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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30. 2022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평생 마실 술을 

    

글쎄.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맥주 한 박스를 지난봄에 지인에게 받아놓고 딱 한 개밖에 마시지 않을 걸 보면. 또 양주나 와인도 제법 있는데, 전혀 손대지 않는다. 가끔 딸이 하나씩 가져가지 않으면 쌓이기만 하고 절대 줄지 않을 거다. 술이 눈앞에 있어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술을 잘 마셨던 때도 있었다. 20세 안팎과 50세 전후 박사논문 쓸 때였다. 명확하게 그때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술을 마신 적이 거의 없다. 삼 년에 한 번 정도 마실까 말까. 그것도 혼자는 안 마신다. 반가운 친구들 만나 기분이 고조되었을 때 한두 잔 마시는 정도다. 


스무 살 즈음이었다. 마음껏 꿈을 펼치며 살 수 없는 현실이 지루하고 힘들었다. 언젠가 친구들을 만나 소주에 콜라를 타서 엄청나게 마셨다. 유난히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얼마나 많이 마셨던지 친구 등에 업혀 집에 들어왔다. 내 생애 유일한 흑역사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혀를 차며 안 하던 짓한다고 걱정하셨다. 그날 밤, 심한 두통과 구토로 꼬박 새웠다. 죽을 정도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이웃집 할머니가 와서 보시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얘가 술을 마시고 밤새 토했다며 혀를 찼다. 이웃집 할머니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셨다. 약간 장난기가 있는 할머니였다. 그러면서 담배에 불을 붙여 내게 내미셨다. 


“아가, 이거 한 모금 빨아봐라. 그럼 가라앉을 수도 있어.”

나는 담배를 보고 도리질했다. 안 그래도 계속 구토가 나는데 더할 것 같았고, 담배라곤 입에 대본 적이 없어 생경했다. 


“그래도 아니? 한 번 피워 봐.”

할머니와 어머니의 요구에 할 수 없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우웨웩, 속이 더 메슥거리고 구토가 올라왔다. 할머니는 웃으셨고 어머니는 눈을 하얗게 흘겼다. 며칠 술병을 앓고 나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후 술을 입에 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지금도 사람들이 술을 권하면, 평생 마실 술을 20대 초반에 다 마셨다고, 너스레를 떨며 사양한다. 그날 마신 술을 난 평생 마실 술이라고 말하기에 머뭇대지 않는다. 그만큼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20대 중반에 교회생활을 하면서 술은 더욱 멀어졌다. 예전에 술 마셨던 일에 대해 회개하고 또 회개했다. 그만큼 순진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우습게도. 경건하려고 무척 노력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삶은 자유롭지 않았고, 죄의식 때문에 스스로 올가미를 쓰고 있을 때도 많았다. 갈등하고 나름대로 정리해가는 과정 속에서 내가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방식을 터득해 갔다. 


늦게 시작한 공부와 가정생활, 경제활동, 아이들 교육문제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40대 말. 나는 간신히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쓰고 있었다. 아픈 남편을 돌보면서 쓰는 논문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어느 때는 천국이었다가 어느 날은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 논문이 될 것 같다가 모두 엉터리인 것 같아 갈팡질팡하기를 매일 반복. 그런 날들 속에서 힘이 되어줄 남편은 오히려 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너무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을 때, 소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서재 한쪽에 술병을 놓고 마시면서 논문을 썼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러면 진도가 좀 나갔으니까. 밥이 넘어가지 않아도 술은 넘어갔다. 그러면서 밤새 논문을 쓰고 쓰다가 잠이 들었다. 식구들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논문 쓰는 시간은 힘들었다. 그런데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린다면 모순적이게도 그때가 떠오른다. 오로지 하나에만 집중하던 때여서 그럴까. 


그렇게 논문이 끝나고 학위를 받은 후, 술을 입에 댄 적이 거의 없다. 소주 한두 잔,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 그 정도밖에. 술을 마실 기회는 나이 먹을수록 더 많아졌다. 그래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일단 마시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주위에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함께 마시게 되지 않는다. 술을 권할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다. 평생 마실 술을 이십 대 초에 다 마셨어요, 라는. 


그러면 꼭 이웃집 할머니가 건네준 담배 한 모금 빨아본 사건과 논문 쓸 때 홀짝거렸던 소주 생각이 난다. 지금 이 나이에는 술을 마셔도 안 마셔도 다 상관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크게 법도에 어그러짐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허물이 드러날 정도로 과음을 하지 않을 것이며 실수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도 술을 딱히 마시고 싶지는 않다. 그걸 보면 난 술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아니, 평생 마실 술을 20대 초반 그날에 다 마셨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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