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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19. 2024

들어주기, 그 소중한

   

다섯 살 온이가 자주 부르는 노래가 있다. ‘친구가 되는 멋진 방법’이란 동요다. 노래 가사에 친구 얘기 ‘들어주기’가 있다. 그렇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알려줘야 한다. 노래를 통해 교육하는 게 더욱 효과적일 듯하다. 온이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율동을 하면, 세 살 또온이도 어설픈 동작으로 따라 하며 노래까지 부른다. 온이들은 형제 이전에 서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노래 영향일까. 온이가 하는 말을 잘 안 듣고 또온이가 고집을 부리면, 친구가 되는 멋진 방법은 형아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거야, 라며 가르친다. 자기도 또온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을 때 있으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야지, 그래야 해. 어릴 적부터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야지 싶다.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중요하다. 소통이니까. 


어디 친구뿐이랴. 가족끼리도 들어주기가 잘되지 않은 경우 많다. 그 때문에 오는 건 소통부재. 그만큼 마음의,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 그럴까. 현대인들의 삶이라는 게 녹록하지 않으므로. 아니라고 하지 못하겠으나, 그보다 이기적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더 외로워지는 결과를 불러오는 이기심, 그걸 경계하지 않는 게 문제일 듯하다. 내 앞의 문제가 더 급급하기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빔을 활용한 발표수업을 할 때 난감한 적이 있었다. 자주. 학생들이 자기 발표는 잘하는데, 다른 학우의 발표를 잘 듣지 않는다. 그런 학생이 의외로 많다. 듣기가 선행되어야,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데. 듣기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발표에 대한 평가지를 만들어 주고 메모하게 한 후 논평을 하게 유도하는 방법, 발표자에게 질문을 하면 약간의 가산점을 주는 방법 등을 활용했다. 학생 수가 적을 경우엔 모두 한 마디씩이라도 평을 할 수 있도록 묻기도 했다. 몇 주만 그렇게 노력하면 개선되었다. 


지인들과 만날 때도 자주 경험한다.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아서 그럴 수 있겠으나,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휴대전화 세상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꽤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것 같아도 실제론 다른 사람들과 문자 메시지 주고받는 것에 열중하는 경우 말이다. 물론 급한 일이나 꼭 연락할 일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 습관적으로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거다. 핵심적인 이야기조차 여벌로 듣는 사람,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럿이 만날 때 한둘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그나마 보아 넘길 수 있다. 문제는 단 둘이 만나도 그러는 사람이 있다. 같이 식사하면서도 끊임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대화에는 건성이다. 그럼 왜 만난 것일까. 더구나 상대방이 만나자고 해서 만난 자리인데. 기분 상하지만 내색하지 못한다. 이야기하고 들으면서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닌가. 식사만 하기 위해 만나는 거라는 느낌 때문에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하긴, 연인끼리 만나도 휴대폰으로 대화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만나서도 둘이 문자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던가. 찻잔을 마주 놓고 각자 사이버 세계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한다던가. 희한한 세상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본다. 내가 목격한 적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도 그 지경이라면 더 할 말이 있을까. 그런 연인들은 분명히 얼마 못 가 헤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야 어찌 진정한 친구가 될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남녀, 노소, 신분 등 모든 걸 초월해서 친구가 된다면, 세상은 지금과 확실히 달라질 거다. 갈등이 줄어들 테고, 분쟁이 적어질 테고, 반목이 덜할 터이다. 우정과 즐거움과 행복이 우리와 더 가까워지리라. 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진정한 친구에게 패악을 부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상담사의 첫 번째 할 일도 상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란다. 조언하는 건 마지막이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담자의 마음이 풀리고 갈등이 해소되기도 한다. 심지어 조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는 경우도 허다하단다. 들어주는 것만으로 상담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만약, 상처나 고민을 안고 상담사를 찾았는데 이야기를 들어주기 전에, 잘못을 지적하거나 조언부터 한다면 숨이 막힐 거다. 


친구가 되는 멋진 방법, 어렵지 않다. 서로 얘기를 들어주면 된다. 그 쉬운 방법을 외면하고 있진 않은가. 들어주기, 그 소중한 것을. 나부터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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