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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15. 2024

입 찬 소리

말조심 


감기에 관련된 글을 쓰고 난 후였다. 느낌이 이상했다. 목이 깔끔하지 않고 약간 아픈 듯하고 마르는 듯도 했다. 혹시 감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했다. 삼 년 가까이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또 걸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잘 먹고 운동하고 충분히 휴식했다. 조금 느낌이 이상하면 반신욕 하고 머플러 목에 감고 따뜻한 물 충분히 마시면서 관리했다. 그런데, 걸리다니. 


아무래도 그날 일 때문인 듯했다. 선배들과 모임 있던 날 말이다. 심하게 감기 증상이 있는 두 분 선배, 하도 보고 싶어서 감기를 무릅쓰고 왔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하랴.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고마움이 더 컸던 날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무래도 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의 예민한 촉수는 그다음까지 뻗쳐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이 들어 나름대로 조심했는데 피하지 못했다. 


삼월 들어 모든 강좌가 개강된 실정이고, 대면이라 아픈 것은 차치하고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목은 아파 말이 잘 나오지 않았고, 기침까지 하는 데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집에서 아픈 거라면 얼마든지 아프겠는데, 강의를 해야 하니 문제다. 더구나 누구에게든 전염시킬까 봐 조심스럽기까지. 두터운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하니 전달이 잘되지 않는 듯하고 숨이 찼다. 그래도 어쩌랴. 휴강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마스크에 의지할 수밖에. 


낮에는 덜한데 밤이면 기침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갑자기 입 찬 소리 한 게 걸렸다. 에그, 옛날부터 입 찬 소리 하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난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이렇게 잘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으니. 말 뿐인가, 글로 썼잖은가. 늘 삼가고 말조심해야 하는데. 밤새 기침하면서 기도했다. 회개기도다. 기침하랴, 회개 기도하랴, 성찰하랴, 바쁘고 힘들게 보냈다. 한 삼일 그렇게 기침하더니 조금씩 나아졌다. 


목이 아프던 첫날, 병원에 다녀왔다. 주사까지 맞았다. 전염이 무서워서다. 감기는 병원에 가면  두 주, 안 가면 보름이라고 할 정도로 시간이 필요한 병 아닌가. 이제 보름이 지났으니 거의 다 나았다. 목이 약간 잠긴 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느라 성대가 약간 손상된 듯하다. 그것 말고 다 나았다. 이제 목이 문제다. 쉰 듯 긁는 소리가 나온다. 누구는 허스키한 게 매력 있다고 하지만 불편하다. 내 목소리 같지 않다.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열심히 듣던 수강생이 감기 때문에 결석하게 되었다고 연락했다. 가슴이 덜컥. 아무래도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지난주에 제게서 전염되었나 봐요, 어쩌죠? 얼른 나으세요. 메시지를 보냈다. 수강생은 아니라고 모임에서 전염되었다고 했다. 어느 게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불편한 마음이 덜하다. 이렇듯 나는 참으로 자기중심적이다. 내 마음 편하라고 그렇게 말한 것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들이 옅은 기침만 해도, 목소리가 조금만 잠겨도 가슴이 덜컥한다. 왜? 감기 온 것 같아?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물으니 아들은 전혀 아니라며 웃었다. 아들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다. 누구든 아프지 않아야 한다. 특히 감기는 전염성이 강하지 않은가. 그걸 코로나 시대에 확실히 배웠기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게 일인 사람들은 더욱 신경 쓰인다. 


보름이 지나자 잃었던 입맛이 살금살금 돌아왔다. 아직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나 입맛이 쓰지 않을 정도로. 그동안 약 복용 때문에 억지로 삼시세끼 먹느라고 고생했다.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여는 내가 우스웠다. 혈당이 오르거나 말거나 과일이고 떡이고 입맛 당기는 대로 먹었다. 혈당은 입맛 완전히 찾고 나서 다시 관리하리라. 아, 나는 관리할 게 왜 이리도 많단 말인가. 


혈당관리, 목 관리, 체중 관리, 마음 관리, 말 관리. 이러다 마음대로 한 번 살아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중에 말 관리를 더 잘해야 하리라. 입 찬 소리 탕탕 하면 안 되리라. 온이들에게나 아들딸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나는 그렇게 안 했다 등등. 그게 쉬울까. 그래서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 건가 보다. 인생선배들이 하는 말을 진부하다고 느꼈는데, 명언이 아닌가. 


이번 감기는 독했다. 몸살까지 겹쳐서 더욱. 아직도 목이 불편하고 등과 어깨가 아프다. 보름 만에 거의 회복된 건 그나마 다행이다. 겸손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생길지 어찌 알고 입 찬 소리 한단 말인가. 한 삼 년 가까이 감기에 걸리지 않으니까 자신감이 생겼었나 보다.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교만이었던 듯하다. 난 감기 안 걸린다고 입 찬 소리 한 걸, 철저히 반성했다. 


하늘이 청명하다. 산수유가 활짝 피고, 봄까치꽃도 무더기로 피었다. 창문을 열었다. 훅 끼치는 찬바람 속에 훈기가 들어 있다. 봄은 이제 우리 집 문턱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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