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Jul 13. 2024

홈쇼핑과 글쓰기

홈쇼핑

    

나는 홈쇼핑을 자주 본다. 특히 텔레비전을 켰다가 마땅히 끌리는 프로가 없을 경우에 그렇다. 한참 보다 쇼 호스트의 적확한 말투와 꼭 팔고 말겠다는 전의를 느끼게 될 때 더 흥미로워진다. 내가 쇼 호스트가 된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몰입하고, 좋은 상품이라는 확신이 들면 언제 매진될까, 흥미진진해진다. 어떤 드라마나 연예프로그램보다 더 재밌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벌떡 일어나 막춤을 추기도 한다. 누가 본다면 가관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인생 모두 제멋에 사는 거 아닌가. 가만히 앉아 시청하는 것보다 운동도 되니 나쁘지 않다.

 

혹시, 오해 마시라. 홈쇼핑을 자주 본다고 해서 상품을 시도 때도 없이 사들이는 거 아닌가 하고. 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곤 하는데, 나는 전혀 아니다. 일 년에 서너 번 살까 말까 한다. 그것도 손질된 자반이나 과일 또는 일상용품 정도. 그런데도 홈쇼핑을 즐겨보는 이유는 위에 말했듯이, 쇼 호스트들의 적확한 말투와 꼭 팔고 말겠다는 전의, 배경으로 흐르는 신나는 음악 때문이다. 또 하나는 홈쇼핑을 시청하면서 떠올리는 게 있다. 글쓰기다.


홈쇼핑과 글쓰기는 무척 닮아 있다. 글쓰기 공간은 홈쇼핑 마당과 같다. 브런치를 비롯하여 많은 플랫폼들이. 그렇지 않은가. 많은 작가들이 써내는 글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 그 공간들. 생산자가 만든 물품을 홈쇼핑에 내다 팔듯 작가들은 플랫폼에 게시한다. 독자는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읽고 싶은 글을 선택하여 읽는다. 홈쇼핑에서 소개하는 상품을 소비자가 구매하듯, 그렇게.


내가 쓴 글이 선택되려면 독자의 구미에 맞아야 한다. 어느 부분이든 끌리는 게 있어야 한다. 문장이든, 서사든, 문체든, 정보든, 정서든, 그 외에 무엇이라도. 쇼 호스트가 상품을 팔기 위해 하는 말투, 어조, 표정 등이 그것들과 닮지 않았는가. 글도 그렇게 써야 한다. 독자들이 끌릴 수 있어야 한다. 끌린다는 말은 매혹적이라는 의미리라. 그렇다고 말만 좋으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용이 구미에 맞고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품의 성능과 가성비 등을 설명하는 쇼 호스트를 보면, 저 상품이 팔릴 것인지 안 팔릴 것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 설명하는 데 과장이 섞이면 신뢰성이 떨어진다. 그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채널을 돌린다. 글쓰기도 그렇다. 작가는 전문성과 진정성을 갖고 글을 써야 한다. 누구나 알만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거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나열한다고 느낄 때, 독자는 가차 없이 그 글에서 눈을 돌린다.


작가는 글로 독자를 꼭 붙잡아야 한다. 쇼 호스트의 전의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처럼, 그렇게 독자의 시선을 잡아야 한다. 아, 그게 어렵다. 참으로. 현대인들의 인내심은 그다지 굳건하지 않다. 바쁘고 숨 가쁜 일상을 살아야 하는 책무 때문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느릿느릿 살 때는 누구나 웬만큼 인내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시절이 달라졌고, 문화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재밌는 게 워낙 많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독자의 시선을 꼭 붙잡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


홈쇼핑을 보다 보면 가끔 혼란스러울 때 있다. 이 상품 저 상품 몇 가지를 한꺼번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상품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해도,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 어느 것이라도 얻어걸리라는 속셈 같아 실소가 나온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 자신 있게 파는 게 훨씬 낫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친구들 몇이 음식점에 가서 이 음식 저 음식 시켜서 나눠 먹는 걸 난 싫어한다. 한 가지 음식을 오롯이 즐기며 먹고 싶다. 그런 내 성격이니 순전히 나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하나의 제재를 가지고 끝까지 끌고 가는 게 좋다.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늘어놓는 건, 홈쇼핑에서 정해진 시간에 여러 상품을 파는 행위와 유사하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물품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다. 모두 그렇고 그런 물건 같아 사고 싶은 마음이 감소할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여럿이 음식 다양하게 시켜 나눠 먹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처럼. 그러나 글쓰기는 그렇게 늘어놓으면 일관성 없는 글이 되고 만다.


쇼 호스트가 막힘없이 상품 소개할 때, 정신 놓고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때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글도 그래야 한다. 그건 글의 가독성 문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잘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보가 들어 있고, 삶의 진정성을 닮고 있는 글이라 해도 읽히지 않는 글은 도중에 덮고 만다. 가독성 있게 쓰려면 문장이 정확하고 어법에 맞아야 한다. 글이 재미있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장이 술술 잘 읽힌다는 의미다. 거기에 서사나 내용까지 진정성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휴일 아침 홈쇼핑은 더욱 활발하다. 채널 돌리는 곳마다 다양한 상품을 팔고 있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솟아난다. 저 쇼 호스트처럼 나도 가독성 있고 진정성 있는 글을 써서 여기저기 글 마당에 내놓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