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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12. 2022

그가 왔다

코로나 감염

     

그가 왔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불쑥. 그가 찾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안을 철저히 했는데. 찾아온 그와 마주했을 때, 지금까지 경계하고 방어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허탈해졌다. 산재한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떤 경로를 통해 왔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했지만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가 온 것을 확인하고 얼른 마음을 바꾸었다. 그를 받아들이기로. 며칠이라도 함께 지낼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잘 달래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와 함께 지내는 게 나는 유난히 힘들다. 겉으로는 원만해 보이지만 속은 아주 까다로운 사람이다. 스스로 그건 인정한다. 그래도 찾아왔으니 갈 때까지는 잘 지내야지 어쩔 수 없다. 싫다, 싫다 하면 더 견디기 힘들 테니까. 


그가 오면서 내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일단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내 곁에 꼭 들러붙어서 나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무산되었다. 공적인 일도, 사적인 일도, 모두. 그의 존재감이 그렇게 큰 걸까. 일에 차질이 생겨도 나를 원망하는 단체나 사람이 없었다. 그가 왔다는 한 마디에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계획을 연기해주고 불편한 내 마음을 이해해주었다. 그는 아주 위대하다. 


몸은 말할 수 없이 힘들다. 근육통으로 밤낮없이 시달린다. 그가 나를 혹사시키기 때문이었다. 지독하다. 초대하지도 않은 내게 찾아왔다면 양심껏 얌전히 있다 갈 것이지, 어찌 이리도 나를 괴롭힌단 말인가. 원망하다, 본래 그의 속성이 그러한데 뭘 바라나 싶어 그만둔다. 너를 꼭 밀어내고 말리라 이를 악물면서. 


입맛을 잃었다. 온통 모든 게 쓰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쓰다는 걸 이제 알았다. 침도 쓰고, 물도 쓰고, 음식도 쓰고, 과일도 쓰고, 꿀까지 쓰다. 그 쓴 것들을 삼키고 먹어야 한다는 게 고역이다. 인생이 고해(苦海)인 것을 이제야 알겠다. 


그런 중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잠이 온다는 것이다. 근육통으로 자다 깨기를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잠이 온다. 깨어 있기만 한다면 나는 이미 그의 손에 이끌려 다음 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못 잔 잠을 벌충하는 듯 잠이 쏟아진다. 그도 내 옆에서 같이 잔다. 자는 동안은 근육통도 잊는다. 그러다 그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러면 다시 또 온몸이 쑤신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통증이다. 


그에게 시달려서 그럴까. 식은땀이 줄줄 시도 때도 없이 흐른다. 하루에도 옷을 몇 번씩 갈아입을 정도다. 내 몸 어디서 이렇게 땀이 날까 싶을 정도로 흠뻑 흠뻑 옷이 젖는다. 탈수 방지를 위해 계속 차와 물을 마신다. 음식보다 물과 차를 더 많이 마시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 않다. 그래도 약을 먹기 위해 음식물을 삼킨다. 누룽지와 감자탕만 이틀 동안 먹었다. 이 조합이 우스워 쿡쿡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아무튼 먹긴 한다. 


내가 며칠 두문불출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심지어 이 세상을 떠나도 그럴 것이다. 창밖에 보이는 단풍나무는 붉게 타고,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엔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엘리베이터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 여전하고, 모든 게 그대로다. 쓸쓸하다. 세상으로부터 격리당한 나는 살아 있어도 없는 사람과 같다. 쉽게 타고 오르내리던 엘리베이터도, 뒷산 산책로도, 냇물 졸졸 흐르는 천변도, 지금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내 곁에 딱 들러붙어 떠날 것 같지 않은 그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온 지 닷새가 된 오늘부터다. 아침에 가뿐하게 일어났다. 어젯밤부터 근육통이 가셨다. 그래서 단잠을 잤다. 그도 이제 떠나려는 것 같다. 붙잡고 싶지 않다. 무엇이든 이별하는 게 두려운 나지만 그는 아니다. 어서 떠나라고 등을 떠밀고 싶다. 


하지만 그는 뒤끝 작렬이란다. 어떤 작전으로 물고 늘어질지 모른다니 살살 잘 달래서 보내야 하리라. 내가 가장 못하는 게 그것인데, 손발이 오글거려도 어쩌랴, 해봐야지. 그리고 다시는 내게 찾아오지 말고, 아니 어느 누구에게나 가지 말고, 이 지구에서 영원히 떠나라고 간절히 부탁해야겠다. 들어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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