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Feb 21. 2024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들

    

아직 본격적으로 창문을 열지 않는다. 환기할 때만 연다. 바람이 아주 차진 않다. 우수가 지났으니 안 그러랴. 요즘 낮 기온은 언제나 영상이다. 춥다고 느끼지 못한 사이, 겨울이 지났다. 그렇다고 완연한 봄은 아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보드레한 햇살이 온 누리에 퍼지고, 아지랑이가 아른거려야, 봄이리라. 창 밖에 봄을 재촉하는 비가 오락가락. 앞산과 차도가 훤히 보이는 창 앞에 서서 오락가락하는 비를 응시한다. 


창문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본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만 해도 다양하다. 숱한 차가 도로 위로 큰 내처럼 질주하고, 사람들이 오고 간다. 우산 쓴 사람, 모자만 쓴 사람, 그냥 걷는 사람.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정원수는 비에 촉촉이 젖었다. 거무튀튀하게 보이던 수피가 다르게 보인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도 그러리라. 머지않은 날 저 정원수와 가로수에 새싹이 돋고 꽃망울 조롱조롱 터지리라. 온 세상에 꽃 잔치가 벌어질 날도 금세 도래할 거다. 


나는 거실 앞 큰 창문 앞에 서서 창밖 내다보기를 좋아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창문이다. 그 앞에 낮고 긴 문갑과 버리기 아까워 아직 가지고 있는 오디오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크고 작은 화분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칼랑코에, 금전수, 꽃기린, 스킨답서스, 산세베리아, 녹보수, 몇 종류 다육이, 선인장과 알로에, 안스리움 등이다. 십 년 훨씬 지난 식물이 대부분이다. 이젠 화초를 사지 않는다. 있는 화초만 잘 키울 생각이다.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는 게 좋은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장애물 없이 앞이 훤히 보여 시원하다는 게 이율까. 도로와 정원뿐 아니라 멀리 청계산과 가까이 인릉산이 보인다. 인릉산에 숲에 진달래 핀 것도 또렷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앞 뒤에 내가 좋아하는 산이 있어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산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산의 변화를 알 수 있다. 귀룽나무 잎새가 푸르러진 게 보이면 생강꽃이 피었으리라 짐작하고, 그 꽃에 직박구리가 앉아 꽃을 따먹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울긋불긋한 진달래꽃이 시야에 들어올 때, 어김없이 생각나는 건 어릴 적 내가 놀던 우리 고향 뒷동산이다. 홑잎나물이라 불리는 참빗살나무 새싹, 부지런히 먹이를 찾던 다람쥐, 슬금슬금 나와 진달래꽃 숲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 잔대 싹이며 여린 취나물 등의 산나물, 삽주와 미역취, 산나물 뜯던 동무들. 그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허우적대다 보면 나는 열한두 살의 소녀가 되고 만다. 


우리 집 앞에 높은 건물이 들어올 수 없다. 지형이 그렇다. 산을 깎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집에 살고 있는 한 나는 언제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 속에서 옛날을 불러내 재현하며 향유할 수 있다. 그게 또 창문 앞에 서서 창밖 내다보기를 즐기는 이유일까. 창문과 소파 중간에 놓인 안마의자에 앉았을 때도 그 두 개 산에 시선을 둔다. 계절을 일찍 느낄 수 있는 게 모두 저 창문으로 보이는 산과 정원 덕분이다.


청계산에 자주 오르곤 했다. 인릉산도 몇 번. 자주 가는 산은 대모산이다. 뒷산이니까, 접근이 더 쉽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산이 푸르러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싱숭생숭 견딜 수 없다. 망설이지 않고 어느 산이든 오르기 위해 나선다. 산이 손짓하기 때문이다. 손짓하는 산이 보이는 게 모두 창문 덕분이다. 창문 밖 풍경은 언제나 내게 변화를 요구하고 그 길로 이끌어 준다. 


창문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햇살이 가득 집안으로 들어오는 날, 달빛이 수줍게 거실을 엿보는 날,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눈부신 하늘 보며 마음에 남아 있는 앙금 같은 욕망을 날려버리고, 햇살을 받으며 좋은 책을 읽고, 달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한다. 창문에 붙어 서서 찬 유리를 쓰다듬으면, 때론 눈물이 흐르고 때론 목울대가 아파온다. 그런 감성을 잃지 않고 사는 나를 기꺼워하는 시간이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우리 집에 왔던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인 듯하다. 가끔 누군가가 말한다. 식탁에서 본 거실 창문에 걸린 그림을. 눈 오는 날이었다. 한 친구가 전화해서 물었다. 지금 창밖 풍경이 어떠하냐고. 환상적인 그 풍경을 말로 다할 수 없어, 한 마디로 말했다. 꿈같다고. 친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럴 것 같아,라고 했다.


오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은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흐릿한 바깥 풍경, 잿빛 하늘, 흔들리는 나뭇가지, 뒷산으로 오르는 길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 길, 살금살금 눈치 보며 숨는 고양이. 고요하고 평온해 보인다. 오늘 하루, 나도 창문 밖의 풍경처럼 평온하게 지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들어주기, 그 소중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