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대신 카드와 계좌이체

봉투

by 최명숙



요즘엔 봉투 쓸 일이 거의 없다. 축의금 봉투나 조위금 봉투밖에. 그것도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가면 구비되어 있다. 그래도 우리 집에는 언제나 봉투가 한 묶음씩 준비돼 있다. 어느 정도 사용하면 다시 또 한 묶음 구입한다. 나는 축의금이나 조위금 봉투를 직접 써서 사용한다. 나를 닮아서 그럴까, 아들도 꼭 집에서 봉투를 써 가지고 참석한다. 그러니 우리 집에는 봉투가 꼭 있을 수밖에.


집에서 봉투를 준비하는 것은 성의 때문이다. 식장에 구비된 걸 사용하는 것은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바쁜데 그러느냐고 타박할 수 있으리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큰 행사에 참석하면서 미리 준비하지 않는 건 분명히 성의 부족이다. 나는 어떤 일에는 성실한 모습으로 성의껏 준비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잘하고 못하는 건 기능적인 부분이다. 기능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성의는 기본이라고 본다. 큰일 참석에 그 기본적인 성의가 봉투 준비라고 본다.


학교 재직할 때 보면, 봉투 쓰는 법을 제대로 아는 대학생이 드물었다. 교양강좌 시간에 한 번씩 언급하고 넘어갔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므로 알아두라며. 심지어 시험문제에 봉투 쓰는 법을 출제하기도 했다. 평소에 쓰지 않는 한자를 비뚤비뚤 그리듯 쓰며 연습하는 학생들이 기특했다. 사실 한글로 써도 무방한데, 가르칠 때는 한자로 가르쳤다. 이름도. 요즘엔 나도 이름은 한글로 적는다. 한자를 잘 못 읽을 수도 있으니까.


특히 결혼식에 갈 때는 적어도 한 달 전쯤부터 초청받아 알고 있는 것이므로, 미리 봉투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 준비하는 과정에 축하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 좋지 않은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겠다, 속으론 무슨 꼰대 같이 형식을 그리 중요시하느냐고 구시렁대는 학생이 있었을지. 하지만 내 제자들은 그런 학생들이 없으리라 믿는 마음이 더 크다. 그 믿음 때문에 나는 내 교육관을 마음껏 펼쳤던 것 같다. 혼낼 일 있으면 강의 평가가 나쁘게 나오든 말든 혼냈고, 칭찬할 일 있으면 아낌 없이 칭찬해주었다. 교양강좌 시간은 말 그대로 교양을 함양하는 교육을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뭐, 이것도 내 생각이다.


장례식은 바깥에 있을 때 소식을 듣는 경우가 있고, 격식보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게 인지상정이므로, 좀 다르다. 그럴 경우엔 장례식장에 있는 봉투를 쓸 수밖에 없다. 문상은 미적대지 않고 빨리 가서 위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풍문에라도 부음을 들으면 될 수 있는 한 나는 꼭 가는 편이다. 바깥에 있다가 참석하게 되면 부득이 나도 장례식장에 구비된 봉투를 사용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꼭 집에서 반듯한 글씨로 써 가지고 간다. 애도하는 마음과 함께.


그 두 경우 외에 흰 봉투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온이와 또온이에게 가끔 세뱃돈이나 생일 축하 금일봉을 줄 때 있다. 그때는 흰 봉투보다 예쁜 꽃봉투를 사용한다. 꽃봉투는 대부분 재활용. 누구에게 손 편지가 든 꽃봉투나 짧은 메모를 적어 넣은 꽃봉투 받은 것을 받을 때 있다. 그때 한 번 사용한 그 예쁜 봉투를 그냥 버리거나 묵힐 수 없다. 한동안 가지고 있다가 다시 재활용한다. 글씨가 쓰여 있지 않은 봉투라면.


결혼 전에 나는 우리 동네의 유일한 편지 대필자였다. 온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에게 꼭 필요한. 그때 편지지나 봉투를 들고 와 대필을 부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삶은 감자 몇 알, 삶은 옥수수 몇 자루를 들고 올지언정.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편지지나 봉투 같은 게 갖춰져 있는 집이 드물었다. 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이 있어도 흰 편지봉투가 아니고 누런 봉투였다. 그때는 그것을 쓰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서류 넣는 봉투로만 쓰지만.


지금은 봉투 대신 카드나 계좌이체다. 둘째이모 김다비 님의 ‘주라주라’ 가사도 생각난다. 주라주라 카드 주라. 온이와 함께 식당에 가면 꼭 온이가 식사비용을 결제한다. 어멈 카드나 내 카드로. 먹고 나면 카드 달라고 한다. 마트에 가도 카드, 작은 소매상은 현금을 선호해 계좌번호가 계산대 앞에 적혀 있기도 하다.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적다. 카드나 휴대전화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상이니까.


요즘엔 청첩장이나 부고장에 계좌번호가 기재돼 있는 게 보통이다. 부득이 참석 못하는 사람이 대신 봉투 해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없다. 편리하고 정확한 계좌 이체를 이용한다. 내게는 아직 생경하고 건조해 보이는 계좌이체인 듯한데, 많은 이들은 아주 편리하다고 말한다. 그게 대세라고도 한다. 이제 별 곳에 대세가 다 붙는다. 부득이한 경우가 있기도 하겠지만 편리성 때문에 계좌이체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봉투는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면 올지라도, 난 봉투를 직접 써서 참석하는 방법을 한동안 고수할 것 같다. 편리만 따라가다 정이 사라지고, 만나 손잡는 그 따스함이 사라질 게 틀림없으므로. 사람이 사는 데 중요한 건 때로 그 따뜻한 마음일 수 있으니까. 직접 만나 환하게 웃으며 축하하고, 손잡으며 전하는 온기, 적어도 그때까지 봉투는 사라지지 않고 쓰임을 받을 수 있으리라. 봉투 대신 카드와 계좌이체가 대세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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