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 수 없는 것
사람에게 감출 수 없는 것 세 가지, 그중의 하나가 재채기다. 맞는 이야기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나오는 걸 어쩔 수 없다. 심지어 방귀나 트림은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잖은가. 물론 방귀도 재채기 못지않게 숨기기 어렵긴 하다. 그러니까 전래동화에 방귀 참던 며느리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며느리 방귀 한 방에, 지붕 잡고 뱅뱅, 문설주 잡고 빙빙. 아무리 읽어도 들어도 재밌는 그 이야기 말이다. 하긴 방귀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나 웃음이 나오긴 한다. 그래서 남녀노소 막론하고 방귀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걸까.
얼마 전 온이네서 동화책을 읽어주게 되었다. 온이에게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오라고 했더니, <방귀 시합>이란 책을 들고 왔다. 하도 읽어서 내용을 다 꿰고 있으니 웃음부터 나오는지 흐흣 만면에 미소를 띠고. 또 그걸 읽어달란다. 빵 뿡 소리만 나오면 자지러지게 배를 잡고 웃는 온이를 보는 게, 나는 더 우습다. 작가의 발상이 기발했다. 방귀 시합의 하나로 절구통을 날리는 이야기가 말이다. 방귀에 날아간 그 절구통이 결국엔 달에 박혀 옥토끼가 방아를 찧게 되었다나 뭐라나. 달이 뜨면 절구통이 정말 달에 있는지 봐야 한다며 나를 못 가게 잡는 온이를 간신히 떼어놓고 집으로 왔다.
재채기를 소재로 한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혹시 그런 이야기를 아는 독자가 있다면 꼭 연락 주시길. 그러니 내가 재채기 때문에 겪었던 일화를 엮어볼 수밖에. 사랑을 숨길 수 없듯, 재채기도 숨길 수 없다는 건 맞다. 코가 간질간질하다 터져 나오는 재채기를 어찌 참는단 말인가. 집에서 혼자 있을 적에야 밥 먹을 때 나오든 화장실에 있을 때 나오든 무슨 상관이람.
회의가 있던 날이다. 감기에 걸리려고 그러는지 아침부터 재채기가 시도 때도 없이 나왔다. 재채기의 특성은 꼭 두 번 하는 거다. 그래서 재채기라고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한 번 하면 ‘채기’인데, 두 번하니까 ‘재채기’라고. 장난으로 한 말인지 아닌지, 몇십 년 국어선생 노릇 하는 나도 잘 모른다. 아무래도 장난으로 하신 말씀 아닐까. 재채기를 계속하는 걸 ‘줄재채기’라고 하는 걸 보면. ‘기침에 재채기’라는 어휘도 있다. 어려운 일이 계속되는 걸 일컫는다. 기침과 재채기는 또 하는 속성인가 보다.
회의가 시작되면서부터 재채기가 연달아 나오기 시작했다. 사탕을 하나 입에 넣었다. 그래도 역시. 내가 의견을 말하려고 하니 재채기가 먼저 튀어나왔다. 난감하네, 난감하네, 그 노래만 들으면 영락없이 그때 생각이 난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렇다고 회의장에서 퇴장할 수 없다. 내가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에. 어금니를 꽉 물고 입을 꾹 다물어도 코가 간질간질하다가 불현듯 튀어나온다. 감출 수 없다. 절대로.
회의 참석자들이 처음엔 이해를 하는 듯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계속되니까 큭 웃는 사람, 나를 힐긋 쳐다보는 사람, 그러다 급기야 불편한 빛을 한 사람이 보였다. 좌불안석. 계속 나오는 재채기. 재채기가 그렇게 계속 나오는 경우 드문데, 그날은 유난했다. 옆에 앉은 김 선생은 내 옆구릴 찔렀다. 그냥 나가라는 신호였다. 못 본 체하고 있으니 고갯짓으로 출입문을 가리켰다. 그래도 버텼다. 안 되겠는지 따뜻한 물을 따라주었다. 물을 한 모금씩 마시다가 입에 문 채로 김 선생을 향해 뿜었다. 손으로 얼른 막았지만 튀어가는 물방울을 다 막을 순 없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복도에 서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복도에 서 있으니 재채기가 나오지 않았다. 바깥 기온과 회의장 기온 차이 때문에 재채기가 더 심하게 나왔던 걸까. 그 속을 누가 알랴. 김 선생에게 차라도 한 잔 사야 할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다렸다. 그렇게 이십 분 정도 있었을까. 회의 끝나고 김 선생이 나왔다. 화낼 줄 알았는데,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괜찮아? 감기 든 거 아냐? 가자, 우동이라도 먹게.” 성격 별로라고 소문난 김 선생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또 한 번은 예배 사회를 보던 날이었다. 처음 한 번 재채기가 나왔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한 번으로 멈출 테니까. 아니었다. 재채기하고 조금 있다가 다시 또 나오고 또 나왔다. 성도들의 눈은 일제히 내게 향하는 것 같았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속으론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도중에 사회자를 바꿀 수는 없잖은가. 무심한 척, 최대한 자연스럽게 위장하며 간신히 예배를 마쳤다. 그날 저녁부터 심한 감기로 고생했다.
그 두 번의 내 재채기 문제는 줄재채기라는 거다. 한번 하고 좀 있다 하면 그런대로 괜찮을 텐데, 계속 이어서 나오니 어떻게 해볼 도리 없다. 그 두 번의 사건은 재채기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난감한 일이었다. 지금 몇 년째 난 재채기를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재채기는 감기 징후일 가능성이 높다. 몇 년째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과 재채기를 하지 않은 게 연관되고 있으니까.
재채기 이야기는 방귀 이야기만큼 재미가 없다. 난감할 따름이다. 그 일을 겪으면서 사람에게 감출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재채기라는 데 이의 없다.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참을 수 없는 게 재채기다. 사람이 감출 수 없는 세 가지가 가난, 재채기, 사랑이라고 하는데, 난 거기에 하나 더 하고 싶다. 글 쓰고 싶은 욕망이다. 그걸 감추지 못해, 손목이 아파도, 더 급한 일이 있어도, 되나마나 쓰는 글인데도 이렇게 쓰고 있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누가 뭐랄 사람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