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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04. 2022

나는 자뻑 중이다

나는 나로 살 것이다

      

창밖을 본다. 잿빛이다. 온 누리가 우중충해 보인다. 빛나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무채색 같은 날. 아침에 늦게 일어난 것은 날씨 때문인 것 같다. 햇살이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면, 벌써 일어났을 거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었다. 이 시간까지 자다니. 그래도 잘했다.


나는 나에게 ‘자뻑’ 중이다. 자뻑, 내가 이런 용어를 쓰다니 실소가 나온다. 그래도 잘했다. 웬만해서 신조어나 외국어 또는 축약어를 쓰지 않는 나다. 국어선생의 사명감 같은 거다. 우리말과 글을 아름답게 잘 쓰고 보존해야 한다는. 자뻑을 다음 사전에서 찾아보니, “자기가 잘났다고 믿거나 스스로에게 반하여 푹 빠져 있는 일”을 속되게 일컫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래, 나는 속된 말도 잘 쓰지 않는다. 허나, 이 자뻑 만은 써보기로 한다.


나는 ‘자기 검열’이 유난히 심하다. 그것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억누른 욕망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초등학교 2학년 통지표에 준법정신이 강하다고 쓰여 있는데, 그것도 자기 검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타고나는 것일까. 나는 그 때문에 자유롭지 않게 살았다. 더구나 교육자는 자기 검열을 가중시키는 직업이라고 본다. 그런데 거의 평생을 그 일을 해왔으니. 그래서 자뻑 하는 시간도 필요할 듯하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복기하곤 했다. 그날 강의에 대하여.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깊은 회의감에 시달렸다. 심지어 자질 유무까지 스스로 판단할 때가 있었다.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책을 출간하거나 작품을 문예지에 발표해도 그렇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올 때도. 완벽주의까지 가세하여 스스로 올무가 될 때도 있었다. 무엇이든 완벽하기 힘든 것인데, 부족했다고 생각하면 자책감에 시달렸다. 이 모든 게 심한 자기 검열 때문이다.


이제 한동안 내가 한 모든 것에 자뻑하기로 했다. 일정 기간만이다. 항상 그런다면 그건 자아도취고 안하무인이 될 테니까. 그 기간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까지다. 아마 서너 달 정도. 그쯤이면 자기 검열이 덜해질까. 자기 검열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될 테니까.


요즘 자뻑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자기만 잘난 줄 알아 자기 외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안다. 뭐든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 따돌림당하면 사람들이 자기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나는 거기까지 가지 않을 거다. 자학하지 않을 정도, 자기 검열을 너무 심하게 하지 않을 정도, 그쯤까지만 가보려고 한다.

 

먼저, 내가 결정한 일은 잘했다고 할 거다. 늦잠을 자도, 일찍 일어나도, 운동을 해도, 빈둥거려도, 글을 써도, 못 써도, 완성도가 있어도, 없어도, 다 잘했다고 할 거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해보기도 할 거다. 그래도 남에게 손가락질받을 정도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도둑질을 할 건가, 세금 포탈을 할 건가, 남을 폭행할 건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그러니 마음이 가는 대로 좀 해볼 거다.


이렇게 생각만 해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든다. 외면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내가 만든 틀 속에 갇혀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아주 없다면 방종일 거다. 사고는 더없이 자유로웠지만 행동은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만든 제약이 많았다. 물론 그것은 사회적 제약이나 도덕성과 접맥 되어 있었다. 이제 몸도 마음도 자유롭게, 내게 자유를 주겠다. 자기 검열 같은 건 하지 말고.


‘자기 검열’과 ‘자뻑’은 동전의 양면 같다. 자기 검열을 하는 사람은 절대 자뻑할 수 없으니까. 염치를 아는 것은 자기 검열 때문일 텐데. 그럼 당분간 내가 막돼먹은 사람, ‘만무방’이 되어야 하나. 그건 좀 거슬린다. 에잇! 그래도 그냥 가보자. 그냥 나를 믿고. 가보면 무엇인가 느끼고 얻는 것이 있을 테니. 가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건 겁쟁이다. 난 적어도 겁쟁이는 아니니까.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몇 가지를 생각했다. 딸이 불러도 몸 상태가 나쁘면 안 간다, 누가 만나자고 해도 내키지 않으면 안 간다, 운동하기 싫으면 안 한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난다,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빵 먹고 싶으면 먹는다, 밥 먹기 싫으면 안 먹는다, 받기 싫은 곳의 전화는 안 받는다, 내가 할 일과 안 해도 될 일 생각하지 말고 다 안 한다. 그래 놓고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믿을 거다.


아, 이게 뭔가. 안하무인이 아닌가. 아무래도 실행하기 힘들 것 같다. 지금까지 가졌던 의식과 살아온 방식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나답다는 것에서 헤어나려고 몇 번 노력해보았지만 도로 그 자리로 가지 않았던가. 나로서는 지금까지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자뻑인 것 같다. 그래서 겨우 늦잠 잔 것 가지고 잘했다고, 자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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