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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Feb 11. 2024

내 사전에 무료함은 없다

글쓰기 

  

무료하지 않아요? 퇴직 후 자주 들은 말이다. 무료하다니 내 사전엔 아직 ‘무료함’이라는 단어가 없다. 무료가 뭔가. 산재한 일들이 언제나 나를 몰아친다. 내 팔자가 그런가 보라는 하지 않던 팔자타령이 나온다. 단 하루도 느긋하게 쉬어본 것 같지 않다. 쉬어도 다른 일을 밀쳐놓고 먼저 쉬는 것뿐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일이 늘 쌓여 있다. 누가 시키지 않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경우도 있는 그런 일이. 


그건 글쓰기다. 대단히 이름난 작가가 아닐지라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 일을 놓을 수 없다. 놓기 싫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고, 즐거운 일이며, 성취감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일을 누구에게 양보한단 말인가. 잘 써지면 그런대로, 안 써지면 그런대로, 나는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그 모든 걸 즐긴다. 잘 써지면 쓰고, 안 써지면 고심하다 산책하거나 독서를 한다. 때론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기도 한다.


가끔 묻는 사람이 있다. 글 쓰는 거 힘들지 않으냐고. 내가 뭐 글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아니고, 꼭 써내야 하는 일이 가끔 있긴 해도 비교적 자유로운데, 힘들기까지 한 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알고 있는 작가의 이미지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글만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손에 꼽을 정도다. 이름 있는 작가라 해도 그건 쉽지 않아, 강의와 강연을 하거나 다른 일을 겸해서 하는 게 현실이다. 그것을 오로지 목표로 살 생각 없다. 인생에서 기필해야 할 것이 무엇이던가. 그걸 내려놓았다.


예전엔 내가 기필할 것이 있었다. 그걸 목표로 물불 안 가리고 뛰고 달렸던 날이 있다. 결국 얻어냈다. 더할 수 없이 만족스러웠고, 그 만족감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것을 끝으로 기필코 하고 말겠다는 욕망을 내려놓았다. 어떤 것에도. 글쓰기도 그렇다. 즐거워서 하는 것뿐이지, 내가 이름을 떨치는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베스트셀러 작품을 쓰겠다거나 그런 마음 없다. 즐길 뿐이다. 


친구 만나 수다를 떨거나 카페 문화를 즐기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때론 그러기도 하지만.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무료함을 덜 느낄 거다. 당연한 것 아닌가. 강의할 때 자주 말한다. 작가에게 외로움은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고. 외로움을 즐기라고. 친구 만나 먹고 마시는 것 다 좋은데, 혼자 있는 즐거움을 느끼는 게 더 좋다고. 그 시간에 작품 쓰고 음악 듣고 산책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고. 


언젠가 말한 적 있다. 글쓰기는 노후대책이라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없다. 비용 들이지 않고 혼자 놀 수 있는 글쓰기, 나와 나가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비평하며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게 그 글쓰기 아니던가. 자판을 누를 수 있는 힘, 건강한 정신, 사물을 바라보는 예리한 관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심미성, 그 외의 다양한 사유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글쓰기다. 그러니 글쓰기는 무료할 새 없는 노후대책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문제 되는 게 무료함이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할 수 있다.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게 쌓이면 우울감이 찾아들고 우울증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결국 주위사람들이 꺼리고 심지어 가족들도 힘들어하며, 관계는 모두 깨어지게 될 수도 있다. 무서운 일이다. 노인 자살의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 건강, 외로움 등이라고 한다. 그 외로움은 무료함에서 오지 않던가. 그렇다고 누가 무료함을 느끼고 싶어 느끼는 건 아닐 텐데, 그걸 떨쳐버리는 게 필요하다. 


그게 나에게는 글쓰기고 다른 누구에게는 또 무엇일 수 있다. 일반화할 수 없으나 각자 본인에게 맞는 걸 찾으면 되지 않을까. 무료함을 떨쳐버리는 도구 말이다. 운동, 사람 만나기, 여행, 독서, 등 무엇이라도. 취향이나 취미에 따라 모두 다를 거다. 아무튼 무료하지 않은 일상을 사는 건 중요하다고 본다. 그중에 내 취미가 글쓰기고 취향에 잘 맞는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후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으나 지금 내 사전에 무료함은 없다. '불가능'이 없다고 외치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무료함’이 없다고 외치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할 일이 산재해 있다고 느끼는 게 얼마나 즐거운가. 그게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생각된다는 게 또 얼마나 다행인가. 노후대책이 된 글쓰기를 즐기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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