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Nov 02. 2022

우동과 커피

말 한마디로 

 존 그레이의 『화성에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한동안 유행했다. 학생들도 많이 읽었다. 학생들이 읽는데 선생이 안 읽으면 안 될 것 같아, 나도 읽었다. 그 책을 읽고 이 책을 결혼하기 전에 읽었다면, 아니 결혼 후라도 진즉에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에 읽었다면 남편과 결혼 안 했을지 모르고, 진즉에 읽었다면 남편을 조금은 더 이해했을 것 같았다.


남편과 살면서 자주 느낀 게, 나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부딪치고 갈등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나와 생각이 다를까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들은 모두 내 남편과 달랐다. 아니 옆집 남자만 해도 내 남편과 좀 다른 것 같았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그럴 수 있을 테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언젠가 함께 시골에 다녀오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길이 무척 막혔다. 평일인데도. 고속도로에 끝도 없이 늘어선 차 행렬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아, 왜 이리 막히는 거야. 한도 끝도 없네. 조수석에 앉은 남편은 눈을 감고 조는 중이었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남편은 동승하면 언제나 존다. 말을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다. 막히는 상황이 30분 넘자 남편도 슬그머니 눈을 뜨고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말했다.


“여보, 차 왜 이리 막혀요?”

남편은 들은 척도 않는다. 물론 나는 그에게 묻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무슨 대꾸라도 할 법한데 아무 말 없다. 다시 또 말했다.

“차 왜 이리 막혀요?”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물론 꼭 묻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또 20분이 지났다. 종아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조바심이 났다.

“아이, 정말 왜 이렇게 차가 막힌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내 말에 남편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소릴 질러요?”

나도 못마땅한 말투로 퉁바리를 주었다.

“글쎄, 그걸 왜 나에게 묻느냐구.”

내가 입을 다물었다. 안 그러면 싸우고 말 것 같았다.


더 이상 이야기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거고, 차가 쭉쭉 빠지는 것도 아닌데. 남편이, 그러게 차가 왜 이리 막히지. 당신 운전 힘들겠다. 그치? 휴게소에서 쉬어갈까 했다면, 우리는 아주 즐거운 여행 같은 귀갓길이 됐을 거다. 실제로 휴게소에 들러 우동이나 커피를 먹고 마시며, 즐겁게 추억 비슷한 걸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었는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운전을 했고 남편은 또 졸기 시작했다. 아마 조는 척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운전할 때 남편은 늘 회장님처럼 뒷좌석에 앉았다. 어느 날 앞에 앉으라고 했더니, 앞이 무섭단다. 이유는 내가 운전하는 걸 보는 게 무섭다는 거다. 처음엔 초보여서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몇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기분 나쁘다고 했더니, 울며 겨자 먹기로 조수석에 앉았다. 하지만 앉자마자 눈을 감고 잔다. 그것도 운전하는 게 불안해서 차라리 자는 게 편하다는 거였다.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남편은 워낙 잠이 많으니까.


그런 저런 문제로 속상한 적이 많았고, 그래서 서로 반목하며 좋은 시절 많이 흘려보냈다. 그 책을 읽고 내가 들었던 생각은 아쉽다는 거였다. 남자와 여자가 기질적으로 다른데 그걸 알지 못했다는 게. 아이들이 자라 성년이 되었을 때, 이성에 대해 이해하고 연애든 결혼이든 하라고 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다고. 서로의 기질과 속성을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내 말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만큼에서 생각해보면, 남편에게 미안할 뿐이다. 남편이 버럭 해도, 에이 당신에게 묻는 건 아니고, 길이 막혀하는 말이었어요,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그러면서 내 맘대로 휴게소에 들러 우동이나 커피를 주문했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그를 이해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