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놀이

재능

by 최명숙


스물두 살 조카딸이 있다. 그 아이가 여섯 살 되면서 한동안 내게 독서지도를 받았다. 일주일 한 번씩 동생 집으로 가서 나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름은 예경이다. 예경이는 나를 좀 닮았다. 동글동글하면서 조금 얼굴이 큰 듯한 것이. 우리 쪽 유전자가 어디 숨어 숨바꼭질하다가 나타난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정이 갔다. 예경이도 나를 유난히 잘 따랐다. 우리는 공부보다 수다가 더 길 때도 있었다. 여섯 살짜리가 나와 말이 통한다는 게 놀라웠다.


예경이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항상 눈에 띄지 않았다. 동생이 눈짓으로 숨었다는 걸 알려주긴 했는데, 찾기 쉽지 않았다. 어느 땐 장롱 안에서 찾고, 어느 땐 피아노 밑에서 찾고, 또 어느 땐 목욕탕 욕조 안에서 찾았다. 예경이는 그 숨바꼭질 놀이를 즐겼고, 나도 재밌어했다. 부러, 어디 있지? 예경이가 어디 숨었을까, 하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면 어디선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끝내 못 찾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 어느새 내 등 뒤에서 눈을 가렸다. 고사리처럼 자그마한 예경이의 손길을 느끼고 몸을 돌려 와락 껴안으면 까르르르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그랬던 예경이가 벌써 스물두 살이 되다니, 세월은 이리도 빠르단 말인가. 예경이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한다. 자주가 뭔가, 대학 들어가고 딱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방학하면 나와 영월에 있는 별마루 천문대 가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방학이 되면 의료봉사다, 뭐다, 해서 더 바쁘다. 공부가 많아 힘들다며 가끔 징징대는 전화를 해오기도 했는데, 이젠 그것도 끊겼다. 내가 먼저 연락할까 하다 그만두기를 몇 번이다. 만나지도 못할 거면서 서로 심란하기만 할 것 같아서다.


온이네 가면 온이와 또온이도 숨바꼭질을 좋아한다. 커튼 뒤에 숨고, 피아노 밑에 숨는다. 짐짓 모른 척하면 스스로 와아 소리치며 나온다. 그게 뭐 그리 재밌는 놀이일까 싶지만 숨바꼭질은 언제나 웃음을 준다. 집안에서 하는 놀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우리 자랄 적엔 바깥에서 숨바꼭질을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모두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듯하다.


어둑어둑해지고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이 집 저 집에서 들려올 때까지 우리들은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담배 건조실에 숨고, 뒤란 장독대에 숨고, 헛간에도 숨었다. 자그마한 마을 이곳저곳에 흩어져 숨었다가 잠이 든 경우도 흔했다. 특히 잠이 많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툭하면 남의 집 헛간에서, 건조실에서, 잠이 들곤 했다. 다락에 올라가 잠든 일도. 그 친구는 잠꾸러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수제비 먹다가도 수저 든 채 잠이 들었다는 믿지 못할 일화도 있다.


우리가 숨바꼭질할 때 어떤 어른은 숨겨주기도 했다. 빙그레 웃으며. 찾았다고 외칠 때 그 희열을 어떻게 말로 할까. 보석 발견한 기분이 그럴까. 걸린 아이도 만면에 웃음을 띠며 나왔다. 그렇게 온 마을을 뛰어다니며 자랐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게 아쉽다. 간혹 어린이 놀이터에서 숨바꼭질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마땅히 숨을 곳이 없어 미끄럼틀 안쪽이나 정원수 뒤에 숨다 금세 들키고 말지만.


숨바꼭질을 하지 않고 자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체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놀이다. 우리 민족의 놀이는 이렇게 무리 지어 함께 하는 놀이가 대부분이었다. 술래가 되어도 찾는 재미가 있고, 그렇지 않아도 숨는 재미가 있다. 숨고 찾는 것이 주는 묘미를 느끼며 자랐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숨바꼭질인지도 모르겠다. 숨은 사람을 찾듯, 숨어 있는 스스로의 재능을 찾아내는. 또 소중한 것은 숨겨두기도 하는.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예경이가 숨어 있는 재능을 발견해 간호학을 재밌게 공부하듯, 우리 온이들도 재능을 발견해 펼치면서 자랐으면 한다. 다행히 딸은 온이들을 재능 따라 살도록 해주고 싶단다. 그게 쉽지 않을 텐데. 나도 그 부분에선 아들과 딸에게 비교적 잘했다고 본다. 둘 다 원하는 쪽을 공부하게 했으니까. 재능도 있다고 믿었고.


하지만 가끔 후회한다. 예술가의 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회화를 전공한 아들과 작곡을 전공한 딸은 불만이 없는데, 나는 불만스러울 때 있다. 더 깊이 숨어 있는 재능이 있을지 모르는데, 헤집어 살피지 않고 덜컥 허락한 것이. 또 취업 잘 되고 평탄하게 살 수 있는 길로 안내하지 못한 것이.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 설득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을 아주 가끔 후회한다.


이젠 헛간에서 잠들든, 건조실에서 잠들든, 내가 깨울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아니, 잠들지 않고 놀이에 잘 적응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숨바꼭질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 보니, 오늘 내가 한가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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