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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l 03. 2024

장 구경, 세상 구경

나들이

 

아들이 쉬는 날이었다. 늘어지게 잠자고, 늘어지게 게임하고, 늘어지게 뒹구는 게 쉬는 날 하는 일인 마흔두 살, 아니 이제 생일 지났으니 마흔세 살짜리 장가 안 간 아들. ‘못 간’이라고 하면 발끈할지 몰라, ‘안 간’으로 표현하는 소심함이라니. 아무튼 그 아들에게 장 구경을 가자고 했다.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몸을 일으켰다. 사실 며칠 전부터 약속해 두었기 때문에, 마다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약속 하나는 잘 지키는 아들이니까. 


솔직히 나는 아들이 이해 안 될 때 자주 있다. 쉬는 날이든 일하는 날이든 눈만 뜨면 그 길로 벌떡 일어나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하는 나로선. 게임이나 웹서핑이 생산적이지 않은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거기에서 서사와 그림을 보고, 다른 사람들 글을 읽으며 정보를 안다고 설명한다. 인정. 설명 안 해도 내가 꽉 막힌 사람도 아닌데 그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 원하는 나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로 우리는 가끔 부딪치며 살고 있다.


어쩌다 같이 나가게 되면 아들은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일어서는 듯하다. 물론, 항상 그렇진 않다. 온이네 갈 때는 나보다 더 설레발치니까. 아무튼 장 구경하러 가기로 한 날이다. “오늘 장 구경 가는 거 알지?” 내 말에 짧게 네, 대답한다. 가고 싶으면 혼자 갈 거지 왜 마흔세 살 아들을 데리고 가려고 그러냐고 구시렁댈 사람도 있을 거다. 다 이유가 있다. 그건 지금 현재 집필하고 있는 책에 전통시장에 대한 젊은이의 견해를 넣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섭외하자니 쉽지 않다. 만만한 게 콩떡이라고, 만만한 게 자식 아닌가. 처음 말을 꺼내자 거절하는 아들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미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못하더라도, 그런 사소한 것도 못하느냐고. 낳고 기르고 가르치고 지금까지 뒷바라지했는데, 왜 이리 야박하냐고. 내 소리가 높아져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 듯하니 아들이 백기를 들었다. 여자의 눈물이 아닌 어미의 눈물에도 약한 게 아들들이다. 하긴 이 세상의 인간들 치고 어미의 자궁에서 자라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아들과 장 구경을 갔다. 그것도 5일마다 서는 전통시장에. 땡볕은 내리쬐는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늘어선 차로 막혀 있었다. 몇 백 미터 정도 줄 선 대열에 우리도 섰다. “엄마, 요즘도 사람들이 많이 찾네요.” 집에서 나설 때와 달리 아들은 약간 설레는 듯했다. “그러게 일찍 나서자고 했잖아.” 삼십 분 이상 기다린 끝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제 본격적인 장 구경.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아들 입에서 우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옛날과 무척 달라졌네요.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가끔 왔던 곳이에요. 시장이 아주 계획적으로 조성된 듯해요.” 아들은 신기한 듯 예전과 비교해서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렇지, 막상 가보면 기분이 달라지는 것이 시장 아닌가. 그것도 오일장. 오일장이 갖고 있는 매력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숱한 종류의 물건들이다. 


우리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상인들이 호객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 마늘을 산처럼 쌓아놓은 곳, 거북인지 남생인지 팔고 있는 곳, 땡볕보다 더 뜨거운 핫도그와 호떡을 불티나게 파는 곳,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옷가지를 파는 곳 등, 구하지 못할 게 없을 정도로 노점상은 흥성거렸다. 아들은 신기한 듯 재밌는 듯 나보다 더 장 구경을 즐기는 것 같았다. 


우리의 발걸음이 머문 곳은 뻥튀기 가게였다.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옥수수 뻥튀기. 아들은 알이 굵은 걸 사자고 했다. 알이 굵은 것보다 자잘한 게 훨씬 맛있다고 말하자, 아들은 의심하지 않고 자잘한 옥수수 뻥튀기 두 개를 집어 들었다. 한여름 땡볕, 뜨거운 불 위에 볶아지고 있는 옥수수. 그 가게의 열기는 다른 곳보다 더했다. 그 불 옆에서 뻥튀기를 만들고 파는 사람들. 삶이 건강해 보였다. 


장터 음식점엔 앉을 틈 없이 북적거렸다. 주차하느라 기다린 것에 질린 우리는 음식 먹으려고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돈가스 어때? 근처에 있는데. 아주 특별해.” 아들은 좋단다. 모처럼 돈가스, 탁월한 선택이라며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장 구경 때문일까. 갑자기 의견일치가 잘 됐다. 뭐, 아들이 돈가스를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 기다리는 게 운명인 날도 있는 걸까. 돈가스 가게에서 또 삼십 분 가까이 기다렸다. 모든 사람들이 돈가스 가게로 몰려온 듯 북적대긴 시장이나 그곳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밀려드는 시장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기운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려서 돈가스를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어서 그럴까, 맛있었다. 아들도 흡족해했다. 


그날 오일장에서 사 온 옥수수 뻥튀기는 사흘 만에 다 먹었다. 아들은 그 맛에 반했나 보다. 다 먹고 말했다. “우리 장날 또 장에 갈까요? 뻥튀기 사러.” 그 말에 둘이 큰소리로 경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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