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상처가 되었다니

후회

by 최명숙


언젠가부터 후회를 줄이며 살기로 했다. 어떤 일이나 행동을 결정해야 할 기로에 놓였을 때, 그 이익이나 불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도덕적 잣대를 드리우지도 않고, 후회되지 않는 쪽을 선택하기로. 그러다 보면 후회를 줄이게 되리라. 쉽지 않은 일이다. 후회를 줄이는 쪽으로 선택한 것은 내 마음대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 두 지점이 상충되지 않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당한 갈등을 야기하는데 그래도 끝내 선택하는 건 후회하지 않는 쪽이다. 그게 평생의 삶에서 후회를 줄이는 방향이므로.


같이 산책하고 가끔 식사도 하는 지인이 어느 날부터 내게서 멀어졌다. 이유가 궁금했으나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예전 같으면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을 게다. 지금은 다르다. 그 지인의 행동을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가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에 답이 없다는 건 소통을 거부한 것이므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 없었다.


살다 보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게 때론 도에 지나칠 정도인 사람이 나 아닌가. 자타가 공인하는 것 중의 하나다. 그 지인은 유난히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므로, 그대로 인정하자 싶으면서도 신경이 쓰이고 가끔 불뚝거리는 마음을 진정하느라 애썼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했다면 그걸 말해주면 될 텐데, 그냥 단절한단 말인가. 내게 상처가 안 될 수 없었다. 마음을 깊이 나눈 게 후회될 지경이었다.


얼마 전에 그 지인을 산에서 만났다. 뒷산 그 좁다란 오솔길에서 마주쳤다. 후박나무 옆 진달래 군락지 근처였다. 지지난 봄에 그리도 곱게 핀 진달래꽃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동진 곡의 <진달래꽃>을 합창하던 그곳에서. 어머나! 산에 오셨네요. 요즘 건강은 괜찮으세요? 나도 모르게 반가이 인사를 건넸다. 지인은 씩 웃었다. 이제 올라오느냐며. 하지만 그뿐이었다. 바쁜 일이 있는 듯 서둘러 내려가는 그녀를 멀뚱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에 지인이 내게 전화했다. 왜 자기가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에 답을 하지 않았는지 말하고 싶단다. 그녀의 해명인지 설명인지 들으며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인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한 말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그 말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단다. 그녀가 나에게 결혼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내가 결정하고 행한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렴풋이 생각났다. 내가 완벽해서 그런 게 아니고, 언젠가부터 후회를 줄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즈음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다짐하는 의미로 단호하게 말했을 수 있다. 그게 그녀에겐 상처가 되었다니, 전혀 의도한 일이 아닌데. 결혼을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미 다 끝난 선택이고 결과인데. 후회한다고 해서 돌이킬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내 말을 듣고 지인은 가슴이 막히는 듯 답답함을 느꼈단다. 그래서 나와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다는 거다. 내가 설명할 말이 없었다. 그 사람이 그렇다는데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그 말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타인이 부러워할 정도로 여유롭고 금실 좋게 사는 그녀였으므로.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준 걸 미안하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니었다. 그녀가 물었고 난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을 따름이다.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대단한 내 불찰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얼마나 여러 번 했던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데에 이유가 있다는 것이. 그대로 수용했다. 그녀가 그렇다는데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닌가. 그때 그녀가 결혼생활의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물었다면, 내 답변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우회적으로 말하며, 후회한들 소용없지 않으냐고 했을 게 틀림없다. 공감능력이 탁월하고 넘쳐 걱정인 사람이 또 나 아닌가.


그녀는 내게 같이 산책하고 식사도 함께 할 날이 있을 거라고 했다. 지금은 아니란다.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관계 맺기를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을 혀 밑에 감추고 삼켰다. 또 무슨 하찮은 말에 서운해하는 일이 생길지 누가 아는가. 그것까지 모두 감수하며 살기 피곤하다. 단순해지고 싶다. 사람을 덜 만나는 것이 한 방법이다. 그러면 후회를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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