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Mar 26. 2024

나이와 열정, 그 간극에서

아프다 

    

아프다. 또 병이 나고 말았다. 나이를 탓하고 싶진 않은데, 자꾸 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고정관념이라고 애써 도리질해도 말이다. 어째서 그럴까. 마음과 몸은 다른 걸까. 마음이, 생각이, 정신이, 이 육신 하나 좌우할 수 없단 말인가. 황당했다. 몸은 내 것이니 내가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게 오만이었다고 인정해야 하나. 아프다. 마음이 아니고, 몸이.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프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기 싫은데. 


손목이 어지간히 낫고 나니, 몸살감기를 앓았고, 그게 웬만해지니까 목 디스크가 재발했다. 처음엔 감기 후유증인 줄 알았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정도가 더 심해졌다. 잠을 이룰 수 없고, 목과 어깨 등까지 아파 견디기 힘들었다. 목 운동과 스트레칭을 해도 소용없고, 하기도 힘들었다. 뒷목 뼈 어느 한 부위를 꾹 누르면 통증이 사라졌다. 목 디스크가 틀림없다. 손목 통증 때문에 미루었던 일을 무리하게 한 결과다. 


목 디스크에 문제가 생긴 건 이십 년 전이다. 학위논문을 쓸 때였다. 그 후 몇 년 동안 고생했는데 언젠가부터 괜찮아 잊고 있었다.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때처럼 아프다. 울고 싶을 정도다. 하루 일정 소화하는 게 빠듯해 병원에 가지 못했다. 거기다 휴일까지 겹치는 바람에, 통증이 심해도 못 갔다. 병은 빨리 치료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월요일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서글펐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이를 탓했다. 좀 무리했다손 쳐도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처음엔 췌장이나 위장이 아픈 거 아닐까 의심했다. 뒷목 뼈를 만져보고 디스크에 문제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십 년 전처럼 치료가 오래 걸릴까 봐 지레 겁이 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래서 그럴까 저래서 그럴까 고심하면서 목 디스크 때문일 거라고 잠정 진단을 내렸다. 의사도 아니면서. 나는 그런 게 늘 문제다. 


월요일 오전에 꼭 보내야 할 원고가 있어 컴퓨터를 열었다. 간신히 탈고한 후 발송했다. 그 리고 오후에 한 강좌 수업이 있어 마친 후, 병원에 갔다. 내가 가장 가기 싫어하는 병원. 병원에 가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듯했지만 겨우 나흘이었다. 그 나흘 동안 한 줄 글을 쓰지 못했고, 책도 읽지 못했다. 나흘이 사 년처럼 길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은 지루하고 길었다. 


금단현상일까.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숙제를 못하고 학교 가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하루 종일 할 일을 안 한 것처럼 미진하고 답답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글쓰기에도 금단현상이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렇다면 내가 중독된 걸까. 글쓰기 중독이라, 이건 괜찮은 일인데. 앞으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했던 걸까. 컴퓨터를 아예 열지 못했다. 안 쓰면 누가 총 들고 달려오는 것도 아닌데 이 불안감은 강박증이다. 견디자, 견뎌보자. 마음을 다독였다.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라고, 내 글을 기다리고 줄 서 있는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것도 병이다. 다정도 병인 것처럼. 아무도 알 수 없을 거다. 아니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한 줄도 쓰지 못한 나흘이 내게 얼마나 힘든 날이었으며 쓰고 싶었는지. 그러니 병원 다녀온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경과보고를 하는 것 아닌가. 아픈 건 여전한데도. 나처럼 무모한 사람도 드물 거다. 인정한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역시 짐작대로 목 디스크가 심하다고 했다. 그중 5번과 6번이. 의사는 어떻게 이런 상태로 지냈느냐며 무거운 표정을 짓는다. 손목 치료받을 때 모니터만 보고 한 마디만 말하던 의사였는데, 말이 길고 많았다. 매일 와서 물리치료받으란다. 하도 아프니 고분고분 그러겠다고 했다. 의사가 빙긋 미소 지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가 발병했다고도 했다. 죽을까요?라고 물었더니 목 디스크로 죽는 사람은 없단다. 그만큼 아프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말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물리치료를 받았고, 주사를 맞았으며, 약도 먹었다. 누워 있으면서 인정하기로 했다, 내 나이를. 며칠 전 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옛날 같으면 우린 상노인이라며 웃던. 그 말도 맞는 말이다. 옛날 같으면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 화롯가에서 담배나 물고 있을 나이다. 이거야 원.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걸까. 주희 선생의 권학시가 떠오른다. 하나도 틀린 게 없지 뭔가. 그런 중에도, 요즘 나이에 0.7을 곱해야 예전의 나이가 된다던 말과 현재 나이에서 열일곱 살을 빼야 된다는 말이 떠올라 쓸쓸하게 웃었다. 


지난번 복지관 수업에서 구십 살이 다 돼 가는 어르신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을까 싶다고 했다. 내가 무슨 그런 말씀 하시느냐며 연세 잊으라고 했는데, 참으로 무책임하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0.7 곱하고 열일곱 살 빼더라도, 현재 나이를 무시할 수 없다. 겪어보니 알겠다. 다음 수업 때 그 어르신 만나면 함부로 쉽게 말해서 송구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공감하지 못한 것도. 


이제 나이를 인정하리라. 열정이 있는 한 청년이라고 하던 사무엘 울만의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그건 마음의 문제이지 몸의 문제는 다르다. 나이 먹을수록 병을 벗 삼아 살아야 한다는 말이 갑자기 부각된다. 이 병이 낫고 나면 저 병이 찾아오고, 저 병이 낫고 나면 또 뜻하지 않은 병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지혜로운 걸까. 아직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쨌든 나이를 이제 인정하리라. 나이 인정하는 만큼 열정도 조금 식히고. 생각은 그런데 열정을 식히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아, 나이와 열정 그 간극에서, 오늘도 나는 고민하며 글을 쓴다. 되나 마나 한 이런 글을. 그래도 쓰고 나니 살 것 같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매거진의 이전글 가슴으로 낳기, 그 숭고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