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선물 고르느라 고심하지 않은 사람, 드물 거다. 남에게 선물하는 건 쉽지 않다. 모든 게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옷 선물은 더욱 어렵다. 심지어 가족이라 해도. 취향을 비롯하여 맞아야 할 게 한두 가지 아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웬만하면 괜찮지만 개성이 표출되는 옷은 어려운 일이므로.
나는 입성이 은근히 까다로운 편이었다. 색깔이나 디자인에서 재질까지. 중학교 3학년 때, 옷을 사주려고 나를 장에 데리고 갔던 어머니가 화낸 적 있다. 온 장을 다 뒤지고 다녔지만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화가 났다. 그 많은 옷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이 없는 건 내 까다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게 아니고 뭘까. 오죽하면 직접 옷을 만들어 입겠다는 당치 않은 만용을 부렸을까. 가정학과에 들어간 것도 그 만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쯤엔 스스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털실로 스웨터를 짜서 입었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내가 나이 먹어가며 가끔 옷 선물을 받곤 했다. 하나 같이 마음에 쏙 든다. 신기한 일이다. 옷을 선물한 사람들의 안목이 보통 아닌 듯하다. 지금까지 선물 받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맞지 않는 게 한 번도 없으니까. 색상이며 디자인, 사이즈까지 어쩌면 그렇게 잘 맞는지. 입성이 까다롭기 한량없는 나에게. 까다로운 성격이 어느 날 갑자기 변했을 리 없고, 선물한 사람들의 안목이 뛰어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얼마나 고심하고 고심해서 고른 걸까. 그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누군가 위해 준비하는 그 마음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없다. 나는 옷 선물을 누구에게 해본 적 없다. 기껏해야 스카프, 장갑, 양말 정도다. 그것을 고르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받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하여 선물을 고르곤 했다. 그것도 이젠 그만둔 지 오래다. 식사 대접을 하는 게 낫지 선물 고르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였다. 제자 K로부터 옷 선물을 받았다. 색깔과 디자인이 약간 다른 셔츠 세 벌이었다. 재질은 같았다. 한 벌도 아닌 세 벌씩이나. 왜 세 벌이냐고 했더니 번갈아 시원하게 입으란다. 그해는 물론 다음 해 또 다음 해 내리 삼 년 동안 잘 입었다. K의 말대로 가슬가슬한 재질이어서 땀이 나도 몸에 들러붙지 않고 시원했다. 색깔과 디자인이 조금씩 다른 세 벌이라 한여름 입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올여름에도 잘 입을 수 있으리라.
그전에도 제자 K는 내게 옷 선물을 한 적 있다. 감색 블라우스다. 봄가을엔 블라우스 하나만 입고 재킷 속에 받쳐 입기도 적절했다. 당시엔 꼭 맞고 잘 어울려 자주 입었는데, 그 후론 살이 약간 붙어 거의 입지 못했다. 장롱에 넣어두고 한 번씩 만져보기만 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난 요즘 다시 입어보았다. 놀랍게도 낙낙하게 맞았다. 체중 감량이 되어서 그런 듯했다. 봄이 오면 이 블라우스를 요긴하게 잘 입고 다닐 듯하다.
그러고 보니, K로부터 선물 받은 옷이 블라우스와 셔츠 모두 네 벌이나 된다.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선생노릇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걸까. 그 고운 마음이 기껍기만 하다. 마음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게 보통이다. 더구나 옷 선물은 쉽지 않다. 취향이 어떨지, 잘 맞을지, 색상이 어울릴지, 많은 게 우려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K가 내게 한 옷 선물은 모두 맞춘 것처럼 잘 맞는다. 엽렵한 눈썰미로 나를 관찰한 결과리라.
나를 아껴주던 스승님께 받은 코트도 있다. 내가 두 번째 산문집을 출간하고 났을 때, 그 책을 읽고 난 스승님이 수고했다며 맛있는 식사와 함께 코트를 사주셨다. 그전에도 몇 벌 재킷과 셔츠를 사주곤 했는데, 치수를 물어보지 않고도 꼭 맞은 것으로 산 게 놀라웠다. 색상도 내가 좋아하는 거였다. 그 색깔이 무난하기도 했지만 선호하는 색이라 더 자주 잘 입고 있다.
제자 K와 스승님 외에도 내게 옷 선물을 한 사람은 더 있다. 지인이나 동료 등. 나는 사실 옷이 많이 필요하다. 매일 나가다시피 하니까. 주위 사람들이 그걸 알기에 옷 선물을 하는 걸까. 고마운 마음을 어찌 다 말로 하랴. 옷 선물이 어려운 걸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받은 사랑의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사랑의 빚이기 때문에 괜찮은 걸까. 선물 받은 옷 입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