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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ug 14. 2024

퇴고, 천국과 지옥 오가며

출간 준비

   

요즘 나는 단편소설집 출간을 준비하며 퇴고 중이다. 명색이 소설가라는 이름을 갖고, 수십 년 소설 창작을 강의했는데도 단독 소설집 하나 출간하지 못했다. 출판사에서 봄부터 소설집 내자고 했던 터라, 뒤적거리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 미적거리고 있던 차에, 다시 또 연락이 왔다. 책 내고 싶다는 사람이 밀렸다며 원고 달라는데 왜 망설이느냐고. 솔직히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요즘 책을 안 읽는다고 하는데 자꾸 얹는 것도 부담이었다. 그런 뜻을 비쳤더니 책 파는 건 출판사에서 하는 일이고, 작가는 좋은 글을 쓰면 되니 쓸데없는 걱정 말란다. 


다시 용기 내서 컴퓨터 창작실에 든 작품을 꺼내 하나하나 읽었다. 이십 년 전에 쓴 것부터 최근 것까지. 그 간극이 차이가 나 그럴까 문체나 소재의 간극도 심했다. 노쇠한 표현 같고, 진부한 것 같으며, 너무 감정이 노출된 것도 같아 촌스럽다. 열이 훅 올랐다 내렸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낼까 말까, 이게 과연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또 작가로서 부끄럽지 않을까. 다 자신 없다. 다시 컴퓨터를 닫았다. 


한껏 의기소침해 있을 때 한 지인이 전화했다. 너튜브에서 누가 내 소설을 읽어주더라는 것이다. 발표한 거라곤 등단작과 공동저서에 딱 한 작품 실린 게 있을 뿐인데 그럴 리가 있느냐고 하면서 들어가 보았다. 맞다, 내 작품이다. 그것도 십오 년 전의. 제법 알려진 사람이 읽고 있는 게 아닌가. 감동이다. 선택되었다는 데에 놀라움과 자긍심 비슷한 감정이 드는 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 통해 내 소설을 듣는 느낌은 새로웠다. 독자들이 읽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되면서 수십 년 전부터 빛 못 보고 창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글들이 아우성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품을 창고에 가두고 빗장 걸어놓은 내 모습에서 비열함도 느꼈다. 퇴고하면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 요동치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내 소설을 너튜브에서 들은 지인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다시 용기가 났다. 그래, 해보자. 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미리 포기하는 건 나답지 않아. 스스로 위무하고 힘을 주었다. 작품을 뒤적거리다 그 가운데 좀 나은 듯한 스무 편을 선정했다. 원고지 60매에서 100매 정도 되는 작품들이다. 단편이지만 좀 짧은 것, 조금 긴 것, 먼저 분량이 적절한 것들로. 다음으론 내용을 검토했다. 될 수 있으면 주제가 하나로 엮이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작품들로. 최종적으로 열 작품을 선정했다. 


내가 자의적으로 분석한 결과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담보하긴 어렵다. 외로운 작업이다. 이제 혼자 가야 한다. 작품을 쓴 것도 혼자였지만 선정하는 것도, 그것을 고치는 것도 내가 해내야 한다. 이 외로움을 난 좋아하고 사랑한다. 역설적이게도. 다행한 일이지 뭔가. 물론 이 일은 천국과 지옥을 오갈 정도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는 작업이다. 사실, 쓰는 일이 내겐 그다지 고통스럽진 않다. 그러나 퇴고하는 일 더구나 어떤 목적을 두고 하는 경우엔 다르다. 


어느 땐 제법 괜찮은 작품인 것 같다가 어느 땐 세상에 둘도 없는 허섭스레기 같은 작품 같기도 하다. 초등학생 중학생이라도 이 정도는 쓸 수 있다. 도대체 수십 년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쳤다는 내가 이 정도밖에 못 쓰나. ‘아니’, 재능이 없는 거야.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 그냥 말자. ‘아니’,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아니 물이라도 잘라봐야지, 이대로 마는 건 나답지 않다. 독백하다 구시렁대다 생각하다 온갖 혼자 할 만한 짓을 다할 때도 있다. 


선정한 열 작품 순서를 정하는 것도 신경 쓰인다. 처음엔 독자의 시선을 끌만한 작품으로 배치, 다음엔 좀 무겁고 생각할 만한 작품으로, 그다음엔 가볍고 재밌는 서사가 있는 작품으로, 또 다음엔 이런 문체로 저런 문체로 서술 방법이 다른 것으로 등등.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데에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방법들 다 동원해서 차례를 정한다. 그리고 다시 읽어본다. 아,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례나 작품이나 모두. 이런! 또다시 퇴고한다. 


눈이 침침하다. 먹는 것도 부실하다. 안 그래도 잠이 부족한데 잠도 못 잔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엔 도통 신경 쓰지 않는 좋지 않은 습관이 나왔다. 이 책 안 낸다고 세금 더 내는 것도 아니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니니 느긋하게 하자는 생각이 들다가도 얼른 끝내고 다음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계속 짓누른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작품이 어느 날엔 괜찮아 보이다가 어느 날엔 도저히 출간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어 보인다는 거다. 이게 소설인가 아닌가 싶게. 그러니 요즘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밖에. 


어쨌든 나는 작품 퇴고 중이다. 어느 작가인들 고민 없이 출간했겠는가. 갈수록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데 중고서점은 역주행하고 있단다. 오늘 뉴스다. 신간이 한 달도 안 돼 중고서점에서 팔리고 있어 역주행이라고 한 것 같다. 젊은 독자들이 중고서점을 이용하기에 그런 면에서. 그렇지만, 오늘도 나는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퇴고 중이다. 작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헛된 작업일 수도 있는 퇴고에 천국과 지옥 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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