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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l 23. 2024

행복한 고민, 두 시간

습관

7월 들어 아들이 아침마다 출근한다. 특강 기간이기 때문이다. 10월 중순까지 매일 출근한단다. 단 하루 휴일이 없다. 아침 7시 조금 넘어 나가는 아들 위해 나는 6시쯤엔 일어나 밥을 해야 한다. 특강 기간 전엔 오후 출근이거나 아침 일찍 나가는 날은 이틀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무슨 시집살인가. 젊어서도 하지 않던 새벽밥을 다 늙어서 하는 신세가 되다니. 그렇다고 아주 불만스러운 건 아니다. 


보통 새벽 1시쯤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7시경에 일어나는 게 오랜 나의 수면 습관이었다. 그러니 오전 6시 기상은 내 삶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힘들다. 아니 힘들었다. 21일이 되니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다. 삼칠일 그거 참 희한하긴 하다. 습관이 되기 위해서도 삼칠일, 그러니까 21일이 임계점이라지 않던가. 아기를 출산한 산모가 삼칠일의 금기를 지킨 것도 그래서일까. 아무튼 습관과 삼칠일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처음엔 아들이 나를 깨워야 일어났다. 잠이 부족해 머리가 띵하고 눈이 뻑뻑해 오전 내내 힘들었다. 어느 땐 곤히 자는 모습이 안쓰럽다며, 아들이 깨우지 않고 과일로 아침을 대체한 후 출근한 적이 있다. 허둥지둥 일어나 도시락을 간신히 챙겨주며 얼마나 가슴이 쓰렸는지 모른다. 아들은 괜찮다고 했으나 점심까지 굶게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냥 보내놓고 난들 어찌 먹을 수 있으랴.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상 차리고, 점심에 먹을 도시락 싸는 일이 오늘로 21일째다. 엊그제부터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눈을 뜨면 6시 언저리다. 습관이란 무섭지 않은가. 지금은 아들이 깨우지 않는다. 나 스스로 일어난다. 머리가 띵하지 않고 눈이 뻑뻑하지도 않다. 특별히 피곤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수년 동안의 오랜 습관이 겨우 삼칠일 만에 바뀌다니 놀랍다. 


글이 장황해졌다. 간단히 말해 21일 만에 새로운 습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다이어트도 21일만 해보면 습관이 된다는 말이 있다. 금연도 금주도 그렇단다. 공부도 그럴까. 아니 글쓰기도. 글쓰기는 백일백장을 세 번이나 했는데, 아직도 매일 쓰지 못하고 있으니 그건 또 아니다. 아무튼 그 중요한 21일을 왜 진즉에 깨닫지 못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 선조들은 참으로 지혜롭지 뭔가. 대단하게 과학적 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삼칠일을 알고 그걸 중요시했나 말이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덕분에 아침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다면 할 일을 정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아들이 출근하고 난 7시부터 9시까지 오롯이 두 시간이 덤으로 생겼다. 이 두 시간에 무엇을 할까. 독서, 글쓰기, 산책, 음악 감상, 살림, 경전 읽기 등등 하고 싶은 게 많다. 요일별로 돌아가며 정해서 할까. 하나를 집중해서 할까. 두 가지 정도를 교대로 할까. 궁리하고 또 궁리하는 중이다. 이상한 일이다. 어차피 내 시간인데, 두 시간이 공짜로 생긴 것만 같다. 여유로워진 듯도 하다. 


매일 두 시간 동안 독서한다면 일주일에 적어도 두 권의 책을 읽을 테고, 한 달이면 여덟 권에서 열 권 읽을 것 같다. 일 년이면 백이십 권 정도다. 삼 년이면 삼백육십 권이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명언 중의 명언이지 않은가. 하루 두 시간의 기적이 금세라도 일어날 것 같아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글쓰기 또한 놀라운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루에 두 시간이면 짧은 수필 한 편 쓰고 퇴고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백일백장 쓰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으리라. 그걸 일 년 동안 한다면 삼백육십오 편을 쓸 수 있다. 책 한 권 만드는데 사오십 편 글이 필요하다면 열 권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놀랍지 않은가. 산책이나 음악 감상, 경전 읽기 등을 한대도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대로 하지 않아 문제다. 계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랴. 작품을 쓰지 않고 매일 구상만 하던 내 제자 윤군이 따로 없지 않은가.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걸 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말이다.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침에 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제 깨우지 않아도 잘 일어나시네요, 라고. 내 복잡한 속을 알지 못한 채 빙긋 웃으며. 아마 깨울 때 미안하고 민망하던 마음이 생각나서일 게다. 그렇다, 이 나이에 무슨 시집살이인가 한탄할 게 아니라, 공짜로 생긴 두 시간을 어떻게 쓸까 행복한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다. 오늘 하루는 덤으로 생긴 두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지, 그 계획에 집중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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