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기적, 어떤 이는 하루하루 숨 쉬고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한다. 각처에 위험한 것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란다. 맞는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모든 게 기적인 것 같으니까. 심지어 공중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기적 같고, 이 지구 역시 그렇다. 그런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어디 그런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 하나만 있어도 불평불만이 어느새 튀어나오니.
내가 경험한 기적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떠올려 보니, 꽤 많다. 중학교 시험 보러 가던 날, 눈 때문에 차 한 대 다니지 않아 걱정할 때, 어디선가 나타나 태워준 삼륜차, 그 차 아니었다면 나는 시험 시간에 늦어 응시조차 못했을 거다. 수십 년이 흘러 그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 옆집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는데 마침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차선을 바꾸는 바람에 피한 일 등, 크고 작은 기적을 생활 중에 경험했다.
특히 기적 중의 기적을 경험한 적 있다. 나는 쉰 살 중반이 되도록 집을 사지 못했다. 내가 판단을 잘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는데, 내 의식이 그랬던 것 같다. 집을 살 때 주택 구입 자금 전액 가지고 있어야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대출받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집 사느라 빚졌다는 말을 들으면, 난 그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실히 주택 자금을 모았다. 이제 집을 살만큼 모았다고 생각해 알아보면 집값은 두 배로 올라 있었다. 다시 성실히 자금을 모아 또 보면 세 배로 올라 있어 도저히 살 수 없었다.
아이들은 커서 서른 살이 다 돼 가고, 집 마련을 못 한 채 노후를 맞을 것 같았다. 적극적으로 아파트 분양 공고를 살피기 시작한 건 쉰 살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었다. 내가 결혼하고 분가해 도시에서 살기 시작할 때부터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거나 경제관념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달라졌을 거다. 주택자금을 손에 쥐고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한 게 문제라는 걸 깨달은 것도 쉰 살이 넘었을 때다. 남편이라고 해서 나보다 나은 사람도 아니었다. 부창부수. 다른 데선 별로 잘 맞지 않는 우리 부부가 주택마련 방법에선 잘도 맞았다.
쉰살 즈음부터 아파트 분양공고에 관심을 두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주택 구입 가격에서 삼분의 일 정도 부족했다. 억 대가 넘는 큰 액수였다. 큰마음먹고 신청했는데, 그때까지 무주택자라서 덜컥 당첨되었다. 이제 주택구입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였다. 남편은 병환 중이었고, 나는 막 학위를 받은 직후였다. 아들딸은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면서 어렵사리 대학에 다닐 때니, 주택구입 자금을 마련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때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당첨된 다음 달부터 나에게 강연과 강의가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밥 먹을 새가 없어 차 안에서 김밥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을 두세 시간밖에 못 자고 강의 준비와 일을 했다. 힘든 것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건, 아파트 대금을 그때그때 꼬박꼬박 낼 수 있을 정도로 자금이 마련되는 재미 때문이었다.
자다가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벌떡 일어났다. 꿈인가 싶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기적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한 번도 분양대금을 밀리지 않고 일 년 육 개월 동안 지불할 수 있었다. 사업하는 것 아니고, 어디서 금덩이를 주운 것도 아니며, 유산 상속을 받은 것도 아닌데, 순전히 나 혼자서 그 많은 대금을 마련해, 무사히 다 치를 수 있다는 게 기적 아니고 무언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처음 내가 유아교육기관을 설립할 때였다. 가진 것이라곤 건물 계약한 100만 원이 전부였다. 새벽마다 기도했는데, 그때 담임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돈은 은행에 있으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누구 손을 통해서든 자금이 마련될 거라고. 물론 무사히 개원을 했고, 그게 언덕이 되어 우리 살림은 조금씩 나아졌다. 그때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때보다 집 사는 건 더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 역시 빌리지 않고 다 해결되었다.
십이 년 전 시월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입주했다. 생애 첫 내 집이다. 잔금 치르고 등기 마치고 났을 때, 내 통장에는 이만 구천 원이 남았다. 대출 하나 받지 않고 나의 집 마련이 계획대로 된 거였다. 그때는 아파트 구입 자금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긴 했지만 내 형편으론 불가능한 액수였다. 입주할 때 가구나 가전제품을 하나도 바꾸지 못했다. 꼭 필요한 소파도 사지 못해 한 달 후, 월급을 받아 구입했다.
기적적으로 아파트 대금을 마련한 후, 놀라운 일이 생겼다. 기적이 거기서 멈추었다는 것이다. 입주 후부터 나의 수입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기적이 계속되었다면 나는 또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마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때 나는 정확하게 알았다. 그때까지 일어났던 일은 내가 대단해서 아니고, 기적이었던 거라고. 그렇지 않고 설명될 수 없다. 어떻게 강의와 강연만으로 일 년 반 만에 그 많은 아파트 대금을 마련할 수 있는지.
나는 기적을 능력으로 착각하지 않았다. 그게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기고만장했을지도. 지금까지 기적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건, 부족한 나를 긍휼히 보아주는 눈길들이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 또한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