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사슬, 생물계에서 생물끼리 잡아먹고 먹히는 관계. 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히려 먹이사슬이 무너지면 문제다. 생태교란이 일어나니까. 생물계에서 일어나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아닌 공생관계의 먹이사슬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공생관계의 먹이사슬, 그것도 부당한 거래가 숨어 있다면 옳지 않다고 본다. 자연계는 부당한 거래가 없는데, 인간사회에는 거래가 빠지지 않으니 문제다.
추위가 풀린 어제 오후 뒷산에 올랐다. 나뭇잎은 서로 어깨를 겯고 누워 있다. 마른 낙엽 밟는 소리가 새소리만큼 경쾌하다. 가끔 불어오는 산바람, 어느새 봄기운을 품고 있다. 조붓한 자드락길은 완만해서 걷기 편하다. 정상까지 오를 땐 오르막길로 가지만 내려올 땐 자드락길을 걷는다. 오래된 습관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을뿐더러 산 풍광을 느끼기엔 오솔길만 한 곳이 없다.
잎사귀 하나 없이 모두 떨군 나무는 솔직하고 당당하다. 가지마다 싹눈을 달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 오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후박나무, 덜꿩나무, 쪽동백 등. 저만치에 있는 생강나무와 진달래나무. 우리 마을 뒷산의 나무 위치를 거지반 다 외울 듯하다. 니은 자로 굽어져 앉기 좋게 자리한 작은 오리나무 위에 잠시 걸터앉았다. 여름엔 그 나무 아래 개암나무 열매가 떨어져 있곤 하던 나무다. 눈을 들어 보니 위에 개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잘 지냈어? 올해도 내게 편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넌 내 친구야.” 작은 오리나무에게 인사했다. 묵묵히 내 인사를 받는다. 산들바람을 맞으며 잠시 휴식.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나무 향을 맡는다. 평온하다. 지저귀는 박새들의 노래 속에 섞여 들리는 소리가 있다. 딱따구리다. 딱 따따딱, 딱 딱. 소리는 비교적 규칙적으로 들린다. 딱따구리를 찾으려 눈을 돌린다. 커다란 아름드리 떡갈나무에 오색딱따구리가 들어붙어 있다.
예쁘다. 색깔이 어쩌면 저리도 고울까. 홀린 듯 오색딱따구리를 쳐다보았다. 떡갈나무를 쪼는 이유를 안다. 오색딱따구리가 찾는 건 벌레 알. 서로 공생관계다. 나무는 가만히 몸을 내주고, 딱따구리는 최선을 다해 벌레나 그 알을 찾아 먹이로 한다. 아름답다. 그들의 관계를 알지 못할 땐 야속한 마음이 들곤 했다. 나무가 얼마나 아플까 싶었기 때문이다.
고향 뒷산은 떡갈나무 천지였다. 가을이면 도토리가 어찌나 많이 떨어지던지 하교 후엔 동무들과 도토리를 주웠다. 겨울엔 그 산에서 가랑잎을 모으고, 소나무 삭정이를 낫으로 꺾어 땔감을 구하곤 했다. 그때, 심심찮게 들었던 소리도 오색딱따구리가 나무 찍는 소리였다. 부리로 쪼아댈 적마다 꼭 내 몸을 찍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가만히 있는 도토리나무를 찍어대는 딱따구리가 야속하고 안타까웠던 건 그 시절이었다. 후에 그들의 공생관계를 알고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을 거두었다.
모든 생물계가 공생관계의 먹이사슬이라면 더 바랄 나위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이제 세상은 자연스러운 먹이사슬 관계가 붕괴되고 있다. 아니 붕괴되었다. 공생관계는 이론뿐이다. 공생관계라 해도, 앞에 말한 바대로 거래가 끼어들면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한다는, 거래 말이다. 순수하게 서로 돕는 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는 걸까.
이제 약육강식, 강자생존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점에 와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지기 않기 위해,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머리 쓰고, 도망치고, 포식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피로한 사회다. 피로한 사회는 앞으로 더 심화될 거다. 인간의 욕망이 그렇게 치닫고 있기 때문이고, 이제 그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고 있으니까.
우리 사회에서 재벌들의 싸움을 심심찮게 본다. 드라마나 뉴스 사회면 기사에서. 형제끼리, 또 부모와 자녀까지도, 경쟁 관계로 그려진다. 내가 재벌이 아닌 게 다행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드라마도 다른 문학 장르와 마찬가지로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얼토당토 한 이야기가 아니다.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라도. 실제 뉴스 사회면에 나는 걸 보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가족관계도 그럴진대, 타인들끼리 관계는 말할 필요 없을 듯하다.
모두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때문일까. 공생관계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이제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생물계나 인간계나 먹이사슬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나, 거래 없는 순수한 공생관계로 가야 한다. 그래야 붕괴되지 않고 교란이 일어나지 않을 거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요원한 일을 꿈꾸는 나는 시대착오적인 생각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