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제목 한 번 거창하다. 감히 명인이라니, 그것도 볶음밥으로. 정작 명인이 이 글을 본다면 가소로워 헛웃음이 나오고 말 테지만 내 입장에선 사실이다. 하루에도 한두 번씩 볶음밥 명인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 한 달이 되도록 매일 아침마다 볶음밥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밥을 안친다. 10분이면 밥이 되는 압력솥에. 거기 감자 두 개를 껍질 벗겨 얹는다. 그 후 볶음밥에 들어갈 재료를 꺼낸다. 밥이 되는 동안 아들의 아침상을 차린다. 과일 야채를 씻어 썰고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끼얹어 식탁에 놓은 후, 우유나 콩물을 한 잔 따른다. 아들이 식탁에 앉으면 압력솥에서 치칙칙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밥이 잘되고 있다는 신호다.
“질리지 않니?” 점심 저녁 두 끼 도시락을 볶음밥으로 가지고 다니는 아들에게 물었더니, “아뇨, 엄마는 간을 안 보고 음식을 하시기 때문에 매일 같은 거라도 간이 랜덤이라 다른 맛 같아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랜덤이라는 말이 거기에도 쓰이는가 싶어 우스웠다. 아들은 아침엔 과일과 야채샐러드에 감자 두 개를 먹지만 점심과 저녁은 볶음밥을 먹는다. 그러니 이렇게 하다간 내가 볶음밥 명인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볶음밥 만드는 게 복잡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반찬 이것저것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아침 준비하고 도시락 두 개 싸는데 드는 시간은 정확하게 30분 남짓이다. 경제적이지 않은가. 그 30여 분에 하루 먹을 음식이 준비되니. 또 볶음밥에 들어가는 부재료 역시 특별한 게 없다. 집에 있는 것들을 활용하는데, 하루하루 약간씩 다르다. 그게 변화라면 변화다.
볶음밥 만드는 비법이 있는데 여기에 공개해도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누는 게 좋으니까 공개하기로 한다. 겨우 그거냐고 실망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시라. 아무튼. 먼저 닭 가슴살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다진다. 식용유 살짝 두르고 후추와 소금 약간 넣어 볶는다. 웬만큼 볶아지면 당근, 양파, 버섯, 피망, 양배추 등도 잘게 썰어 함께 볶은 후, 갓 지은 밥, 참기름, 진간장을 넣어 다시 살짝 볶는다. 마지막에 통깨를 뿌리면 끝. 이렇게 쉬운 게 또 있을까.
간혹 감자 또는 가지 고추 등도 잘게 썰어 볶음밥 재료로 쓴다. 그러면 같은 볶음밥이라도 맛이 달라지는데, 아들은 다행히 어느 재료가 들어가든 다 맛있단다. 돌을 씹어 먹을 정도로 식욕 왕성한 때라 그럴지 모르겠으나, 무엇이든 투정하지 않고 잘 먹는 건 아들의 몇 안 되는 장점 중의 하나다. 몇 안 되는, 이 표현은 아들 장점을 늘어놓는 건 민망하기 때문에 겸손하게 한 표현이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알리라. 어쨌든. 이렇게 매일 볶음밥을 만드니 명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집에서 볶음밥 먹을 때 팁이 있다. 오이지를 곁들이는 거다. 도시락에는 그냥 순수하게 볶음밥만 싸는 게 좋대서 그만두지만 집에서 먹을 때는 오이지 무친 것과 함께 먹는다. 또 하나 팁은 야채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넣어 볶는 것이다. 밥 양의 두 배가 넘을 정도로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다이어트식도 되지 뭔가. 마지막 팁은 고기를 달리 하면 새로운 맛의 볶음밥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닭 가슴살, 돼지고기, 오리고기, 소고기 등. 가장 맛이 좋은 건 내 입에는 닭 가슴살인데, 아들은 다 좋단다.
볶음밥에 무슨 가지나 고추 양배추를 넣느냐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가지를 넣으면 볶음밥이 촉촉해지고 양배추는 특유의 아삭한 맛이 있어 식감이 좋으며, 고추는 향이 있어서 입맛을 돋운다. 버섯도 느타리, 팽이, 표고 등 다양하게 쓴다. 버섯만 다른 것으로 해도 볶음밥 맛이 달라진다. 들어가는 재료 한 가지만 달라도 맛이 다르니, 간을 안 보고 해서 랜덤으로 맛이 다른 게 아닐 거다.
오늘도 아들은 볶음밥 도시락 두 개를 가방에 넣고 출근했다. 요즘 난 연구한다. 어떻게 하면 볶음밥을 더 맛있고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영우가 매일 김밥만 먹는 걸 보고 지루하지 않을까 했는데, 우리 아들이 볶음밥을 줄기차게 먹는 걸 보고 영우의 식성이 이해되었다.
아들만 볶음밥을 매일 두 끼니 먹는 게 아니라 나도 덩달아 매일 두 끼니 먹고 있다. 처음엔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편하고 맛있다. 반찬 이것저것 꺼내거나 만들지 않아서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더운 날 아침부터 반찬 만드느라 힘들이지 않아 편하다. 그러고 보면 아들이 효자인가. 그건 또 아니다. 내게 새벽에 일어나 밥 짓게 하는 시집살이시키고 있다는 걸 깜빡하면 안 되니까.
그나저나, 이러다 나는 볶음밥 명인이 될지 모른다. 적어도 볶음밥 전문점을 차려도 될 정도까진 될 듯하다. 아무려나 영양가 있고 맛있는 볶음밥을 어떻게 만들까 오늘도 나는 연구하고 있다. 어미 노릇도 만만치 않다고 구시렁대며. 솔직히, 명인은 무슨 택도 없는 소린가. 더운 날 그냥 웃자고 한 번 해보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