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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Oct 07. 2024

볶음밥 패싱

고민

    

삼백육십오일 볶음밥만 해줘도 좋다던 아들이 요즘 딴 소리 한다. 이제 볶음밥 그만 먹고 싶다고. 참나, 지가 한 말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건 뭐란 말인가. 삼백육십오 일이 아직도 멀었는데, 겨우 석 달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더군다나 나는 이제 볶음밥 명인 타이틀 달만큼 숙련된 조교가 되었는데, 이제 그만 먹고 싶다니. 


그렇다고 내가 뭐 하란대로 할 사람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며칠 동안 여전히 볶음밥으로 도시락을 쌌다. 마지못해 갖고 다니더니, 기가 막힌 말을 던진다. 볶음밥 때문에 살이 찐다나 뭐라나. 그래서 당분간 비우기 하겠다고. 볶음밥은 언제나 좋다고 하더니 왜 말 바꾸기 하느냐고 했다. 좋긴 한데, 살이 찌는 것 같아서 몸 관리 위해 하는 말이란다. 힘들게 뺀 살, 다시 찌고 싶진 않다고.


볶음밥 때문에 살이 찐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더니 나름대로 논리를 펼쳤다. 고기고 야채고 기름에 볶아야 하고 밥 양이 많아 칼로리가 높으니, 야채과일 샐러드 싸주면 좋겠단다. 삼백육십오일 운운하며 계속 밀고 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다. 아들이 싫다니 그것도 걸리긴 한다. 좋은 어미는 아니나 먹기 싫다는 걸 입 벌리고 욱여넣는 어미까지는 되고 싶진 않으니까. 


요즘 아들은 거의 점심과 저녁에 비우기 중이다. 물만 먹고 식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공연히 불편하다. 도시락 안 싸는 건 편한데, 밥이든 간식이든 먹을 때마다 마음에 걸린다. 아들은 쫄쫄 굶고 있는데 어미가 돼서 와구와구 먹는다는 게. 나도 같이 비우기 할까 하다가 그건 안 될 것 같아 도리질한다. 대한민국 아줌마가 밥심으로 살지 뭘로 사나 싶어서다. 아줌마가 아니라 할머니라면 더욱 그렇다. 


거의 일주일 정도 아들은 한 끼 식사만 하고 있다. 그런데도 달라지는 건 없는 듯하다. 아침마다 몸무게 재고 나오는 모습이 어둡다. 빠지지 않는 것 같다. 헬스나 걷기도 성실히 하는데 도대체 왜 그런지. 예전에 비하면 15킬로그램 감량한 몸무게다. 22킬로그램까지 감량되었던 게 몇 달 사이 다시 7킬로그램 정도 다시 증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많이 먹지 않고 운동도 많이 하는데 말이다. 


사실,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들은 지지난주까지 특강 기간이라 하루에 수업을 8시간에서 12시간씩 한 게 3개월이다. 잠이 부족하다. 7시에 나가서 12시가 다 돼 돌아오는 날이 많아 수면시간이 네댓 시간밖에 안 된다. 운동도 전보다 못할 수밖에 없다. 8시간 수업하고 온 날만 운동한다. 그래서 살이 빠지지 않고 붓기까지 있어 그게 체중을 증가시키는 것 같다. 잠 많이 잘 자야 몸무게가 줄고 피부도 좋아지는 걸 모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수면시간이 주범인 듯하다. 


아들도 아는 듯한데, 나는 자꾸 몰래 뭘 먹어서 그렇다고 억지 쓴다. 나 몰래 맛있는 거 사 먹는 거 아니냐고 하면 버럭 화낸다. 그게 재밌어서 더 놀린다. 약 올라 버럭 하는 아들 보는 게 우습다. 어릴 적에 일부러 울려놓고 웃는 것 같은 심리라고나 할까. 악취미라면 악취미다. 먹고 싶으면 그냥 먹지 왜 몰래 먹겠느냐는 만 마흔세 살짜리 아들은 잠 덜 자고 무엇보다 볶음밥 먹어서 그런 것 같단다. 


아무튼 볶음밥은 이제 아들에게 패싱 당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볶음밥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전엔 한 숟가락도 안 먹던 나였는데 볶음밥이 먹고 싶은 것이다. 볶음밥 도시락 싸고 나서 남은 것이 아까워서 한 숟갈 두 숟갈 먹다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게 아닌가. 허허, 어쩌란 말인가. 혼자 먹자고 고기 볶고 야채 볶고 그 수선 떠는 건 번거롭다. 헌데 먹고 싶다.


지지난주에 아들 특강기간이 끝났다. 이제 하루에 4시간에서 8시간 정도 수업한다. 결사적으로 다시 살 뺄 모양인지 이 글 쓰고 있는데 말한다. 내일부터 정교한 관리 들어가겠다고. 정교하게 하는 관리는 또 뭔지 모르겠다. 그러곤 바로 잠자리에 들었나, 아들 방이 조용하다. 먼저 잠부터 충분히 잘 모양이다. 지켜봐야겠지만 믿기로 한다. 


아들과 동거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이제야 아들을 좀 알 것 같다. 성격, 식성, 취미, 지향하는 것, 이상 등. 같이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볶음밥을 삼백육십오일 먹어도 좋다더니 석 달 열흘 만에 그만 먹고 싶다고 번복하는 아들이라는 것도 이제 알았다. 속으로 끙끙 앓는 것보다 솔직한 게 낫긴 하다. 아, 내일 아침엔 내가 먹고 싶어서라도 볶음밥 해야 할까. 나도 패싱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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