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는 현재 공동체적으로 살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라기보다 공동체적이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경제공동체 외엔 비교적 독자적이므로. 하는 일이 다르고 삶의 방식 또한 다르기 때문에 완전한 공동체가 되기 힘들다. 같이 살게 되었을 때 처음엔 예전 생각만 했다.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두었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내가 다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원치 않았음에도.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유기적이다. 떼려야 뗄 수 없도록 끈끈하게 결속된 관계다. 운명적이며 숙명적이기도 한 조직체다. 아들과 나의 경제공동체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아들의 결혼과 동시에 사라지게 될 게 확실하다. 삶의 공간이 분리되듯 경제공동체도 깨어지게 될 테니까. 네 것은 네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놀부처럼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일까.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은 어느 정도 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보장할 수 없다. 현재 이 시대는 가족 개념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고 있다. 적어도 함께 살고 있는 동안만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 유지되려나 모르겠다. 결국 부모 자식 간에도 독자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되고 만 듯하다. 그게 맞고 틀리고 떠나 그런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업화 사회를 기점으로. 산업화 사회 이전에 가족은 운명공동체였다. 당연히 경제공동체이기도 했다. 가족 중 누가 경제활동으로 얻은 소득은 가족 모두의 것처럼 인식되었고,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가족 구성원이 결혼하여 분가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에게, 조부모에게, 형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힘을 합쳐 함께 해결했고, 그것을 마땅하게 여기는 문화였다.
심지어 마을도 상당 부분에서 공동체로 인식되었다. 마을에 문제가 있으면, 모두 나서고 형편에 따라 물질과 힘을 보탰다. 실명의 사회였기에 가능했던 걸까. 공동체나 연대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십시일반으로 도우며 사는 시대였다. 마을의 어느 한 집에 어려움이 생겨도 외면하지 않았다. 상부상조하며 마음과 물질을 나누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이 공연히 생긴 게 아니다.
지금은 상당 부분에서 다르다. 가족이나 마을이나 공동체 삶에서 멀어졌다. 아니 의식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간혹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마을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실제로 마을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는 곳도 있다.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촌이나 도시나 어촌 어디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마을 공동체가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지는 건 지향해야 할 일이다.
과거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던 것들이 현재는 인위적으로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래도 상관없다.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나아간다면. 인간이 사는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조직체라고 볼 때,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건전하게 하느냐 아니냐 하는 게 관건이다. 익명의 사회가 된 현시대에서 이상만 고집해선 안 되리라. 융통성 있고 소통이 원활하다면 익명성조차 문제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정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사회로, 공동체 의식이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산업화사회 이후로 지향해 왔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의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미래를 회복해야 되는 일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오래전 우리의 삶에서 찾아본다면 어떨까. 그게 결코 퇴보나 낙오가 아닐 텐데, 솔직히 말하기 두렵다. 그저 낡은 생각으로 치부해 버릴까 봐서다.
관심 분야가 같은 사람끼리 모인 동아리나 어떤 목적으로 모인 모임, 마을 구성원, 가족 등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바람직하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으므로. 이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어떨까.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그렇다면 오래된 미래 속에서 긍정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까. 적어도 가족 공동체라도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 공동체적인 의식만이라도.
부모와 자식도 각자 살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한 작금의 현실을 보면 시급하다는 생각뿐이다. 아들과 내가 분리되고 싶지 않아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더 외롭지 않고 행복을 느끼며 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다. 아무튼 우리는 아직 경제공동체이면서 공동체적인 삶을 살고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