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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pr 07. 2024

개미눈물만큼, 황소걸음만큼

통증

  

재발한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병원에 갈 적마다 의사가 묻는다. 어제보다 어떠냐고. 개미눈물만큼 나아진다고 했더니 의사가 빙긋 웃는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다행이라며. 개미도 눈물이 있을까. 병아리 오줌이라는 말보다 개미눈물이 좀 점잖은 듯해서 한 말이었다. 흔적 없다. 단지 더 아픈 것 같지 않다는 의미다.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느 땐 좀 나은 듯하고, 어느 땐 더 아픈 듯하다. 


목디스크, 명확한 병명은 ‘경추 추간판 탈출증’이란다. 나는 특히 5번과 6번 경추가 심하다. 은퇴 후 여행과 레저를 즐기며 사는 옛 동료에게 예전에 앓던 목디스크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지금은 전혀 이상 없다고 했다. 한마디 덧붙인다. 그냥 놀아, 놀면 낫는 병이야,라고. 심할 적엔 그냥 쉬자 싶은데,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나은 듯하면, 또 산재한 일들이 먼저 눈앞에 어른거린다. 


개미눈물만큼이든 뭐든 통증이 좀 덜한 날이었다. 온통 세상은 꽃 천지고 하늘은 맑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나섰다. 뒷산 오솔길을 조금 걷다가 손짓하는 나무와 꽃에 이끌려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그러다 둘레길을 따라 마냥 걷고 또 걸었다. 장장 세 시간 반이나. 한 번도 쉬지 않고. 나도 모르는 새 통증을 잊었다.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다 나은 듯했다. 


훈기를 머금은 바람에 산벚꽃이 피고 참빗살나무 새순도 뾰족 뾰족 올라왔다. 이미 생강꽃과 산수유꽃은 거의 졌다. 대신 소박하면서 고운 자태를 한 산목련이 피고, 동박새 무리가 포릉포릉 날았다. 산에 올라오지 못한 일주일 새에 이렇게 바뀌다니, 세상은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꾀꼬리 경쾌한 노랫소리를 듣고 저렇듯 변한 걸까. 경이로움에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통증을 잊고 마음껏 자연에 취했다. 물아일체가 이런 느낌일까. 


문제는 오후에 생겼다.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통증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목에서부터 어깨 팔 허리까지. 약 먹고 파스 붙이고 마사지해도 소용없다. 숨 쉬기 힘들 정도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개미눈물만큼이 아니고 병아리 오줌만큼도 아니다. 개미눈물만큼 나았던 게 황소걸음만큼 뒷걸음질 친 듯했다. 무리한 산행을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이 나이에도 절제하지 못하는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 


황소걸음만큼 뒤로 물러난 걸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다. 쉬는 것. 살살 달래가며 사셔야 해요. 물리치료사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완쾌될 수 있을 거라고, 아직 나이가 있는데, 무슨 노인처럼 달래가며 사느냐고 구시렁댔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걸 이제 다시 깨닫다니, 청맹과니 같지 않은가. 자신을 모르니 앞이라고 제대로 볼까 싶다. 스스로 탓하며 답답해도 가만히 누워 쉬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또 개미눈물만큼 나아진 듯하다. 안도했다.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서서히 낫는 것이리라.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느긋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의욕만 앞서서 무리하게 되면 다시 또 황소걸음만큼 뒤로 물러날 게 뻔하다. 그걸 알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 또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기로. 그래야 지혜로운 사람이다. 최면을 걸 듯 나에게 속삭였다. 


오늘, 하늘이 유난히 맑다. 산이 또 나를 부른다. 멀리 보이는 벚꽃 터널이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아, 그래도 꾹꾹 눌러 참는다. 그리고 이렇게 짧은 글 하나 되나마나 적는 것으로 마음을 위로한다. 내 목디스크는 봄이 가기 전에 나을 거라고 믿으며. 낫고 나면 마음껏 다니고 쓸 수 있으므로. 개미눈물만큼 나아지는 게 아니라 황소걸음만큼 성큼성큼 나아질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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