑비가 내렸다. 가랑비처럼 마음이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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