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온이 꿈은 선생님이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쁘고 기꺼웠다. 현재 만나는 사람들이 온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 선생님인 듯하다. 그러니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거 아닌가. 만나는 사람이 중요한 건 이렇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부모지만, 가정을 벗어난 곳에서 만나는 사람은 교사다. 보육교사, 또는 유치원 교사. 온이가 어린이집에서 좋은 보육교사를 만났고, 작년부터 다니고 있는 유치원에서 역시 좋은 교사를 만난 듯해서 안심되고 기뻤다. 그 좋은 교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기에,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 5단계에 의하면, ‘인정’의 욕구는 4단계에 속한다. 5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 바로 아래단계다. 이 이론은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상위 단계 욕구가 나타난다고 보는 것으로, 인정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말고 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온이가 말하는 꿈은 자아실현의 욕구와 엄밀히 다를 수 있으나, 벌써 꿈을 가졌다는 게 고무적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이제 만으로 다섯 살짜리 온이인데.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 소속의 욕구, 존중 인정의 욕구를 충족하면서 자아실현의 욕구를 향해 가고 있다는 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비약일까. 그렇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자기의 꿈을 이야기한다는 게 대견했다. 꿈을 갖는 건 이렇듯 중요하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자라고 있다는 증거니까.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라는 꿈을 가진 게 기꺼웠다. 현재 온이가 만나는 사람 중에 가장 좋아 보이는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증거 아닌가. 그렇다면 유치원 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후에 또 바뀌고 또 바뀌긴 하겠지만. 꿈은 여러 개 가져도 좋고, 크게 가져도 좋다. 구체적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뭐든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이다운 꿈이 선생님 아닌가. 그래서 기꺼웠다.
몇 년 전에 초등학생 대상으로 인문학 특강을 두 달가량 한 적 있다. 교육청과 연계해서 한 수업이었는데, 인근 초등학교 어린이들 천여 명을 족히 만났다. 그 수업의 교육목표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갖게 하고, 또 가지고 있는 꿈을 어떻게 구체화해나갈지 독서를 통해 확립해 나가는 거였다. 쉬울 줄 알았다. 어린이다운 순수가 깃든 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기대되기도 했다.
첫 수업 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상당히 놀랐다. 꿈이 없는 어린이들이 많았고, 있더라도 나는 상상도 못 했던 ‘부자’가 1위였다. 부자, 유튜버, 웹툰작가, 운동선수 순이었고, 건물주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어린이도 상당했다. 꿈이 무슨 필요 있느냐고 그냥 돈이나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참람한 기분이 들어, 내가 시대착오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건가, 고민스럽기까지 했다. 그때 내가 만난 학생들이 모두 천여 명 가까이 되었는데, 교사라고 답한 사람은 두세 명밖에 없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어린이들의 그런 생각은 조금씩 수정되기 시작했는데, 그게 보람이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는 수업은 대학생들과 하는 수업과 달라 새로웠고, 어릴 적 꿈을 이렇게 잠시나마 맛보는구나 싶어 놀라웠다. 꿈은 이렇게 사람의 삶을 밀고 가는 힘이 있는 걸 느꼈으므로. 두 달 동안 초등학교 선생님 맛을 보았는데, 그 또한 새로웠다.
어릴 적 내 꿈은 교사였고 문학가였다. 글 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 꿈을 갖게 된 데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어른들 영향이 컸다고 본다. 먹고사는 게 만만치 않는 빈곤한 시대의 산골아이였던 내가 어떻게 꿈을 가질 수 있었을까. 밖에서 만나는 선생님들과 가정에서 만나는 어른들 덕분이다. 가정에서 인정받고 칭찬받아 자아 존중감과 효능감이 컸던 나는 선생님들에게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졌던 꿈은 어렵게,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이루어졌지만, 그 충족감으로 오늘을 살고 미래를 살 것이다. 온이가 가진 꿈을 이렇게 기뻐하고 기꺼워하는 이유다.
나는 온이에게 공부 많이 해서 대학교 선생님이 되라고 했더니, 딸은 아니란다. 적당히 하고 재밌게 사는 게 최고니까, 초등이나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란다. 공부 많이 하는 건 가족들에게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며. 공연히 눈치가 보였다. 나 때문에 가족들이 행복하지 않았던 건가 싶어서다. 물론 그것도 인정하지만 본인이 행복해야 하니까, 온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아들은 옆에서 빙그레 웃기만 했다. 사위도.
자라나는 아기와 어린이들 청소년들에게, 아니, 청년 장년 노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서로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의견에도, 행동에도. 조언이나 경계를 하더라도 인정과 칭찬 다음에 하고, 다시 끝엔 또 인정하고 칭찬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우리 모두 밝고 행복한 내일을 살기 위해, 꿈을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온이의 꿈을 응원한다, 온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